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01-01 22:33
미황사 아래 아름다운 작은 학교 이야기
 글쓴이 : 증심사
조회 : 2,043  

스님, 불자 힘모아 작은학교 살리다.

"농촌이 무너지는 큰 원인 중 하나가 학교가 없어지기 때문이에요.
거기다 학교는 농촌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잖아요.
정말 신중해야할 문제가 폐교인데 경제 논리로만 접근하니 답답한 노릇이지요.
면 소재지 학교만 가다 사교육에 의존하며 경쟁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서정 분교처럼 작은 학교는 전문성 가진 학부모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자원봉사자로 품앗이처럼 아이들 교육 일부를 담당하면 나름의 빛깔을 가진 학교가 될 수 있어요."

웃음꽃 만발한 학예회

1학년 찬흠이의 피아노 독주 곡목은 ‘종소리’, 너무 짧으니 연달아 두 번을 치라던 당부를 잊고 한 번 치고 냉큼 자리에 가 앉더니
이내 다시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가 한 번 더 연주하고는 뒷머리 긁적거리며 무대를 내려온다.
아이의 생뚱맞은 모습에 학예회장을 찾은 사람들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쑥스러웠을 찬흠이를 위해 큰 박수를 보낸다.
전교생 8명 , 선생님 2명의 작은 학교 서정분교(해남군 송지면 소재) 학예회는 시작부터 웃음과 박수가 넘쳐났다.
학생 수가 적어 피아노 치고 내려 와 곧 바로 합창이나 연극, 한국무용, 요가 같은 순서에 참여해야 하기에
아이들은 바빴지만 그걸 바라보는 어른들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엄마, 아빠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따뜻한 풍경 가득한 작은 학교의 학예회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은 이들로
북적대는 행사장은 마을 잔치처럼 들썩거렸다.
이 날을 위해 한 학부모가 잡아온 돼지 굽는 냄새는 분위기를 더욱 들뜨게 했다.
금강 스님은 사시 예불을 끝내기 무섭게 혹여 늦을세라 서정분교로 내달렸다.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시작한 천일기도의 마지막 백일기도를 시작한 지 스무날 남짓 된 이 즈음
사람 만나는 것도 삼간 채 대부분의 시간을 법당에 서 지내온 터였다.
산문밖에 한발 내딛는 것조차 잊고 지내왔지만 오늘은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폐교 이야기가 오가던 학교를 살리자며 인연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1년을 꾸려온 결과가
학예회라는 열매로 맺히는 날이니 스님은 자리를 빛내주고 싶었던 것이다.

‘폐교는 농촌 공동체 파괴의 주범’
작년 4월 전교생 5명의 서정분교를 폐교시키기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든 데는 분교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학부모들과 동네 주민들도 찬성했다.
그때 폐교를 반대하고 나선 이가 미황사 사무장 손영준․이지선 부부였다.
농촌에서 살고 싶어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온 이들이기에 학교가 없어지는 일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1년간 교사와 학부모가 힘을 모아 튼실한 프로그램으로 학교를 설득하고 나섰다.
이 때 이들에게 힘을 보태준 이가 금강 스님이었다.
스님은 초등학생을 둔 읍내에 사는 이들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미황사로 모이게 했다.
폐교 위기를 넘기고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은 한 학교의 관계자를 불러와 작은 학교 살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도록 했다.

