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2-11 08:29
공부해서 남 주자 -법인스님
 글쓴이 : 다경
조회 : 569  
낮은 목소리로]공부해서 남 주자
 법인 | 조계종 교육부장


법인 | 조계종 교육부장




“스님들도 휴가 가십니까?” 여름이면 세속의 벗들이 호기심으로 묻는다. 이런 물음에 가부로 답하면 재미없다. “날마다 마음을 쉬는 게 우리 일상인데 어디 가서 따로 쉬겠습니까?” 또 묻는다. “스님들은 더울 때 어떻게 견디십니까?” 옛 스님들은 이렇게 답했다. “더울 때는 더위와 한 몸이 되고 추울 때는 추위와 한 몸이 된다.” ‘몸이 곧 자연’이라는 섭리를 거스르는 오늘날의 냉방문화를 일깨우는 서늘한 죽비소리다.

사실 말은 이렇게 격조있게 하지만, 산중에서도 폭염은 참기 어렵다. 그저 시원한 솔바람과 물소리 청량한 계곡을 찾아 산사에 오는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삼을 뿐이다. 산중을 찾는 사람 중에 내가 대단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귀한 휴가를 템플스테이와 수련회로 보내는 벗님들이다. 톱니바퀴처럼 분주히 돌아가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멈추고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 끝없는 속도경쟁으로 인한 내면의 헐떡거림을 쉬는 이야말로 진정 삶의 화두를 챙기는 수행자인지 모른다.

이런 세속의 수행자들을 위해 산중 스님들은 시주의 은혜를 갚는 보람으로 폭염과 더불어 삼매에 젖는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인 미황사 금강스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련회 피로로 링거를 꽂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며칠 전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안부를 물었더니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이란다. 어린이 한문학당 학동들과 함께 물놀이를 왔다는 것이다. 천진한 동심들과 물장난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더위가 싸악 가시는 느낌이었다.

한문학당 학동들과의 산중체험

11년 전이다. 금강스님과 나는 산중에서 세상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논의하던 중 어린이 한문학당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아이들이 세상의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비교적 긴 8일간의 일정을 잡았다. 부모에 대한 지나친 의존, 어려움과 기쁨을 나누지 못하는 개인주의 정서, 컴퓨터와 오락에 빠져 몸으로 살지 못하는 삶, ‘세상은 일등만을 기억한다’는 강박에 내몰려 달과 별을 보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메마름, 자극적 양념에 범벅이 된 육식과 질 낮은 인스턴트식품으로 상해가는 몸, 그럼에도 이것을 편리요, 행복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의 관념과 습관을 깨기 위해서는 ‘뒤집기’가 필요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채식을 하는 한문학당의 일과와 규칙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뒤집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자연이 아이들의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혜린이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엄마, 미황사에서 벌써 5일째입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고 불편했는데 이제는 적응하고 있습니다. 산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와 사는 것 같아요.” 해질 녘, 아이들은 진도 앞바다에 펼쳐지는 선홍빛 노을에 감동하며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사람에 대한 마음은 또 어떠한가? 한문학당 4일째, 잠자리에서 아이들 모두는 소리 죽여 훌쩍인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아이들은 외로움 속에서 가족을 그리워하고 늘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새긴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우는 게 아니라, 사람이 그리워서 울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기표현이고 성숙인가. 콜라는 육식도 아닌데 왜 못 먹게 하느냐고 투정하듯 항의하는 것 또한 아이다운 발상이다.

한번은 아이들이 훈장인 내 눈치를 보면서 게으름을 피우기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이눔들아, 공부해서 남 주냐!”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스님은 공부해서 지금 남 주고 있잖아요.”

경쟁보다 상생, 소중한 깨달음

허걱! 어느 선사와의 선문답보다도 큰 울림. 나는 껄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한문학당의 구호를 정했다. ‘공부해서 남 주자.’ 공부해서 경쟁하자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 남에게 도움을 주자는 상생의 공부는 얼마나 큰 깨달음인가.

아이들에게는 이미 이런 깨달음이 자리하고 있다. 어른들이 그것을 길러주지 못하고 방해하고 있을 뿐이다. 한문학당은 입학 전 부모에게서 아이 소개서를 받는다. 그런데 고맙고 신통한 것은 부모들이 한결같이 한문 공부나 예절교육 등을 기대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감성을 키우고 친구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길 바란다는 것이다. 지식과 교양마저 일등을 추구하는 경쟁력으로 삼으려는 세태에서 이런 부모가 바로 교육의 희망이 아닌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결국 생각 있는 부모가 생각하는 아이를 길러낸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115 503 574,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