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12-17 16:59
하늘말나리꽃이 지기 전에 -<꽃이 진다 꽃이 핀다 > 中
 글쓴이 : 박남준
조회 : 2,034  

하늘말나리꽃이 지기 전에

-미황사

햇빛이 반짝인다. 방 안까지 밀려온 아침 햇살이 금세 후두둑 비를 뿌린다.양철 지붕위에도 감나무 푸른 잎새 위에도 소나기처럼 금세 비를 뿌린다. 어- 날이 벌써 개나 보네. 햇살이 반짝인다. 여우비. 호랑이가 장갈 나. 전화벨이 울린다. "오늘 중복 꽤 덥지요. 그러나 말입니다. 땀 흘리는 날들 아름다운 것입니다. 더위야 뭐 제까짓 게 얼마나 가겠습니까. 곧 입추가 오고 가을이 머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견뎌봅시다. 연락사항 남겨놓으시고요. 그리고요. 수박이라도 한 덩이 깨서 복달음하시고요. 그럼 안녕."
"저 금강입니다. 하늘말나리꽃이 올해는 더 많이 피었습니다. 한번 오셔요." 띠띠띠띠띡.
잠시 개울가에 나가 있는데 자동 응답기에 녹음된 해남 미황사 금강 스님의 전화였다. 하 그러고 보니 어찌 봄이 갔다 오고는 그간 미황사에 가질 못했구나.
홍타령의 한 대목에 그런 절절한 노랫말이 있다. "내 정은 청산이요. 님에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흐르건만 청산이야 변할 리야……"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고 했던가. 그리하여 한치 내일 앞을 알 수 없는 미망의 삶이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는가.
그렇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젊은 날의 서슬 푸른 사랑도 잊혀지고 지워져서 장막 같은 안개를 피워올린다. 마치 벼리지 않은 날이 녹슬고 무디어진 채 스스로를 허물고 무너지듯 이제 그 흔적이 까마득하다.
그러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만나고 헤어지던 그 인연과 사랑의 일들이 나를 여기에 이르게 한 힘이었다는 것, 그것이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쓸쓸함과 절망의 늪과 같은 것이었을지라도.
부유하는 것만이 나를 지켜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의 문밖을 기웃거렸다. 다만 하루의 날이 저물고 다시 눈을 뜨기까지, 그날을 견뎌내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 여겼을 뿐, 그 어떤 소망의 이름을 그때 내 헤매임의 발길 앞에 두었던 것은 아니였다.
그랬던가. 아니다. 그때 내가 주문처럼 소원하던 것이 있었다. 이생에서의 삶이 끝나면 다시는 그 어떤 이름으로도, 그 어떤 생명의 끈으로도 인연 지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것이 있었다. 미황사를 찾았던 게 그 무렵이었던가. 남쪽 땅의 여기저기를 애써 눈감으며 다니던 끝이었는가.

유곽을 찾듯 산을 건너왔으나 보이는 저 산으로 가면 모든 길의 지척은 첩첩의 빗장을 걸어 열리지 않는다. 생애를 걸어가던 길이 있었어 그길의 어디쯤 손짓하며 부르던 잘못 들었나 어디서부터 한때 이 산중에도 흥망이 있었지 멀리 불빛을 가둔 산문의 이쪽 허공 중에도 이를 곳이 있었는가 도처에 일어난 횡횡한 비명, 시위 같은 바람이 문문을 걷어찬다 저 바람을 타고 나도 날아올랐던가 문밖에 떨어져 내렸던가 문득 흔들고 가는 생각 한편을 뚫고 고요를 가르며 땅-벼락처럼 울리며 꽂히는 풍경 소리 어떤 경전도 어떤 법어보다도 나를 관통하는 그 꾸짖음

눈 두는 곳이 절벽이다 생각이 미치는 곳이 절벽이다 그 절벽 앞에서 무릎꿇어 보았는가 절벽의 발걸음 되돌려 보았는가 건너오면 캄캄하도록 되짚어 건너야 할 강이 굽이굽이 놓인 절대적 이 불온한 윤회 제발 길이 보이지 않는다.

