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2-13 18:10
법정스님도 사랑하신 미황사
 글쓴이 : 다경
조회 : 737  

법정 스님이 아껴뒀던 절, 땅끝마을 달마산 미황사


문화재청장을 지낸 예술철학박사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소제목을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달고도 모자라 지역 편애라는 혐의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강진과 해남은 ‘남한답사 일번지’라고 부르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유홍준은 “미황사 대웅전 높은 축대 한쪽에 걸터앉아 멀리 어란포에서 불어오는 서풍을 마주하고 장엄한 낙조를 바라볼 수 있다면 답사가 주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고 단 몇 문장으로 미황사를 그려냈다.
매월당 김시습은 해오름은 낙산사, 해넘이는 미황사를 꼽았다. 이곳 노을은 그날그날 시시각각 황금빛, 은빛, 붉은색으로 바뀌면서 진도 앞바다와 어우러진다. 부처님 장엄도 이렇지 않았을까싶은 느낌에 넋놓고 바라보다보면 탄성이 절로 터진다. 우리 땅 끄트머리 절 미황사에 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자하루紫霞樓다. 붉은 노을 장엄 때문에 자하루라고 했을까? 자주빛(紫色)은 만복이 구족한 얼굴을 나타내는 빛. 보통사람은 생에 한두 번쯤 가장 기쁜 날 잠깐 얼굴에 자색이 감돌뿐이지만, 부처님 몸은 언제나 자금색신紫金色身이다. 그래서 자하루는 부처님을 감싸 도는 자주빛 안개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는 일주문이자 불이문이다. 불이不二!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생사·열반, 번뇌·보리, 세간·출세간이 둘이 아닌 경지다.

구불구불 숲길을 돌아 미황사에 오르면서 이 길이, 1,260여 년 전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온 검은 소를 따라 경전과 불상을 이고 진 땅끝마을 사람들이 바닷길을 돌고 고샅길을 지나 울창한 나무 사이로 부처님을 모시겠다는 기꺼운 마음으로 걷고 또 걷던 길이구나 싶었다.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산 자락에 이른 검은 소가 멈춰선 곳에 세워진 대웅보전. 오랜 세월 매운 바닷바람에 사위어 나뭇결이 드러나 말간 대웅전은 다른 전각들과는 달리 주련도 없어 흰옷 입은 여염집 아낙네처럼 소박하다. 멀리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온 부처님 법을 모신 대웅전은 지금도 여전히 배다. 차안에서 피안에 이르는 반야용선般若龍船. 옛 사람들은 1천 부처님 나투시길 염원하며 들보와 벽에 1천불을 그려 모셨다. 그래서 뒷사람들은 대웅전에서 삼배만 해도 삼천 배를 한 것과 똑 같은 공덕이 있다고 했다. 미황사를 찾은 이들은 대웅전에 들어 삼배부터 올리고 볼 일이다.



미황사는 법정 스님이 안거를 마치고 남도 순례를 하실 때마다 거르지 않고 찾은 곳이었다. 부처님께 인사올린 법정 스님이 가장 먼저 들리시는 곳은 부도전. 대웅전 오른쪽 요사채를 지나 부도전 가는 길. 길섶에 빼곡히 피어 반기는 작달막하고 파란 ‘닭의 장풀꽃’ 위로 동백나무 숲이 빽빽하다. 동백하면 흔히 선운사를 떠올리지만 이른 봄 미황사에 와 본 사람은 두 번 다시 선운사 동백을 떠올리지 않는다. 자하루 앞 아스라한 울돌목에서 임란 때 배 13척으로 적함 133척을 맞아 명량해전에서 장렬하게 스러져간 영령들이 바닷바람에 실려와 나툰듯, 영롱하고 선연한 미황사 동백을 어찌 선운사 동백에 견줄 수 있으랴. 나그네들은 한 여름 끝 무렵 미황사에 닿은 인연 탓에 그 영롱한 동백을 보지 못해 마냥 아쉽기만 하다.


여러 해 전 법정 스님이 말갛고 끝이 파란 백련이 곱게 핀 강진 금당리 연못에 들렸다가 미황사에 오셨을 때 금강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미황사를 좋아하시면서 왜 미황사 얘기는 안 쓰세요?” 어찌 보면 당돌한 물음에 법정 스님은 “미황사는 내가 아껴둔 절인 걸.”하셨단다. 이제 한 해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드는 미황사는 법정 스님 뜻대로 더는 숨겨진 절이 아니다. 미황사는 금강 스님이 1989년 절이 비었다는 소리를 듣고 은사 지운 스님을 모시고 살러왔을 때만 해도 나무와 잡풀이 절 마당까지 들어차 법당에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망가진 절이었다. 2년여에 걸쳐 마당에 있는 나무를 베어내고 이곳저곳을 다듬고 가꾸자 햇살이 경내를 어루만졌다. 그때 예불시간을 빼고 일만 하는 금강 스님을 가리켜 사람들은 ‘지게 스님’이라고 불렀다. 그 뒤 금강 스님은 공부를 하러 떠나고, 주지 소임을 맡은 현공 스님은 꼼꼼하게 축대를 쌓고 전각 하나하나를 살려냈다. 그러던 어느 날 금강 스님이 동안거를 마치고 미황사에 들렀다. 그 때는 이미 현공 스님은 대중들에게 “금강 스님이 오면 주지 스님이라고 불러라”고 당부를 해놓고 절을 떠난 뒤였다. 얼떨결에 주지가 된 금강 스님은 현공 스님을 찾아가 함께 미황사를 꾸려가기로 ‘타협’을 봤다. 미황사 중창원력을 세운 현공 스님은 회주가 되어 불사를 맡고, 금강 스님은 사찰 운영을 맡아 어린이를 위한 ‘한문학당’, 쉼을 만끽할 수 있는 편안하고 넉넉한 산사체험 ‘템플스테이’, 나를 찾아가는 수행 ‘참사람 향기’처럼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걸 찬찬히 알려주며 네게 다가가는 프로그램을 꾸려 일상 속에 수행을 심고 있다. 이렇게 금강 스님은 사람다운 삶을 심고 가꾸는 농부다.


