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2-11 17:11
미황사 한문학당 10주년 - 오마이 뉴스
 글쓴이 : 다경
조회 : 609  
아름다운 절 미황사에서 열린 한문학당 10주년 축제
한문학당 졸업생과 가족들을 위해 준비한 2박3일
 전용호 (yong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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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끝자락에 자리한 아름다운 절 미황사에서 한문학당 10주년 축제를 열었다.
ⓒ 전용호
미황사

 

미황사 한문학당 10주년 기념 - 반갑다 친구야

땅끝 달마산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절 미황사에서는 한문학당 10주년을 기념하여 7월31일부터 8월2일까지 한문학당 졸업생을 위한 축제를 열었다.

 

행사는 축하공연, 미황사 옛길 걷기, 졸업생 작은 음악회 등을 준비했으며, 10년간 한문학당을 졸업한 학생들과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다시 찾아가는 미황사

 

전화가 왔다. 해남 끝자락에 있는 달마산 아래 자리 잡은 미황사에서 한문학당 10주년 축제를 한다고 참가하란다. 작년 여름 애들이 7박 8일 동안 한문학당에 참여했는데, 애들도 다시 가보고 싶은 가 보다.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고, 참가비용도 없다. 그냥 오란다.

 

아침 일찍 해남을 향해 출발했다. 미황사까지 가려면 멀다. 1년 만에 다시 가는 길. 그 때 들렀던 휴게소도 다시 들른다. 휴게소에서 산 전병을 먹으며 완도로 가는 2차선 도로를 따라간다. 만덕산을 지나고, 덕룡산, 주작산, 두륜산 능선들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병풍을 두른 듯 달마산 자락이 이어진다. 눈에 익은 참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예전에 없던 일주문이 아직 단장을 하지 못한 채 쑥스러운 듯 서있다. 짐을 챙겨 산사로 들어선다.

 

졸업생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축제를...

 

산사는 북적거린다. 등록을 하고 마당으로 나오니 체험행사를 한다. 오색실 매듭 묶기, 부채 단청 그리기, 연꽃 만들기 등등. 간식으로 바나나와 감자도 준다. 스님들도 함께 한다. 서로 간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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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축제와 다름없이 애들을 위한 체험행사도 준비했다.
ⓒ 전용호
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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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 전용호
미황사

 

절을 둘러본다. 변함없는 모습이 정겹다. 단청을 벗어버린 대웅전이 말쑥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넓은 마당에서는 애들이 자연스럽게 뛰어 논다. 애들은 벌써 한문학당 시절로 되돌아간다.

 

한문학당 강당인 만세루에 모였다. 가족 포함 175명이 모였다. 입제식을 한다. 한문학당 개설자인 금강 스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2000년에 법인스님과 함께 시작한 한문학당이 10년을 맞이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변에서 제대로 될까하는 우려도 많았지만 10년을 이어왔다. 그리고 1050명이 졸업을 했다. 졸업생들이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는 축제를 열고 싶었다."

 

200명이 먹어도 버리는 음식이 없다

 

저녁공양을 한다. 절집의 밥은 아주 단순하다. 미역국에 김치와 장아찌 등. 어른들은 말끔한 저녁에 맛깔스러움을 느끼지만 애들은 곤욕이다. 잘 먹지 않은 김치를 먹여야 하고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 다 먹은 그릇을 놓는 곳에는 애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간절한 표정으로 음식 남긴 걸 인정해 달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예외는 없다. 결국은 다 먹어야 공양간을 나올 수 있다. 200명이 넘는 사람이 먹어도 잔반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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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주지인 금강스님. 미황사를 찾는 분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다.
ⓒ 전용호
금강스님

 

서쪽 하늘 아래로 바다가 금빛으로 물든다. 해는 구름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바다는 빛을 잃어가고 저녁예불이 시작된다. 참여는 자유. 서투른 솜씨로 경전을 따라 읽는다. 우리말 반야심경이 너무나 좋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우리말로 풀어 놓으니 단순하면서도 의미가 깊은 내용이다.