“농촌이 무너지는 큰 원인 중 하나가 학교가 없어지기 때문이에요. 거기다 학교는 농촌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잖아요.
정말 신중해야 할 문제가 폐교인데 경제 논리로만 접근하니 답답한 노릇이지요.
면 소재지 학교만 가도 사교육에 의존하며 경쟁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서정 분교처럼 작은 학교는 전문성 가진 학부모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자원봉사자로
품앗이처럼 아이들 교육 일부를 담당하면 나름의 빛깔을 가진 학교가 될 수 있어요.“

스님을 믿고 따르던 이들이 하나 둘 관심을 가지면서 서정분교는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학부모 중심의 자원봉사자들이 나서서 피아노, 미술, 영어, 한국무용, 컴퓨터, 농사짓기, 사물놀이 같은 영역의 교육을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미황사 스님들도 거들고 나섰다.
금강 스님은 탁본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요가나 차 마시기처럼 스님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주는 스님도 있었다.
오가다 학교에 들러 아이들과 연 날리기나 자치기 같은 놀이를 해주는 마음 따뜻한 스님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스승은 자연이라고 생각한 금강 스님은 숲 해설가를 소개시켜 다달이 달마산을 찾아 나무 이름도 익히고,
숲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때는 서정 분교 아이들뿐만 아니라 작은 학교 살리기에 뜻을 같이 하는 읍내 학교 아이들도 함께 참가한다.

스님 따라 불자들도 나서다.

작은 학교 살리기의 한 축을 금강 스님을 비롯한 미황사가 든든히 받치고 있다면,
나머지 한 축은 신실한 불심을 가진 불자들이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학교가 1년 동안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둔 데는 대학 시절 불교학생회(이하 대불련) 활동을 했던 이들의 역할이 컸다.
대불련 출신인 윤예중․김해숙씨 부부와 신화균․김미옥씨 부부는 학창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터라
작은 학교 살리기에 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윤예중, 김해숙씨 부부는 얼마 전 아이들을 이 학교에 보내기 위해 학교 근처로 이사까지 왔다.
“처음에는 작은 학교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4월에 미황사에서 간담회를 연 뒤로
그것이 불씨가 되어 관심 있는 엄마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아이들 학교생활 이야기도 나누면서
이 일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사했는데 잘 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지낼 수 있게 돼 기쁘다는 김해숙씨는 생각을 같이 하는 또 한 가족이 옆 동네로 이사를 와 든든하다고 했다.
새 학기에는 읍내에 사는 7명의 아이들이 이 학교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기로 했단다.
40분이나 걸리는 통학길이지만 학부모들은 그런 힘겨움을 감수하고라도 아이들이 선생님과 따뜻한 눈빛 한 번 더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다.

작은학교, 스님 불자 교사 합작품

1학년 담임인 김미란 선생님 역시 대불련 출신이다. 몇 년 전 도시 학교에서 자청하여 시골 학교로 전근을 왔다.
번잡하고 버글대는 도시는 도통 체질에 맞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미황사와 인연이 닿자 날마다 예불에 참석해 볼 요량으로 절 근처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는 미황사 금강 스님 덕을 많이 본다고 했다.
이번 학예회 자료집을 펴내 는데도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고,
그간의 활동을 동영상으로 상영하는게 좋겠다는 아이디어와 함께 캠코더를 빌려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했다.
게다가 천도재 지내고 나면 과자나 과일을 아이들 간식으로 보내주는 걸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 작은 학교가 거창한 대안학교로 세상 밖에 알려지는 걸 경계했다.
학생 수가 워낙 적으니 차 한 대로도 어디든 갈 수 있어 도자기나 차 만들기 같은 현장체험 학습을 쉽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자원봉사자들도 개인 지도나 다름없는 교육을 할 수 있었고 제 자식처럼 모든 아이들에게 정성을 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학년이 10명 남짓은 되어야 원활한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걸 알기에 지금의 모습이 대안으로 비춰지는 것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금강 스님은 치자 물들인 손수건을 한 녀석에게 선물로 받았다.
‘그때 가르쳐 주신 탁본 멋졌어요. 다음에도 가르쳐 주세요’
서툰 글씨의 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한 3년 열심히 해보고 나서 안 되면 그때 가서 폐교해도 늦지 않는데 지금 포기하는 건
아이들을 상대로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다’며 학교를 살려보자는 뜻에 선뜻 마음을 내 따라준 이들이 오늘따라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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