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4-12 08:41
대중은 나의 거울이다 - 불교신문
 글쓴이 : 다경
조회 : 606  

해남 미황사 금강스님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보는 것”  
   
   
  “이제는 천년 고찰 유지해온 주민들에게 베풀어야 할 때”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해남 미황사. 교통여건이 좋아진 지금도 사실 멀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6시간, 부산.대구에서도 4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라 여간해서는 찾아갈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런데도 해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10만 명을 넘는다. 기암괴석을 병풍처럼 두르고 낙조가 드리워지는 장엄한 바다를 안고 있어서일까. 그것만으로는 천리 길에 마음을 내기 어렵다. 어린이 한문학당, 연중 템플스테이, 참선 집중수행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 괘불재와 음악회, 어르신 노래자랑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광고도 없고 그저 인터넷 홈페이지와 입소문에 의한 발길이 대부분이다. 4월4일 KTX와 승용차를 갈아타며 찾아갔다.
주말 ‘1박2일 진달래 맞이 템플스테이’를 마친 후 영광 불갑사를 경유해 서산 마애삼존불을 친견하고 돌아온 금강스님을 밤10시에나 만났다. 법랍 27~28년. 주지 맡은 지 10여 년이 됐지만 ‘주지 스님’ 보다는 그냥 ‘금강스님’으로 많이 불린다. 누구를 만나든 차 한 잔으로 친근하게 맞이하고 그렇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주지 소임을 맡기 전부터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수행프로그램을 운영해오며 쌓아온 20여 년 경륜과 미황사의 변화가 알려지면서 이제는 종단의 ‘교수사’로 위촉돼 ‘참선지도방법론’을 널리 보급하게 된다.
 
금강스님은 서울에서 중앙승가대를 다녔다. 승가대신문 기자와 학생회장, 전국불교운동연합 부의장, 범종단개혁추진위 공동대표 등을 맡았다.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불교는 사찰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전 광주 원각사에서 학생회 지도법사를 맡으면서 시작된 ‘현대에 맞는 승가의 역할, 현대사회에서 승가의 길’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져 갔다. 그래서 재학시절 포교연구부에서는 늘 ‘포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한편 토론도 쉬지 않고 계속했다. 학생회장을 맡기 전까지는 주말에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다. 중원불교대 강의를 비롯해 국립의료원, 능인선원 등 각종 법회를 맡아 포교현장을 누비기도 했다. 종단개혁으로 종단 집행부가 자리를 잡을 무렵엔 면학분위기를 되살리기 위해 고산.혜정스님을 모시고 포살을 했다.
하지만 종단개혁에 일조하고 미황사로 돌아와서도 ‘승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놓을 수 없었다. 지게 대신 포크레인을 운전하며 전각들을 짓길 1년 반. 이번에는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의 부름을 받았다. 한국불교 전통 참선수행법을 익히고 개인적 수행에도 힘을 쏟았다. “큰스님을 모신 3년이 가장 큰 전환점이 됐다”고 기억할 만큼 잊을 수 없는 시기이다. 서옹스님은 늘 당신의 늙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먼저 걱정했다. ‘지금은 물질적 욕망과 과학으로 인해 삶의 토대가 무너지고, 인류역사가 황폐화되어 가는 시기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본래 마음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하고 만다’ ‘수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역경을 극복할 힘을 주어야 한다’며 ‘정신적 지도자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냐’고 다그치곤 했다. 미수(米壽)의 고령에도 서옹스님은 중생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백양사에서의 ‘참사람 수행결사’는 그렇게 시작되고 일반인과 IMF 실직자를 위한 단기 수행프로그램을 고안해 진행하기도 했다.
백양사를 나와 선방(禪房)을 돌다 다시 미황사에 들렀을 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지로 임명돼 있었다. 처음에는 ‘땅끝마을의 작은 절 하나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한 가지 마음뿐이었다.
  
   
어린이한문학당 성공적 운영
 
전국 10여 사찰서 ‘벤치마킹’
   
땅끝마을 템플스테이 입소문
 
참선 수행 ‘참사람의 향기’는
 
국경 넘어 ‘세상 속으로…’
 
