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12-17 16:39
[한겨례 신문] 천의 무늬 천년의 울림 들리는 듯
 글쓴이 : 노형석
조회 : 2,214  


억겁세월을 견딘 쇠종 위의 보살과 공양자상이 깨달은 자의 은근한 미소를 띠고 있다.
눈빛만으로도 마음 통한다는 염화미소다. 찰라의 행복이 이런 것일까.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전남 해남 달마산 미황사에서는
요즘 탁본된 전통 범종 무늬와 관객 사이의 말없는 문답이 한창이다.
창건 1253돌을 맞아 이 절의 누각 자하루에서 지난 11월9일 막을 올린
탁본전 `천년의 소리’(내년 1월2일까지)는 생소한 범종문양을 통해
문화재 보는 눈맵시를 가다듬을 수 있는 자리다.

출품작들은 절 주지 금강스님이 96년부터 최근까지
실상사, 내소사, 상원사 등 나라 안 20여 개 사찰을 돌며
정성껏 떠낸 40점의 전통 범종 문양들이다.
우리 종의 이상미가 발현된 통일신라시대부터
중생 제도의 수단으로 종이 정착되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각양각색 종문양들이 자태를 뽐낸다.

용모양 고리와 음통, 연꽃봉우리에 박힌 곽 문양 등이 특징인
우리 범종은 예술미에서 중국을 능가하는 전통예술양식의 꽃으로 평가받는다.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의 명성 때문에
일반인들은 종 문양하면 주악상이나 비천상 정도만 알고 있기 십상이지만
전통종의 문양은 사실 놀랄만큼 다양하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이나 향을 올리며 승천하는 비천공양상을 주로 썼다.
고려시대에는 공양상 보살상이, 조선시대에는 삼존불상이 범어문양, 보살상과 뒤섞여 쓰였다.
시대따라 새김된 보살의 옷깃문양도 다르다.
천의 옷자락을 나부끼며 생황 불고 공후를 켜는 주악천인의 유연한 몸짓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상원사 동종의 문양은 최고 걸작품이다.
이 동종은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지옥중생들을 제도하고 성불하겠다는 지장보살이 명문과 함께 새겨진 갑사 범종은
구름 위에 당좌가 있는 모양이 독특하다.
아담한 삼존불 위에 양산처럼 보개장식이 새겨진 변산 내소사종이 그윽한 아름다움을 빛내고,
누나같은 안동 봉정사 법당 종문양,
과년한 규수 같은 남원 대복사 범종은 수수함으로 다가온다.
스님이 종치는 모습을 새긴 안양 중초사의 희귀한 마애석각은 색다른 감상의 기쁨을 더해준다.
지역적 특색과 독창성이 서린 도상들은 조악한 주악 비천상 종만 남발하는
오늘날의 안이한 복원 풍토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탁본전은 잃어버린 미황사의 대종을 복원하려는 금강스님의 발심 덕분이다.
조선후기 만든 대종을 일제시대때 공출을 우려해 땅에 묻어버렸다는 이야기에
가슴아파했던 그는 앞서 각지의 종을 연구하고 공부하려는 의도 아래 탁본을 떴고,
이 과정에서 전시까지 벌이게 되었다.
백방으로 자금을 모아 숙원인 서울전시도 내년 봄쯤 벌일 참이라고 한다.
“공부해서 좋고, 대중들은 종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니 좋다”라는 스님의 어깨너머로,
입 튀어나온 청도 운문사 대종의 보살상이
“왜 이제사 나를 보느냐”며 눈 흘기는 듯하다. (061)533-3521.

해남 미황사/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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