-「불온한 윤회」



멀리 달마산이라는 기암 절벽의 산세에 끌려 기웃거렸던 곳. 절은 마치 폐사지처럼 영락의 한편에 비켜선 채 퇴락해 가고 있었다. 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발길을 돌렸다. 대웅전 앞 당간지주를 보며 옛 생각을 더듬었다.
잠시 머물던 미황사의 풍경은 이내 내 기억속에 바래어져갔다. 몇 년 전이었다. 판화가 남궁산에게 연락이 왔다. 전남 장성 백양사의 고불미술관에서 자신의 판화전시회가 있는데 함께 가서 며칠 머물다 오지 않겠냐는 것이다.
기차를 타고 백양사역에 내렸다. 벚꽃놀이도 겸하자던 백양사 가는 길, 벚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푸른 쪽빛의 현호색이 산비탈마다 군무를 추며 봄날을 노래하고 있었다. 백양사에 갔다. 그곳 백양사의 고불미술관을 맡고 계시다는 한 스님을 뵈었다. 동자승 같은 스님은 그날 저녁 미황 사에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오셨다. 아, 미황사라고요? 해남에 있는 미황사 라고요? 젊은 날, 그 아픈 기억의 편린들이 밤 기차의 환하게 켜진 칸칸의 창을 열고 달려들며 눈앞을 스쳤다.
스님의 차에 몸을 싣고 우리일행은 해남 미황사로 내달렸다. 밤길의 미황사는 멀고도 멀었다. 저만큼 달마산을 뒤로 두고 가는 길, 땅끝마을에 내려 긴 밤길의 목을 축였다. 봄밤의 바닷가에 안개처럼 자욱한 갯내음이 떠나온 내 고향 법성포를 떠올린다.
다시 그 어린 날의 바닷가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그때 내가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야. 정말이지 이제 늙어버린 것이야.


미황사까지는 아직 멀다 마음은 저 산 너머로만 가 닿는데
이제 나아갈 길은 없구나
밤바다가 낯선 발자국에 자꾸 몸을 뒤집는다
여기까지라니 먼저 밀려온 물결이 땅끝에 이를 때마다
부르지 않은 지난 일들이 나지막한 이름을 부른다

봄밤이 깊다 달마산 너머
열나흘 지나 보름 달빛이 능선을 향해 오를수록
산은 한편 눕고 혹은 일어나기를 거듭한다.
잊었다는 듯이 잊지 않았다는 듯이

그래 때가 되면 이윽고 가야지
꽃숭어리째 붉은 동백이 긴 봄밤을 끝내 참을 수 없다는 듯
땅바닥에 뚝뚝 목을 내놓는다.

미황사까지가 멀다
그때 대웅전에 들며 나는 왜 그 말을 떠올렸을까
미황사를 등뒤로 발길을 떼어놓는다
내게 있어 아득히 잡히지 않는 먼길을 떠올린다
결국 알 수 없는 그곳까지가 멀다
-「미황사」

다시 미황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이른 봄밤. 동백꽃이 후두둑 져 내리는 미황사에서 하루를 보냈다. 언제 잠에 들었는가 눈을 떴는가. 새벽 창을 열고 바라본 멀리 진도 바닷가의 푸른 미명 앞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새벽 예불을 드리며 백팔 배를 드렸다. 고맙습니다. 저를 다시 여기에 부르셨습니까. 제가 아직 세상의 어디에 쓰임이 있습니까. 이렇게 미망으로 가득 찬 못난 고깃덩어리일 뿐입니다. 제 원망하는 마음 다 들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쓰십시오. 나를 드리오니. 온전히 다 드리오니……
아침이다. 대웅전의 주춧돌 위 기어오르듯 새겨 있는 게를 보며 엣 석공의 장난기 같은 짓궂은 웃음을 떠올렸다. 스님과 함께 부도전에 갔다. 맑은 웃음들이 부도전에 번져갔다. 우리 일행은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부도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경건해야 할 부도전의 곳곳에 토끼가 방아를 찧는 모습이, 황새가 한 다리를 꼬고 있는 것도, 게가 물고기를 물고 있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동심의 어린 날로 돌아가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쩝 하면 입맛 다시는 소리요 툭 하면 땡감 떨어지는 소리라는 얘기가 있다. 툭, 하면 나는 미황사로 떠나갔다. 동백이 한창이네요. 툭, 하고 나는 미황사로 달려갔다. 하늘말나리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하여 다시 툭, 백련꽃이 곱습니다.

내 몸은 그예 미황사에 떨어져내렸다. 작은 음악회에 시 낭송을 한다고, 단식을 한다고, 연꽃차회를 한다고, 달마산에 오른다고, 그때마다 동자승 같은 금강 스님은 맑고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그곳 미황사에서 아름다운 이들을 만났다. 그곳 미황사, 내 어둠 속에 가만히 등불을 밝혀 넣었으며 자폐의 문을 열어 출렁이는 햇빛속에 춤추게 했다. 미황사에 가야지. 하늘말나리꽃이 지기 전에 꼭 가봐야지.

박남준 시인의 산방일기<꽃이 진다 꽃이 핀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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