  
스님에게는 10년에 한 번씩, 두 번이나 운명을 바꿀 정도로 좋은 경험이 있었다. 20대 중반 대흥사 북미륵암에서 염불삼매 체험으로 불퇴전의 신심과 인과법에 확고함이 생겼다. 30대 중반에 선원에서의 화두삼매 체험으로 내외부에 속지 않는 마음과 매순간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많은 것들과 만나며 살아왔다. 하지만 주지 소임을 살면서 한 가지에 집중하고 공부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계획적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선방의 안거와 때를 같이 하여 매일 108배와 참선수행을 주요 일과로 생각하고 100일을 살았다. 혼자 약속으로는 잘 지켜지지 않을 것 같아 대중들에게 알리기까지 해가며 시작한 동안거였다. 거기에 8박9일간 집중수행프로그램도 새롭게 만들어 진행하면서 산문 밖을 나서는 일을 삼간 채 사니 나름으로는 알찬 안거를 보냈다.
2005년부터 매월 한 차례 진행하는 참선집중 수행 ‘사람의 향기’는 58회에 걸쳐 1200여명이 다녀갔다. 직장인으로서 정말 내기 어려운 7박8일, 직장에서 휴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사표를 쓰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얼마나 절실했기에 그랬을까. 스님은 그들을 대충 맞을 수 없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율 1위 국가. 우울증 환자는 좀 많은가. 하지만 그들을 도와야 하는 불교의 수행법은 승가중심이라 그들에게 큰 도움을 주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힘들어도 쉴 수가 없었다.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5분씩 면담해 개인적 고민을 듣고 수행과정을 체크해가는 가운데 ‘참사람의 향기’를 서서히 느낄 수 있다. 그 힘겨운 7박8일이 이제 스님에게는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됐다.
“주지 소임을 보면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이다. 절실한 사람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나도 공부할 수 있는 이게 얼마나 좋은 공부방법인가. 단 한 사람이 오더라도 좋다. 사람 수에 관계없는 수행이다. 내가 가르친다는 마음이 아니라 그들의 수행을 돕는 마음으로 함께 수행하는 것이 ‘참사람의 향기’가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금강스님은 스스로도 “공부가 굉장히 됐다”고 생각한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 타종교인, 무종교인, 자기 문제에 빠져서 고민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발심하게 하는 수행을 매달 계속하다 보니 그것이 곧 자신의 또 다른 발심을 돕는 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심이 깊어지면 수행이 깊어진다”는 말이 어느 순간 마음 깊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게다가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면하며 지내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하는 내용까지 얻고 있으니 수행이 깊어짐에 늘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스님은 ‘참사람의 향기’ 이 수행을 “평생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주지를 안 하고 다른 데를 가더라도 그 것만은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황사를 중심으로 생각해봐도 사람 간에 만남 없이 쓸쓸히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조상이 대를 이어오며 해온 시주로 가람도 유지하고 스님들의 수행도 도와왔는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스님은 “이제는 절이 그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절은 한국인에게 아직 추억이 있는 공간이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놀이문화도 다양해지면서 모일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절을 그냥 할머니, 어머니가 다니던 절로 남게 할 것이 아니라 홈페이지를 통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의 2세, 3세가 오도록 절을 만남의 공간, 가족 간 연결고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스님이 지론이다.
“나의 이름을 듣기만 하여도 나쁜 곳에 빠지지 않고(聞我名者免三途) 나의 모습을 보기만 하여도 즉시 해탈하게 하여지이다(見我形者得解脫) 삶의 모습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수행을 하겠다.” 새벽마다 이렇게 발원하며 스님은 또 한 번 생각한다. “사찰도 늘 살아있어야 한다.”
 
  
 
 
  
 
   금강스님은 …
 
  
1982년 17살 때 해남 대흥사에서 지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중앙승가대학교를 마쳤다. 총학생회장과 승가대신문 편집장, 전국불교운동연합 부의장, 범종단개혁추진회 공동대표를 맡아 1994년 종단개혁에 일조했다.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방장 서옹스님을 모시고 ‘참사람운동과 무차선회(1998)를 기획, 한국선을 일반화하고 세계화하는데 일조했으며, 템플스테이, 참선수행-참사람의 향기, 괴불재 등 다양한 수행과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세상과 호흡하는 산중사찰의 전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미황사의 1년을 정리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을 펴냈으며 미황사 주지(2000년~현재) 소임을 보며 인터넷신문 ‘미디어붓다’ 회장,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공사’ 사무총장를 맡고 있다. 조계종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최근 종단의 ‘교수사’로 위촉됐다.
 
 
 
마음을 열어주는 징검다리…‘차’
 
미황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원인 중의 하나는 ‘차’라고 한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영향도 있지만 미황사는 제법 알려진 곳이어서 가족이 함께 구경하러 오거나 떼를 지어 온 답사객들이 종종 있다. 그 때 미황사에서 차를 마시고 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미황사에 가면 주지 스님이 공짜로 차를 주고 인생 상담도 해 준다’는 소문이 퍼져 방문을 열면 마루에 즐비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차 맛을 보겠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날마다 오전9시부터 마시는 차가 오후6시가 되어야 끝나곤 했다.
금강스님은 “몸이 차로 가득 차, 바늘로 손끝을 찔러보면 푸른 찻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고 할 정도로 오는 사람들 누구와도 차별 없이 차를 나누었다. 그 덕분에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었고, 사람들의 고뇌를 간접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차는 나와 사람들 사이에 길을 놓아준 징검다리 같은 존재”라며 한문학당이나 집중수행인 ‘참사람의 향기’를 진행할 때에는 항상 차담시간을 1시간 넣는다
 
해남=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711호/ 4월13일자]
2011-04-09 오전 10:12:40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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