금강 스님이 지게 스님이라 불리며 절을 다듬던 92년. 마을사람들이 우르르 미황사를 찾았다. “스님! 기우제 좀 지내주십시오.” 마을사람들은 30년 전에도 가뭄이 심했는데 괘불부처님을 모시고 기우제를 지내고 나서 달마산 꼭대기 올라가서 봉화를 피우는데 장대비를 퍼부었다는 옛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30년 전 미처 장대비를 피하지 못해 배접이 떨어져나가 모시밖에 남지 않은 괘불탱화를 괘불대에 걸 수가 없어 대웅전 앞마당에 펴기로 했다. 그때는 미황사 중창 불사가 시작될 때라 마당이 조그만 해서 높이 12m 폭 5m나 되는 괘불탱화를 가슴까지 펴니 마당 반이 차버렸다. 하는 수 없이 그만큼만 펴놓고 기우제를 올리고 나서 두 시간쯤 지났을까? 과연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나흘 동안이나 줄기차게.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무엄하게도 이 괘불 부처님을 ‘하느님 마누라’라고 부른다. 그 뒤 금강 스님은 배접이 다 떨어져나간 괘불 부처님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사람들에게 화주를 받아 인간문화재 배접장을 불러 정성껏 배접을 했다. 그리곤 잊어버렸는데. 10년이 지난 어느 날 제법 가람다워진 도량에서 천일기도를 올리다가 문득! ‘미황사에 와서 일이 잘 된 게 괘불님 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 괘불 부처님께 감사공양을 올리자.’고 다짐을 했다. 그래서 태어난 게 ‘괘불재掛佛齋’. 괘불재는 괘불님을 모시고 큰 스님법회와 통천通天을 비롯한 프로그램을 봉행하는 야단법석野壇法席으로 신·구·의 삼업을 맑히는 재식齋式이다. 금강 스님은 뭐니 뭐니 해도 괘불재 꽃은 만물공양이라고 말한다. 만물공양은 저마다 한 해 동안 애써 일군 열매를 부처님 전에 올리고 함께 나누는 일이다. 농사지은 이들은 곡식이나 과실을, 학자들은 논문을, 화가는 그림을, 책 쓴 사람은 책을, 대학생은 리포트를, 헌혈한 사람은 헌혈증을, 누구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초등학생들은 상장을 올리기도 한다. 스님들은 이 공양물을 차례차례 올리면서 “저는 어란포에 사는 강진댁입니다 스무살 때 시집와서 아들 몇 낳고 사는데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 병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소망을 담아 축원을 드려준다. 괘불재를 마친 뒤 이어지는 음악회는 해남사람과 타지사람들이 어우렁더우렁 어우러지는 어울림 한 마당이다. 음악회에 출연한 사람들에게는 만물공양에 올린 공양물을 선물로 나눠준다. 미황사 향이 드러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회향. 남다르다.


남다른 행사는 그뿐이 아니다. 부처님 오시는 날 스님들은 마을로 나선다. 큰 깃발을 앞세우고, 연등을 든 스님들이 앞서 걸으면 그 뒤를 장구와 북을 앞세운 풍물패들이 따른다. 이어 마을 사람들이 꼬리를 무는 잔치 한 마당.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행렬은 고샅길을 돌아 축원을 부탁한 집에 들려 식구들 건강과 화목을 비는 축원을 정성껏 올린다. 가지고 온 등을 처마에 달아주고 차례차례 옆집으로 옮겨가며 올리는 축원은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어디 그뿐이랴. 금강 스님은 몇 해 전 폐교위기를 맞은 작은 학교 서정분교를 살리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학부모와 교육청을 설득하고 방과 후 학습을 알차게 꾸미기 위해 음악, 미술, 생태체험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을 동참시켰다. 스님은 탁본과 다도는 직접 가르쳤다. 읍내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을 위해 여러 지인들 후원을 받아 바자회를 열고, 이러저런 인연을 모두 동원해 곱다란 통학버스를 장만해 줬다.


<월간 불교문화> 이 꼭지 ‘다가오는 불교 아름다운 사찰’ 정신에 꼭 들어맞는 절 미황사. 식견이 짧고 글솜씨도 달리는데다 미욱하기까지 한 나그네는 미황사가 지닌 아름다움을 1/10도 그려내지 못했다. 물이 논에 들어 벼를 빛내는 것처럼 너를 빛내는 금강 스님. 모자라는 부분은 스님이 미황사 살림살이를 정리해 펴낸 책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을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리며 아껴두고 싶은 절 미황사 이야기를 맺는다.


- 사진: 마음을 찍는 사진쟁이 / 이종승

  http://inew.tistory.com/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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