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2-11 08:13
정월 대보름 그리고 진법군고단-
 글쓴이 : 다경
조회 : 724  
미황사 진법군고(陣法軍鼓)

정월달 보름날, 불가(佛家)에서는 3개월간의 겨울수행을 마치고 또다른 수행을 위해 만행에 나선다. 그날, 민가(民家)에서는 본격적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기지개를 편다.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축제를 갖는다.  

이렇듯 정월 대보름날은 승, 속이 모두 기쁘고 좋은날이다.

땅끝마을 해남 송지면 산정마을도 그러하다. 달마산 미황사 대중스님과 마을사람이 함께 어울려 거방지게 한판 벌여놓고 대동굿을 펼친다.

산정마을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대보름날 축제는 풍물이 이끈다. 풍물은 사물과 나발 등의 악기를 중심으로 춤과 진을 구성하며 하는 전통놀이로 세시마다 펼치는 서민생활의 일부이다.

   
 
▲ 미황사 아래 산정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마다 군고를 치며 당제를 모신다
 
풍물의 기원은 농사축원설, 군악설, 불교의식설 등 여럿이 있으나 기본이 되는 사물(꽹과리, 장구, 북, 징)이 불교의 사물(법고, 운판, 목어, 대종)에서 유래됐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풍물은 굿, 매굿, 지신밟기, 마당밟기 등 다양하게 부르지만 마을의 공동작업을 할 때는 두레, 두레풍물, 두레풍장 등으로 부른다. 또한 마을의 공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치는 것은 걸립 또는 걸궁이라고도 부른다.

사물은 쇠와 가죽으로 된 악기들로 각각 양과 음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꽹과리와 북이 양이고, 징과 장구가 음으로 구분된다. 꽹과리는 날카로운 소리로 판을 이끌어가고, 징은 장단의 중심을 잡아줄뿐 아니라 모든 소리들이 삐져나가는 것을 안으로 감싸준다. 반면에 장구는 장단에서 가락을 이끌어가고 북은 밑에서 가락을 받쳐준다.

이러한 풍물 가운데 미황사 아래 산정마을의 풍물은 매우 힘이 넘치고 강약이 뚜렷하여 여느 풍물과는 달리 가락과 기법이 유별나다.

수백년간 이어온 진법군고(陣法軍鼓)이기 때문이다.

풍물이 금속악기와 북, 장구 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금고(金鼓)'로 불리기도 하지만 해남과 완도지역에서는 군악으로 보아 '군고' 라고 부른다.

진법군고는 명칭 그대로 싸움을 하기 전에 진을 짜고 사기를 높이는데 쓰는 춤과 음악을 뜻한다. 따라서 가락이 흘리지 않고 똑똑 떨어지는 엄한 군령으로 진행된다. 강강술래와 같이 풍물로 승군의 사기를 높였을 뿐 아니라 승군이 나가고 물러서는 전법의 하나였던 것이다.

보통 풍물은 많으면 40여명의 놀이패가 6~7차 가락에 머물지만, 진법군고는 적어도 100여명의 놀이패가 12차에 이르는 다양한 가락을 펼친다.

군고는 굿가락이 걸궁보다 매우 까다롭고 묘하여 익히기가 힘들고 굿의 흐름이 장엄하다. 따라서 군고의 가락은 굿머리가 똑똑 떨어져서 흘려치는 일이 없고 놀이의 모든 절차가 엄한 군령으로 진행된다. 또 군고에는 풍물뿐만 아니라 소리와 탈춤까지 들어있어 장엄함과 웅장함은 물론 다양성까지 갖추고 있다.

구성원은 군사(軍師), 집사(執事) 등 형식적 우두머리를 두고 상쇠, 영기수(令旗手), 사명기수(司命旗手), 군고기수(軍鼓旗手), 쟁수, 종쇠, 장고, 소고, 북, 취수(吹手), 쇄납, 전령, 창부, 도포, 교도스님, 조리중, 무동 등으로 짜여진다.

진법군고의 시작은 임진왜란 당시 승군이 치던 풍물에 기원을 두고 있다.

임진란이 끝나고 1607년(선조46) 서산대사의 유품이 대흥사에 전할 때 서산대사 진법군고라는 이름의 군고놀이 규식본(規式本)이 함께 전해졌다. 아쉽게 원본은 사라졌지만 후대의 놀이꾼들이 이 책을 필사하면서 해남지역에 유포되었다.

오늘의 산정마을 군고는 미황사 군고를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다.

미황사 군고는 서산대사 5대법손인 설봉(雪峯)(1678∼1738)스님이 대흥사에서 미황사로 오면서 시작되어, 서산대사 10대법손인 혼허(渾虛)스님에까지 이른다.

혼허스님은 미황사의 중창을 위해 대중스님들과 함께 군고단을 꾸려 탁발에 나섰다.

1897년 2월, 인근 마을을 돌던 미황사 군고단은 청산도로 향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청산도는 서편제 영화를 촬영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봄이면 파란 보리밭과 노란 유채꽃으로 섬 전체가 장관을 이루는, 작지만 아름다운 섬이다.

지금은 완도에서 청산도까지 배를 타고 45분이면 가는 가까운 곳이지만, 바람에 의지하던 당시에는 매우 멀고 위험한 길이었다. 청산도로 화주를 떠났던 미황사 진법군고단도 돌풍을 만나 배가 전복되고 말았다.

당시 설장구를 맡은 젊은 스님이 삼정리 해변에서 구조되었다. 유일한 생존자인 스님은 마을에 머물면서 마을사람들에게 군고를 가르쳤다. 그것이 해남과 완도지역에 전해오는 진법군고이다. 산정마을에서도 미황사 진법군고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산정마을 군고의 깃발에는 바다거북이 등에 올라탄 삿갓 쓴 스님이 그려져 있다.

지금도 청산도 사람들은 진법군고단이 몰살된 바다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이면 군고 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미황사와 군고 후손들은 해마다 군고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재를 올리고 있다.

진법군고는 반드시 놀이 시작 전에 당제를 지내고 길굿에 들어간다. 산정마을 군고는 정월 대보름 전날 당제를 지낸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을 비롯해 대중스님들도 산정마을 당제에 동참하고 있다.

스님들과 마을주민들이 함께 진법군고를 치며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법군고를 체계적으로 계승, 보급하기위해 해남군고보존회(대표 박필수)가 결성되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있다.

해마다 땅끝마을 해맞이 축제 때 울리는 풍물이 바로 미황사 진법군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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