 

산사의 밤은 깊어가고...

 

저녁예불이 끝나고 초청가수 축하공연이 있다. 초청가수는 통기타 가수 박강수다. <그리워라> <아름다운 것들> 등 감미로운 노래로 시작해서 <섬집아기> <등대지기> 등 동요도 부르고, 자기 노래인 <바람이 분다> <다시 힘을 내어라>로 끝을 맺는다.

 

다시 힘을 내어라. 나의 손을 잡아라

뒤돌아보지 말고 나아가야지

푸른 나무들도 등을 미는 바람도 너를 위한 몸부림에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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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강수의 축하공연
ⓒ 전용호
박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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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과 공기놀이를 하는 금강스님. 올해 칠순이라는데.
ⓒ 전용호
미황사

 

밤이 깊어간다. 공연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금강스님이 애들과 모여 공기놀이를 한다. 실력이 수준급이다. "도를 공기로 닦아나 보다" 모두들 감탄이다. 주지스님의 근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애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모습 속에서 스님의 법력이 배어나온다.

 

첫날 마지막 행사로 연등을 밝히고 절을 한바퀴 도는 시간이다. 마당에 둥그렇게 연등을 켜고 서서 소원을 빌고 자기에게 다짐을 한다. 밤하늘 반달이 점점 커져만 간다.

 

미황사 천년역사길 걷기

 

다음날 새벽. 5시 기상이다. 잠자리가 바뀌어선지 일찍 잠을 깬다. 밖으로 나오니 애들도 마찬가진가 보다. 깨우지 않았는데도 벌써 일어나 옹기종기 모여 있다.

 

5시 타종과 함께 예불이 시작된다. 예불이 끝나고 국선도인을 초청해 선체조도 한다. 스님도 체조를 한다. 아침을 먹고 대웅전 마당에 모였다. 미황사 천년길을 걸어간단다.

 

미황사 천년역사길은 미황사 창건 설화에 나오는 돌배가 닿았던 석선댓곳까지 걸어가는 길이다. 1300년 전 누런 황소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간다. 미황사를 빠져나와 부도탑 가는 길로 들어선다. 숲이 깊다. 부도탑을 지나 인적이 뜸한 숲길은 오랜 비밀을 간직한 듯 음습하다. 마삭줄, 송악 등 넝쿨식물이 나무을 감고 있어 원시림에 들어선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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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천년길. 1300년전 땅끝에 돌배가 닿았던 곳까지 걸어가는 길이다.
ⓒ 전용호
미황사 천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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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주먹밥을 맛있게 먹는다.
ⓒ 전용호
미황사

 

시원한 삼나무 숲길도 지나고 나무를 베어낸 개활지도 지난다. 그렇게 3시간 정도 걸어서 숲을 빠져 나오니 도솔봉 올라가는 콘크리트 포장길과 만난다.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주먹밥. 무척 맛있다. 몫으로 받은 두 개를 다 먹은 애들은 더 먹으려고 줄을 서지만 더 주지 않는다.

 

길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간다. 한적한 시골길이다.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던 할머니는 일을 멈추고 우리를 본다. 뭔 일일까? 하는 표정이다.

 

길은 무척 길다. 숲길을 벗어난 길은 걷기가 좋은 반면 햇볕이 따갑다. 버스는 종점인 듯 들어왔다 다시 돌아나간다. 커다란 저수지를 돌아가더니 마을이 나오고 도로가 나온다. 아! 길에는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피서철. 땅끝과 송호리해수욕장으로 향하는 끝없는 차량행렬이 우리를 더 이상 가지 못하게 한다. 스님은 피서철인 것을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 산사에서 지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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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천년역사길. 미황사에서 땅끝까지 걸어가는 길이다.
ⓒ 전용호
천년역사길

 

