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11-02 15:28
인연은 어떻게 익어 가는가
 글쓴이 : 남현정
조회 : 1,997  

나를 찾아 떠나다 7

인연은 어떻게 익어 가는가

-창건 1,256년 ‘미황사 괘불재’

남현정


지인에게 달력 크기의 미황사 괘불님 복사본을 받은 것이 지난 여름이다. 표구하여 집에 모시고는 얼마나 든든해했던지…. ‘이보다 더 잘생긴 분이 있을까, 이보다 더 덕 있는 분이 있을까’ 싶었다. 밖에 나갈 때도 집에 들어올 때도 가장 먼저 부처님과 눈을 맞추었다.

미황사에서 괘불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사진으로만 보던 나의 지극한 연인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년에 딱 한 번 괘불재를 통해 공개된다고 하니 만사를 제쳐두고 떠날 수밖에….


야단법석을 준비하다

10월 14일 밤 10시, 조계사 앞에서 인터넷 싸이월드 카페 모임인 ‘산사에서의 하루’ 회원들이 준비한 대절버스를 타고 도량석이 울리는 미황사에 도착하였다. 대웅전에서 새벽예불을 올리며 슬쩍 들보를 올려다보았다. 연꽃의 좌대 위에 앉은 부처님들이 그곳에 계셨다. 착하게 생기신 부처님과 낡은 단청 빛이 도시에서의 날선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응진전에 올라 바라보는 바다는 또 어떠한가. 그것은 길이요, 서서히 넓어져 평등을 이루는 여래의 품이다.

아침 공양을 끝내고 나오는데 금강스님과 마주쳤다. 공양도 못하셨다는데, 이곳저곳을 살피고 진두지휘하느라 분주한 스님의 얼굴이 환하기만 하다.

미황사가 사랑스러운 이유 중 하나로 사람들은 부도밭을 이야기한다. 작은 부도밭과 큰 부도밭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오는 이를 반긴다. 부도암 마루에 앉아 잠깐 땀을 식히고 내려오니 절 마당이 바빠졌다. 꽃으로 장엄한 단 위로 하나 둘, 공양물이 올라오고 마당에는 카펫이 깔린다. 종무소 앞에서는 만등불사와 수륙재 천도 접수를, 그 옆에서는 기금마련을 위한 불교용품 판매를, 공양간에서는 점심공양을 위한 밥과 찬을 마련하고 차일을 치랴, 떡을 괴랴 눈코 뜰 새가 없다. 공양주 보살님도, 행자님도, 자원봉사자들도, 스님들도 모두모두 바쁘다.

흙먼지가 폴폴 일도록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은 모두 괘불재를 위하여 자원봉사를 자청한 이들이다. 이들은 해남, 서울, 광주, 부산 등지에서 모여들었다. 땅끝 마을의 작은 절인 미황사에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길래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물어보면 미황사가 좋다는 것이다. 미황사가 왜 좋을까?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의 편안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그랬으니….


괘불님을 만나다

마을의 어르신들은 보제루에서 햇볕을 피하며 기다리고 삼삼오오 모인 동네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러는 중에도 야단법석을 준비하는 손길이 바쁘다.

미황사 괘불은 영험하기로 소문이 났다. 마을에 가뭄이 들면 동네사람들이 앞장서서 괘불님을 모시고 기우제를 하자고 청할 정도다. 또 그렇게 기우제를 올리면 하늘은 이에 감응하여 단비를 내리니 괘불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여물어갈 수밖에….

드디어 괘불재가 열리는 한 시, 여연스님과 전 주지인 현공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이 앞쪽에 자리하시고, 절마당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은해사 승가대학원에서 정진 중이신 한북스님의 사회로 괘불재가 시작된다.

