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12-17 16:52
[한겨계 신문] 딸들아,평화의 땅에 환생하소서 미황사③
 글쓴이 : 곽병찬
조회 : 2,607  

산사에서 보낸편지(11)-딸들아, 평화의 땅에 환생하소서



천진정토 미황사의 참 모습은 부도밭에 가보면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큰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담아두는 게 부도입니다. 그러니 불가에선 성보로 귀하게 여깁니다. 하물며 일반인의 묘석도 부정 탄다 하여 잡티 없이 보전하는 법인데, 큰 스님의 부도야 어떻게 조성하고 관리하겠습니까.

[이미지출처: 네이버] 이중섭의 '소와 새와 개'

그런데 미황사 부도는 이런 상식의 저 너머에 있습니다. 혹은 아이들 낙서 같고, 혹은 잘못해 버려진 것 같은 조각들이 탑신 여기저기 새겨져 있습니다. 왕릉 앞의 12지신상 처럼 엄숙하거나, 사대부 묘지의 문인석 혹은 절집의 사천왕상처럼 근엄하거나 험상궂지도 않습니다. 그저 치기어린 모습으로 이리저리 장난을 걸 뿐입니다.

하지만 부도 조각이란 게 꼭 어떠한 틀이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죽은 자의 초상화는 꼭 창백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른은 항상 근엄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녀가 유별하지 않듯이 사람과 파충류 갑각류 따위를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열등하고 우등하다고 분별하는 것도 어리석습니다. 그리고 옥토끼는 꼭 신화로만 존재할 이유도 없습니다.

화가들은 언제나 생명 본래 모습을 재현하는 그런 꿈을 꾸어왔습니다. 관습과 제도가 보고 재현하도록 한 대상과 재현방식을 거부해왔습니다. 그들은 원초적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꾸밈없이 그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제도화된 요구들과 항상 충돌했던 것이죠. 이중섭의 소와 게와 물고기와 닭이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이중섭의 동물은 미황사 부도탑의 게와 물고기, 닭 등과 꼭 닮았습니다.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고, 해학적이지만 다층의 의미를 갖습니다. 때문에 부도밭 속의 동물들은 차라리 이중섭의 그림이 조각으로 살아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엔 오리 1마리, 게 5마리, 거북이 6마리, 거미 1마리, 물고기 5마리가 있고, 호랑이 4, 토끼와 사슴 각 한 마리씩 모두 26마리의 식구가 있습니다.

미황사 부도밭은, 지엄한 큰 스님 부도에 장난스런 미물을 왜 새겨 넣었을까 하는 상투적인 의문 이외에도 부도밭 위치나 부도탑의 숫자 따위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부도밭은 보통 산문 입구에 조성합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대개는 그 오른쪽에 부도밭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천왕이 지키는 불이문 안쪽에는 부도밭을 조성하지 않는 게 관례입니다. 봉암사처럼 창건주인 지증대사의 부도를 대웅전 뒤쪽에 세운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터가 너무 세다거나 하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그리 한답니다.

그런데 이곳 부도밭은 대웅전에서 달마산 허리를 따라 남쪽으로 나있는 오솔길 5백 미터쯤 올라간 곳에 있습니다. 절집 뒤에 있는 셈이죠. 거기에 21기의 부도와 5기의 탑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1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작은 부도밭이 있습니다. 모두 조선시대 후기, 1700년 경에 세워진 것들입니다.

금강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황사의 부도는 원래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군데에 자리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남쪽과 서쪽에서만 부도들이 보이나 옛날에는 동·서쪽에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갈수록 상식과는 멀어집니다. 셋째 의문은 이 작은 절집에 왜 그리도 많은 부도가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미황사는 대흥사의 말사인데, 본사보다 많은 28기의 부도와 6기의 부도탑이 있답니다. 다시 금강 스님의 설명입니다. “어느 노스님이 옛날에 ‘미황사는 우리 한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절이라서 스님들의 부도를 많이 세워서 반도의 수승한 기운이 바다로 풍덩 빠지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는 자들이 의문을 갖고 있든 말든 미황사 부도밭의 동물 스무 여섯 마리는 사리탑에 300년이나 버젓이 배 깔고 잠들거나 누워있거나 기어 다녔던 것입니다. 주지 스님 방에서 배 깔고 만화책 보던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방아찧는 토끼, 여기저기 기어다니는 게, 태평스런 거북이, 호기심 가득한 닭 모양의 극락조, 고양이 보다 더 귀여운 호랑이 등.

이중섭은 6.25전쟁 때 제주도로 피난을 갔습니다. 거기서 아이들과 아주 가난하게 지냈지요. 주로 물고기 게 등을 잡아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육지로 돌아온 이중섭은 얼마지 않아 사랑하는 아이들을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보냅니다. 그때부터 그의 그림 속 주인공은 게와 물고기, 벌거벗은 아이들이 됩니다.

주인공들 사이엔 아무런 분별이 없습니다. 하나로 얽혀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게도 물고기도 이중섭의 자식이고 또 이중섭 그 자신인 듯도 합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가난 때문이긴 하지만 그가 살기 위해 희생시킨 물고기들에 대한 추모 그리고 이들의 아름다운 공생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그런 그림 속에 담았다고 합니다.

새와 물고기, 호랑이와 토끼, 게와 원숭이 따위가 인간의 영혼과 한데 어울리는 곳, 미황사 부도밭은 바로 이중섭이 꿈꾸는 세상입니다. 극락이 있다면 바로 그런 곳이 아니고 어디겠습니까. 부도에 저 동물들을 새긴 석수들이나 부도에 그런 조각을 허락한 스님들이나 모두 그런 무정 유정중생의 한량없는 화평을 기도하고 갈구했었을 겁니다.

그러니 미황사는 평화였습니다. 나와 너, 어른과 아이, 인간과 자연, 땅과 바다, 빛과 어둠, 공과 색 따위의 가름과 분별이 없는, 不二의 평화였던 것입니다. 아, 천진보살님, 죄송합니다. 혜암 스님의 말씀처럼 천지만물이 천진불인 줄 모르고, 알량한 내 분별심만 자랑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부도탑 기단석 한 조각으로 들어가 천년 세월을 뒹굴거릴 수 있을까요. 당신처럼 배 깔고 뒹굴거리면서도 세상에 웃음과 평화를 줄 수 있을까요.

대웅전 앞 뜨락에 서니 해를 삼킨 채 붉게 타오르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잠들 차비를 하는지 저녁 어스름에 잠겨듭니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생각합니다. 구천에 떠돌던 그 넑들이 여기 천진정토에 머물러, 못다 지은 웃음을 마저 짓고, 못다 꾼 꿈을 마저 꾸고, 못다 이룬 행복을 마저 이루기를 빌어봅니다.

영험 많으신 미황사 괘불님께 엎드려 눈물로 간구합니다. 두 어린 넋이 부디 이 천진 정토에 환생해 저 별과 달, 게와 새 등과 함께 한량없는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누리게 하소서.


문화부장 곽병찬
chankb@hani.co.kr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117 521 615,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