도로를 건너 바닷가로 향한다. 스님은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한다. 도로는 안전상 버스로 송호리해수욕장까지 이동했다가 걸어서 석선댓곳을 지나 땅끝까지 가려고 했단다. 하지만 버스는 차량에 막혀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스님들과 함께 한 작은 음악회

 

애들은 바다를 만나자 물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뜨거운 햇살 아래 걸었던지 물 만난 물고기다. 물놀이 시간이 지나면서 애들은 장난을 즐긴다. 물에 들어가지 않은 애들을 하나씩 데려다가 물에 넣어준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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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절 동안 힘들게 걸었던 피로를 바닷가에서 시원하게 날려 보낸다.
ⓒ 전용호
미황사

 

5대의 버스를 나눠 타고 돌아왔다. 저녁예불이 끝나고 졸업생들이 만든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피아노도 치고, 플루트, 바이올린 등 준비한 공연에 열심이다. 음악회에 춤이 빠질쏘냐. 춤과 노래도 이어진다. 스님들도 함께 어울린다. 이게 미황사 한문학당 만의 매력인가 보다.

 

10년 후를 기약하며…

 

마지막 날. 늦잠을 잤다. 전날 피곤해선지. 민망하다. 아침공양을 마치고 축제 마지막 행사인 10년 후 자기에게 쓰는 편지를 쓴다. 쓴 편지는 항아리에 담아놓았다가 10년 후에 다시 축제를 갖는 날 열어본다고 한다. 그냥 넣으면 재미없지. 편지를 넣고 범종을 타종하면서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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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자기에게 쓴 편지를 항아리에 담고 범종을 타종한다.
ⓒ 전용호
미황사

 

만세루에서 축제를 마무리 하는 회향식이 열린다. 금강스님으로부터 한문학당을 함께한 선생님들을 소개한다. 한문학당 시작부터 10년 동안 숲 체험 자원봉사를 해준 김세진 선생님과 초임교사 시절부터 매년 방학 때마다 내려와 지도교사로 자원봉사를 해준 김동현 선생님도 소개한다. 그리고 많은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10년을 이어왔다고 한다. 금강스님께서 한문학당 졸업생들이 언제든지 찾아오기를 기다린다면서 끝을 맺는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항상 웃는 얼굴인 무진스님.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진묵스님. 그리고 스님이 안 되었으면 개그맨이 되었을 것 같은 정혜스님. 10년 후에도 이곳에서 다시 뵐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절을 나선다.

 

금강스님 회양식 말씀

10년 뛰어 놀게 해준 미황사에 감사한다. 여러분 만나 아주 신나고 행복하게 보냈다. 한문학당이 10년을 더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0년에 첫 한문학당을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법인스님이 프로그램을 짜고, 내가 진행을 했는데, 7박 8일을 마치고 애들이 떠나고 나니, 둘 다 쓰러져 버렸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일어나 차를 타고 가까운 병원에 포도당을 맞으러 갔는데 의사들이 파업해 주사를 놔주지 않아 다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한문학당을 7박 8일 동안 운영하기가 매우 어렵다. 애들 밥 잘 못 먹어 배탈 나는 것도 신경 써야 하고, 바닷가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무탈하고 사고 없이 지낸 게 감사하다. 그렇게 10년을 보냈다. 10년 하기가 쉽지 않다.

 

스님들은 여러분들이 가고나면 탈진을 한다. 그래서 1기생들이 대학생들만 되기를 기다렸다. 지도교사가 돼서 도와주겠지? 근데 바쁜가 보다. 한문학당 출신들이 자원봉사도 하고 지도교사도 하면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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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는 여러분들 집이예요. 언제든지 와도 돼요. 한문학당 출신입니다 하면 돼요. 미황사는 언제든지 열려있습니다. 그걸 꿈꾸며 미황사에 살겠어요. 늘 한문학당 친구들을 기다립니다.

덧붙이는 글 | 미황사에서는 매년 여름 7월말과 8월초에 4학년에서 6학년을 대상으로 7박 8일간 한문학당을 연다.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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