마을의 장정들이 입에 흰 수건을 물고 괘불을 옮기기 위해 금강스님과 함께 대웅전 불상 뒤편으로 간다. 나무로 된 궤를 열고 궤불을 어깨 위에 받들어 올린다. 침묵 속에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에 모두 숨을 죽인다. 괘불대에 이르러 괘불이 걸리고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불두가 보이고, 그 옆으로 구름 속의 삼존불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윽한 눈매와 단정한 콧날, 야무진 입술을 한 부처님이 우리를 내려다보신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눈부시다. 괘불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간다. 단에 가려져 다 보이지는 않지만 부처님의 복스런 발 옆으로는 용녀와 용왕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바닷가 민초들의 염원이 헤아려지는 독특한 양식이다. 괘불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자 누구랄 것도 없이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미황사 괘불은 1727년에 일곱 분의 스님들이 조성하였다고 한다. 고려불화 양식의 기품과 조선불화의 화려함이 어우러진 길이가 12m, 폭이 5m나 되는 커다란 탱화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구니를 항복받는 손 모양을 하고 계시다. 넉넉하면서도 위의를 잃지 않는 아름다운 괘불 탱화는 색감 또한 은은하고도 깊이가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평온케 한다.

공양이 올려지고…

괘불 봉안과 삼보통청, 고불문에 이어 전남대 판소리 합창단의 음성공양 ‘보렴’이 올려지면서 괘불재는 그야말로 축제의 자리가 된다.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발원하는 이 자리에서 누군들 가슴이 펴지지 않을까.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을 위하여 백양사 지선스님이 법어를 내리신다.

“내가 오늘 나무아미타불 한 마디 하려고 올라왔습니다. 생명의 실상인 아미타불은 온 법계에 가득합니다. 중생이 모를 뿐입니다. 한 순간에 깨달아서 생명의 본질을 보고 나면 같이 있건 아니건, 무슨 종교를 믿건, 무엇을 하건 늘 자유자재하고 행복합니다.”

지선스님을 따라 온 법계에 가득하신 ‘나무아미타불’을 가슴 속에서부터 불러본다. 이어 금강스님이 ‘야단법석’에 모인 대중에게 덕담을 해주시고 나자, 한 해 동안 자신이 가꾸어왔던 것을 부처님 앞에 올리는 만법공양의 시간이 왔다.

농사를 지은 사람은 향기 나는 찹쌀과 듬직한 호박, 해남의 특산품 고구마를, 자반공장을 하는 이는 자반을, 귀농한 부부는 처음으로 거둔 콩을 올린다. 송지초등학교 서정 분교장은 40여 명의 전교생 사진을, 어린이들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어떤 이는 직접 염색하여 만든 다포와 뽕잎차를, 나눔의 증표인 헌혈증을, 뱃속 아기의 초음파 사진과 염원이 담긴 편지도 올려진다. 누구라도 정성스런 마음만 있다면 만법공양에 동참할 수 있고, 이어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고혼들을 위한 수륙천도재가 시작된다. 하늘을 배경으로 공양 올린 등이 화사하고,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이들의 모습 또한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공양이다.

광주 혜명다례원 회원들이 마련한 들차회, 어린이들을 위한 괘불 부처님 그리기 등의 행사도 마련되어 절마당은 잔치마당이 되었다. 누구라도 어우러져 분별과 편견을 벗어버리고 하나가 되는 자리. 본래 불성으로 돌아가 함께 기뻐하는 자리, 괘불재.

미황사 괘불님을 한 번 친견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세 번 친견하면 죽어 극락에 간다 하니 나는 이제 목마르게 소원을 쫓지 않으리라. 부처님과 눈을 맞추었으니 이미 소원은 이루어진 것이다.

천 분의 부처님이 나신다는 전설을 간직한 미황사에서 괘불 부처님을 친견하였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한 해를 열심히 산 후 이곳에 다시 와 괘불 부처님께, ‘내가 거둔 수확물’을 공양 올려야겠다.

<월간'여성불교' 11월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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