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12-17 17:06
여기가 우전국이야 ! -≪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2 ≫ 中
 글쓴이 : 박재동
조회 : 2,155  

『 여기가 우전국이야 ! 』

호탄 가는 길에 들르게 된 케리야라는 마을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장을 보거나 일을 보고, 길거리에서는 양꼬치와 화덕 속 벽에 척 붙여 굽는 빵을 팔고 있었는데,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곳인데도 이상하게 더러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부드럽고 밝은 햇빛과 파란 하늘 탓인지 마을 전체가 오히려 해맑은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나만 느낀 생각이 아니었다. 조금 지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 맑고 상쾌한 기분은 햇살처럼 온화하고 밝은 사람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기분 좋은 마을이다. 중국식으로는 우전(于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전이라고? 우전이라면!


우리는 이곳에 오기전에 선(禪)을 체험한다며 전라남도 끝자락에 있는 아름다운 절 미황사(美黃寺)에서 맹렬하게 졸면서 좌선을 한 적이 있다. 나와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주지 금강 스님도 좋았고, 진도와 완도가 보이는 절 앞의 경치도 좋았고, ‘작은 금강산’이라는 달마산을 등산하는 것도 좋았고, 스님을 따라가 구경한 하얀 연꽃과 그것으로 만든 백련차의 맛도 좋았지만, 미황사가 건립된 전설또한 좋았다.


아주아주 옛날, 남도의 바닷가에 아주 낯선 배 한 척이 도착했다. 그 배에는 금으로 만든 사람 (金人, 불상을 말함) 과 불경이 실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내려 황소의 등에 조심스럽게 실어 운반했는데, 가는 도중 황소가 더 이상 가지 않고 한 자리에 누워버렸다. 황소가 누운 자리에 절을 세웠는데. 그 절이 바로 미황사다. 그리고 그 배는 멀리 우전국(于田國)에서 왔다 한다.


그 우전국이 바로 여기란다! 그저 인도의 어느 소국이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여기였다. 신기하다. 그런데 다시 들은 말로는 우리가 가는 호탄이 당시의 우전국이고, 지금 이곳은 중국 당국이 케리야라는 이름 대신 우전이라고 바꿔 부르는 것이라 한다. 다소 실망스럽다. 그러나 장 감독은 “여기가 우전국이야! 여기가 우전국이라고!” 하며 그 감동을 그대로 유지하려 애썼다.


『 별과 함께 보는 영화관 』


조용한 햇살을 받으며 그 마을을 걸어가는 것은 마치 밝고 겸손하고 상냥한 어떤 사람의 마음속을 걸어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유쾌하게 걷는 중에 주은경씨가 노천극장이 있다고 가보자고 한다. 그것을 본 장 감독은 즉각 <바리공주> 회의를 여기에서 하자고 했다.

노천극장은 비가 잘 오지 않는 탓에 야외에 시멘트로 무대와 스크린을 만들어놓고 나무의자를 한 400~500석쯤 들여놓았는데, 뒤에 있는 영사기 돌리는 방도 역시 시멘트로 지어져 있었다. 모두들 <시네마 천국>을 떠올렸다. 남루한 듯 보이지만 느긋하고, 빈 듯 보이지만 마음 풍성하게 하는 정감 있는 극장, 한마디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관이었다. 밤에만 보는 이 영화관에서 이 마을 남녀노소가 영화를 보며 울고 웃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애태웠겠지. 그리고 돌아오면서 방금 본 영화 이야기로 또 한 밤을 수놓았으리라. 별과 함께 보는 영화관, 바람과 함께 보는 영화관, 어쩌면 강아지도 새도 울지 않고 같이 보는 영화관일 테지.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에 서로 동의하고 합의했다. 그 동안 서로 걱정했던 바리 연출 문제를 모두 해소한 실로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장감독이 참을성 있게 잘 기다려온 덕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가벼워진 마음으로 극장을 나왔다. <바리공주>를 여기에서 상영하는 광경을 상상하며, 여기서만 상영하자는 말도 등 뒤로 들으며….


『 색연필 한 자루 』


노천극장을 나와 호탄으로 출발하기 위해 차 쪽으로 가는데, 여자아이 셋이 쪼르르 따라왔다. 한 아이가 검지손가락을 세우면서 윙크를 한다. 그리고 내 상의 왼쪽 호주머니에 꽂혀 있는 색연필을 가리킨다. 하나만 달라는 것이다. 이곳 아이들로서는 알록달록한 색연필이 몹시 갖고 싶었을 테고, 그 많은 것들 중에 한 자루쯤 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음직하다. 그러나 내게는 한 자루 한 자루가 다 소중한 색연필이다.

이런일은 처음이 아니였다. 그때마다 나는 난처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중 비슷한 색깔이 많은 연두색을 한 자루 골라 한 아이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나머지 아이들도 달라고 한다. 안 돼! 그건 안 된단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돈을 조금 주면서 사서 쓰라고 했다.

이제 연두색이 필요할 때는 옅은 녹색에 노랑을 덧칠해서 만들어 쓸 수밖에. 연두색을 잃은 나는 갈빗대 하나를 빼버린 듯 허전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가슴은 멀리서 온 어떤 멀쑥한 아저씨한테서 받은 색연필의 연둣빛으로 가득하겠지….


박재동의 ≪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2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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