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12-17 16:23
[신동아] 푸근한 황금빛 넘실대는 땅끝 해남
 글쓴이 : 신동아
조회 : 1,956  
푸근한 황금빛 넘실대는 땅끝 해남

울퉁불퉁 온 산이 금산이요,
그 안에 든 절이 금집이다. 부처님도 금빛이고
일렁이는 바다도 금바다다.
지는 해를 보는 이도 금빛으로 물든다.


노을이 속절없이 잔을 비워내는데 화백은 일어나 또 길을 떠나자 한다.
한반도 땅 끝, 더는 발 디딜 곳조차 없는 이 간두에서도 방랑벽은 채워지지 않는 것인가.
외톨이 고깃배 위를 가로지른 구름을 태우며 이제 바다로 들어갈 채비를 하는 불덩이에 빼앗겼던 넋과 잔을 화백이 다시 채간다.

전라남도 해남 땅이다.
화가는 그리고 기자는 쓰는 신동아 화필기행의 첫 꼭지로 해남을 택한 것은
순전히 풍광 때문이었다.
"산과 들과 바다가 고스란히 한눈에 들며 자연과 인공도 멋지게 어우러져 신한국 찬가를 쓰는 데 모자람이 없다"는 화백의 꼬드김에 귀가 솔깃했던 것이다.
그러기로서니 땅끝(북위 34도17분38초)에서의 술 한잔조차 낚아채 갈 줄이야....

그러나 그가 길을 재촉한 이유는 금세 드러났다.
해넘이는 해남군의 자랑처럼 땅끝에서 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게서 다리품을 조금 팔아 달마산(486m)미황사에 올라 보는 낙조가 바로 천하일품이었다.
공룡의 등뼈 모양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선 달마산,
그걸 숨가쁘게 넘어온 겨울 해가 이내 펼쳐지는 바다로 빠져들기 아쉬운지
사위를 온통 황금빛으로 채색했다. 이러니

울퉁불퉁 온 산이 금산이요,
그 안에 든 절이 금집이다.
부처님도 금빛이고
일렁이는 바다도 금바다다.
지는 해에 물든 기자도, 화백도 온통 금사람이다.

미황사의 주지 금강스님은
"해와 산과 바다, 불심이 한데 어우러져 찬연한 낙조를 빚어낸다.
이곳에선 번뇌와 망상이 간 데 없다" 고 말한다.
범인이야 어디 그 말씀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저 어느 시인의 찬탄처럼 달마산 저녘노을은
'밤을 여는 장엄한 제례'인 양, '몸부림치는 화려한 절망'인 양 황금빛을 띠며
우리의 가슴으로 뛰어들 뿐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곳 절은 창건설화조차 금빛과 연결돼 있다.

달마산 미황사는 위도상 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산, 최남단에 위치한 절이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 산 아래 사자포구에 문득 한 돌배(石船)가 닿았다 한다.
금으로 주조한 사람(金人)이 노를 잡았고 금으로 쓴 화엄경과 금환, 흑석이 배에 실려 있었다나. 그 금사람은 의조화상이란 스님의 굼에 나타나 "나는 인도의 왕이다. 금강산에 1만 불(佛)을 모시러 왔으나 이미 사찰이 꽉 들어차 모시지 못했다. 돌아가다 보니 이곳 정경이 금강산과 닮아 부처를 모시기 좋으므로 배를 댔노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또 "흑석(黑石)에서 소 한 마리가 나올터이니 그 소가 눕는 곳에 절을 세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의조화상이 그를 ㄸ다르매 소는 산 중턱에 이르러 두 번을 쉬다 마지막으로 '미~'하며 울고는 누워 죽었다던가. 거기 절을 세운 뒤 소의 울음 소리를 따 '미'자를 취하고 금 사람의 색깔 '황' 자를 더해 미황사라고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황당하게 아름다운 전설을 뒷받침하듯 달마산에는
수면에 금가루를 뿌린 듯 물 색깔이 온통 금빛인 샘이 있다.
표주박으로 떠보면 무색이지만 고인 물은 영락없이 황금을 풀어놓은 듯한 신비의 샘이다.
나그네에겐 기이하기만 한 금샘의 이런 신비를,
그러나 절의 스님들은 그저 웃음으로 넘긴다.
그리고 "달마산 정상에서 해맞이를 하기 전에는 신비를 말하지 말라"고 단언한다.

'남도 금강'에서의 해맞이

지도에서 보면 해남은 머리 위에 영암과 목포를 지고 오른손에 진도, 왼손에 완도를 쥔 형세다. 안쪽으로는 남으로 내달리던 백두대간의 정맥이 마지막으로 불끈 솟아오르며 빚어낸 두륜산(703m)을 품었다. 그러나 줄기차게 뻗던 산세는 두륜산에서 그냥 멈추기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몇 걸음을 더 내질렀다.
그래서 사자가 갈기를 세워 포효하는 형상 같기도 하고,
용이 이빨을 드러내며 승천하는 모습 같기도 한 바위 병풍을 만들어냈다.
달마산이다. '남도 금강'이란 별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 정상에서 일출을 보지 않고 감동을 논하지 말라는 것이 스님들의 주문이었다.

달마산에서 내려다보면
해남의 동쪽 허리께 있는 완도와 청산도는 바다 가운데 완만하게 누운 산의 모습이다.
해는 바로 그 두 섬의 중간에서 떠오른다.
밤새 내려앉은 새털구름이 새색시 볼처럼 물드는가 싶더니 바닷물이 이내 절절 끓기 시작한다. 헉 숨을 들이쉬다보면 말간 해가 어느새 바다를 열며 둥실 솟아오르고,
새털구름은 그 기세에 놀란 듯 정말로 희디흰 새털이 되어 파란 하늘에 흩어진다.

해가 떠오르는 장엄 앞에선 새들도 숨을 멈춘다.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 미황사에서 노을을 바라볼 때는 물새떼가 그 속으로 날아들지 않았던가. 또 떨어지는 검붉은 해가 못내 슬픈 듯 구륵구륵 울음짓지 않았던가.
그러나 해 솟는 순간의 산정에는 어떤 움직임도 없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다.
오직 꽂혀드는 빛만이 세상을 지배하고
산과 바다, 새와 나무, 그리고 사람이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감동을 부여안고 길을 잡아 다시 산사로 내려오다 보니
녹녹히 펼쳐진 동백 숲에 두어 개 꽃망울이 앉앗다.
내밀한 속살에 닿는 아침햇살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외로 튼 그것의 색깔은
영락없는 처녀의 가슴팍이다.
1월 중순이나 돼야 핀다는 동백꽃의 때깔을 벌써 보았으니
화백은 신이 나는 모양이다.
"동백은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보다 지금처럼 이른 망울이 더 아름답지요.
완전히 피어 검은색이 비치면 사람의 황혼과 다를 바 없지요."

그래, 어제 낙조를 보고 이 아침엔 일출을 보았으며
게다가 동백꽃망울을 마주치고 인생도 논했으니 해남기행의 절반은 성공한 셈인지도 모르겠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103 448 602,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