작성일 : 04-12-17 12:27
[불교신문] 지게스님은 땅끝중생들의 등대지기
 글쓴이 : 불교신문
조회 : 2,235  

봉축기획- 이 시대 부처님-해남 미황사 금강스님[기획/연재]

 

‘지게스님’은 땅끝 중생들의 등대지기
(잡초 무성한 미황사에 도량불사 지역민 위한 문화·교육 포교)

이 시대 부처님은 어디 있는가. 생사를 걸고 화두참구하는 스님들이나 거리를 오가는 이름없는 ‘중생’ 이나 모두 불성을 가진 거룩한 존재들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하늘 아래 하늘위 생명있는 모든 중생들이 부처”라고. 하지만 누구나 자신이 부처임을 아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학대하고 비하하며 스스로를 나락의 길로 빠트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도 이들은 소중하다. 단지 이생에서 불법(佛法)을 만나지 못했을 뿐. <편집자>


고된 하루를 마감하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이 금빛 물결을 뿌리고 달마산으로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바위에 걸터앉은 ‘지게스님’의 얼굴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올망졸망 앉아있는 섬을 내려보고 선 미황사 대웅전에도 단청보다 붉은 낙조가 서렸다. 태양이 꼬리를 감춘 너머로 어둠이 잦아든다.

‘부처님 오신날이 언젠가’ 태양의 마지막 잔치를 지켜보던 ‘지게스님’이 손가락을 꼽아본다. 아기부처님 탄생을 한문학당 조무래기들과 지낼 요량이었던 ‘지게스님’은 요즘들어 부쩍 잦아진 노보살님들의 발걸음에 마음이 급해졌다.

몇해전만 해도 외지 사람들 보기 힘든 땅끝 절인데, 이곳 달마산 미황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낙조가 제 아무리 장엄하고 이랑과 이랑이 연하며 바다로 달려가는 황토빛 들녘이 감동을 자아낸다해도 사람들은 미황사가 있어 땅끝을 찾는다. 미황사를 책임지고 있는 ‘지게스님’ 아니 금강스님은 무슨 말못할 사연을 품은듯한, 천리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방문객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고 마음을 다 잡는다.

이들에게 평생 잊지못할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 12년을 하루 같이 경내 구석구석을 다니며 허술한 곳이 없나 살피고 가람을 수호해야하는 주지로서가 아니라 중생들에게 한 가닥의 위안을 주기위해서다.

금강스님이 미황사와 인연을 맺은지도 12년. 잡초만 무성한 미황사에 와 도량불사를 하느라 매일 지게 지고 일만하자, 마을 사람들이 ‘지게스님’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쪼르륵” 풋풋한 녹차 향기가 방안을 감돈다. 공양을 마친 스님이 먼지 쌓인 다탁을 툴툴 털고 차 한잔을 손으로 감싼다. 작은 찻잔의 따스함이 손끝에 스며들자, 지나간 산문밖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1987년 5월 광주 원각사의 여름은 쏟아지는 최류탄에 작열하고 있었다. “펑! 펑!” “광주학살 규명하라. 군부독재 퇴진하라”. 최류탄에 견디다 못한 학생들이 법당까지 피신해 들어오고 있었다.

미처 법당으로 피신하지 못한 학생들이 질질 끌려가는 것을 보다 못한 스님이 경찰들을 말렸으나 소용없었다. 법당에 피신한 학생들을 부등켜안고 이 시대 중생이 너무나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그후 스님은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걸망에 책을 싸들고 서울의 중앙승가대학에 입학했다.

중앙승가대시절 실천불교를 통한 중생변화를 꿈꿨다. 밤새워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그것을 민중불교운동으로 결합시키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했다.

고민의 결론은 보수기득권층에 의지, 호국불교의 외피를 쓴 종단기득권체제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피’의 수혈이었다. 중앙승가대 총학생회회장이었던 94년 드디어 종단개혁의 문이 열린 것이다.

대사회여론의 집중적인 포화와 승가의 역량결집으로 마침내 종단개혁이 이뤄진 것이다. 스님은 당시 실질적인 물리력을 행사했던 중앙승가대 핵심세력의 일원이었다.

98년 백양사 무차법회. 물질문명의 사회속에서 중생의 변화는 선불교를 통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사상최초로 무차법회를 준비했다.

1년이라는 긴시간을 준비한 끝에 대중들앞에 펼쳐진 무차법회는 대성공을 거뒀다. 전 불교계의 이목뿐만 아니라 대사회적으로 불교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갑자기 불어닥친 IMF로 많은 중생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래서 그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새로운 삶을 얻게하기 위해 실직자를 위한 선수련회를 불교계 최초로 진행했다. 닷새간의 선수련회가 끝나는 날 실직자들과 스님은 함께 부등켜안고 울었다.

“세상을 잘못 살아온 나를 비판하고 세상을 버리려던 자신을 따스하게 감싸 안게 해준 부처님이 고맙다. 세상이 버린 우리들에게 보금자리를 찾아준 만큼 열심히 살겠다” 스님은 그때만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온다.

삼라만상이 다 잠든 신새벽. 대지에 내려와 달마와 함께 놀던 별빛이 주섬 주섬 돌아갈 짐을 쌀 때, 도량석이 울려 퍼진다. 스님이 지게를 메고 소마구간에 매어놓았던 ‘미황우’를 끌고 터벅터벅 산을 오른다.

바위산이 불꽃같이 치솟고 병풍처럼 휘감은 달마산 아래 이 시대 부처일지 모를 한 스님이 서 있다.

전남 해남=河正恩기자 jung75@buddhism.or.kr


미황사에는 작은음악회 한문학당이…

미황사에선 매년 10월 넷째주 토요일 ‘미황사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은 음악회를 연다. 음악회는 ‘달이랑 별이랑 사람이랑’이란 이름처럼 한가위 보름달이 달마산에 걸쳐있고 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가운데 온동네 사람들이 절에서 즐거움을 나누는 축제다.

동네서 최고 ‘인기가수’로 통하는 주민들이 노래공연을 선보이고,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는 노보살들이 춤사위를 보인다. 스님도 시낭송을 하고, 악기연주를 펼치는 등 평상시 감춰진 모습을 공개한다.

매년 여름·겨울방학에 전국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한문학당. 4학년 이상의 초등생들이 7박8일간 미황사에서 스님과 같이 생활하는 한문학당은 일주일 단기출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규율이 엄하다.

대흥사 관음암 법인스님이 직접 한문을 가르치고 금강스님이 다도, 묵언, 포행과 참선 등을 ‘확실히’ 지도하는 한문학당은 어린이 35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많은 아이들에게 율동과 노래로 포교하는 것은 기독교식이죠. 한 어린이가 사찰과 인연을 맺었다면 그것을 한 차원 높여 자신감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금강스님의 어린이 포교론이다.

올 여름에 네 번째로 열릴 한문학당은 서울과 경기도 일산 등지서 벌써부터 문의하고 신청하는 판이다. 미황사는 매달 참선법회를 봉행하고 경전읽기 모임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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