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12-17 16:34
[경향신문]“가슴을 열어…잠깬 섬들 소곤소곤” 해남 땅끝
 글쓴이 : 경향신문
조회 : 1,789  


여행은 만남이다.
신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자연과의 만남,
문화재를 통한 역사와의 만남,
그리고 땀냄새 나는 사람과의 만남….

자연과 마주치면 가슴이 열리고,
역사와의 만남으로 지혜를 얻기도 한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는 소담스런 정을 나눌 수 있다.

‘땅끝’ 가까이에 있는 해남 미황사는 이런 세가지 만남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여행지이다.
달마산은 백두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바다를 앞두고 솟은 이 땅의 마지막 산.
다도해를 한눈에 내려보고 있는 전망대 격인 산줄기에는
신라때 세워진 1,300년 고찰 미황사가 두런두런 역사 얘기를 들려준다.

#달마산

10여년 전 처음 미황사를 찾은 것은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진작가들의 사진첩을 뒤적거리다가 눈에 띈 다도해의 풍광.
‘달마산 정상에서 본 일출’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 속의 해돋이는 장관이었다.
고만고만한 섬들이 흩어져 있는 바다. 정상은 칼같은 벼랑으로 이뤄져 있었다.

달마산은 첫인상부터 독특했다.
남도는 말 그대로 황토들로 이뤄진 곡창지대.
고만고만한 산굽이를 돌아설 때마다 보이는 들녘은 끝간 데 없이 이어진다.
영암 월출산 자락 앞을 지나면 특별한 산줄기도 보이질 않고
바다와 맞닿은 들판만 아득하게 펼쳐진다.
그러다 갑작스레 나타난 달마산은 마치 비석이나 솟대처럼 땅거죽을 뚫고 솟은 것 같다.


산은 높지 않다. 해발 489m.
해남의 주산인 두륜산보다도 낮지만 그래도 풍광은 뛰어나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연륙교로 이어진 완도와 진도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바다 위에 떠 있다.
12㎞에 달하는 달마능선에서 내려다본 바닷가는 바로 땅끝으로 이어진 해안길이다.
굽이진 남도 해안선도 정겹다.

“달마산이란 달마의 법신이 상주하는 곳입니다.
중국과 한국·일본 불교는 모두 달마의 맥을 이어받았는데,
달마라는 이름이 붙은 산은 해남뿐입니다.
그래서 고려때는 중국인들이 달마산까지 찾아와 예불을 드렸다는 기록도 있어요”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은 달마산을 보기 드문 명산이라고 설명했다.

#미황사

산 중턱에 있는 미황사도 역사가 깊은 절이다.
달마능선을 병풍삼아 아늑하게 앉아있는 미황사는 신라때 세워진 1,300년 된 고찰.
한때는 40여개의 당우에 암자만 12개에 달할 정도로 큰 사찰이었지만
20여년 전까지는 폐찰이나 다름없이 버려져 있었다.

조선 숙종때인 1692년에 쓰인 사적비에는 미황사 창건설화가 남아있다.
신라때 돌로 된 배 한척이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인도에서 왔다는 이 배는 금으로 된 사람이 노를 잡았고,
금함에는 경전·비로불 등 40성인, 53선지식, 16나한상이 들어있었는데,
금강산에 갔으나 이미 절이 많아 불상을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금강산과 비슷한 산을 보고 이곳 해남으로 왔다고 했단다.

이렇게 해서 달마산 중턱에 미황사가 세워졌다.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쳤던 고찰이 언제, 어떻게, 왜 쇠락하게 됐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다만 미황사 일대의 민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그럴싸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150년 전쯤 미황사 스님들이 불사를 벌이기 위해 궁고(농악대)를 꾸려 공연하러 가던 길에
그만 풍랑으로 배가 뒤집혀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부도밭

미황사는 참 아늑하다.
가람의 배치도 편안하고,
응진전(보물 1,183호), 대웅보전(947호) 같은 오래된 당우도 볼 만하다.
하지만 답사객들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은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 만나는 부도밭.
2개로 나누어진 부도밭에는 탑비와 부도, 사적비를 합해 모두 32기가 들어있다.

미황사 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만들어져 역사는 길지 않다.
그래도 풍상(風霜)에 깎여 갓머리가 두루뭉실해졌지만 돋을새김을 한 문양은 독특하고 아름답다. 부도를 지키자는 뜻으로 새겨놓은 자물통,
다리를 꼬고 있는 오리,
성질 사납게 생긴 도깨비,
납작한 거북….
특별히 멋을 내지 않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정겨운 미물들을 새겨놓았다.
마치 조선 백자처럼 은은하고 수수한 멋이 풍긴다.

미황사 부도의 멋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비교적 널리 소개됐다.
주지 금강스님도 미황사 부도를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두륜산 대둔사(대흥사) 자락에서 태어난 그는
부도가 더 많이 훼손되기 전에 원형을 남겨야겠다는 뜻에서 1989년부터 탁본을 시작했다.
96년에는 서울과 대구, 부산을 돌며 탁본전을 열어 미황사 부도를 알렸다.

“요즘 사찰을 찾는 사람의 90%는 관광객들입니다.
이들에게 딱딱한 경전보다는 불교문화재들이 불교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을 안겨주지요.
부도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탁본전을 열었습니다”

해남땅에 유난히 애착이 많은 그는
앞으로 해남을 중심으로 영암과 강진, 보성을 엮어
불교문화재, 청자문화, 역사적인 인물 등을 가르치는 ‘해남 역사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말차를 마시며 금강스님과 해남 얘기를 나눴던 미황사의 밤.
차맛이 달마능선을 넘어온 남도의 푸른 물빛만큼이나 시원했다.

▲여행길잡이

호남고속도로를 탄 뒤 톨게이트를 지나 나주 방면 비아IC로 진입.
처음 마주치는 3거리에서 왼쪽 나주·목포 방면으로 향한다.
국도 13호선을 타고 나주를 거쳐 해남·영암·완도 방면의 이정표를 보면서 달린다.
해남읍에 들어서면 완도 방면 이정표를 따라 해남읍~삼산면~화산면~현산면을
거쳐 월송까지 간다.
월송마을 입구에서 주유소를 끼고 돌아 미황사까지 7㎞.

서해안고속도로는 목포IC에서 빠진다.
목포시내로 들어서자마자
해남쪽 국도 2호선을 타면 성전리에서 국도 13호선으로 해남읍까지 간다.
해남읍내에서 완도 방면 13호선을 타고 달린다.

센트럴 시티에서 5분마다 1대씩 떠나는 광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까지 간 다음
해남행으로 갈아탄다.
해남에서 완도방면 버스를 타고 월송까지 간다.
월송에서 미황사까지는 택시로 5,000원.
미황사 (061)533-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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