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12-10 23:37
이호신화백 월간산 .....달마산 춘양마을
 글쓴이 : 금강
조회 : 2,084  
2005.11. 4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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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을그림순례(11)] 황금바다와 동트는 산골

해남 달마산 춘양마을

▲ 달마산 미황사 2.73X99cm

세상의 빛은 계절은 물론이거니와 감정과 나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원색의 크레파스와 수채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던 어린 시절, 자연과의 교감보다는 화면에서 빚어지는 색채의 변화와 조화에 몰입했었다. 그래서 언제나 그림과 자연은 이분법적 상관관계로 이해되고, 기실 조형언어와 개성으로 존중되길 희망해온 터이다.

그러나 때때로 자연의 빛은 작가에게 절망을 안겨준다. 도저히 대상과의 합일을 꿈꿀 수 없는 표현의 한계 속에 느껴지는 대지의 숨결과 공기의 파장, 싱그러운 생명의 빛은 물론이고, 저무는 산천과 퇴색의 음영 또한 가슴 깊이 서려 오기 때문이다.

남도의 봄을 예찬했던 시절을 버리고 이제 가을 들녘으로 떠나가는 날. 해남 땅끝 달마산을 향해 가는 산천은 완연히 가을빛에 젖었다. 봄날에 들뜨던 노랑과 연두빛은 그윽한 황금빛 논과 추수 끝난 갈빛 대지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가을 녹음 또한 단풍으로 물드는 색채의 향연 속에 깊어간다.

오늘 해남행 첫차(07:30)는 달마산 미황사의 금강(金剛) 스님 청으로 산사음악회(10.15) 괘불재(掛佛齋)에 쓰일 밑그림을 내게 부탁한 터에 마친 숙제을 지니고 내려간다. 10년 전 산사에서 달마산을 오르내리며 금샘을 찾아 땅끝 마을 해풍 속에 화첩을 펼쳤었다. 바위산에서 굽어보는 땅끝과 저수지, 마을. 그리고 점점이 떠 있는 띠섬들. 진도, 완도, 다도해가 저녁 노을 황금빛으로 물들던 바다를 잊을 수 없다. 그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의 풍광은 마음 속 깊이 빛의 샘터로 간직됐다.

‘백두산에서 달려온 한반도의 척추 백두대간은 태백산을 경유, 지리산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기운은 무등과 월출산을 타고 땅끝의 만덕산, 두륜산, 달마산으로 이어진다. 그 땅끝, 해남으로 가는 고속버스는 한나절을 달려 불꽃같이 치솟은 월출산을 끼고 돌아간다.

해남에서 묵은 이튿날, 아침 버스를 타고 월송리에서 내리자 달마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달마산은 골기(骨氣)의 변화가 춤사위의 선율처럼 출렁이는데 가파르고도 완만한 선미(線美)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월출산이 금강산의 축소라면 달마산은 금강산 한 봉우리를 이곳에 옮겨 놓은 듯하고, 필획(筆劃)으로 말하자면 대가(大家)의 풍격(風格)이 느껴진다는 달마산…’(졸저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에서)

추억의 그림일기는 지난 만남을 떠올리고 사물은 오롯이 되살아난다. 역시 오늘도 해남 터미널에서 바꾸어 탄 완도행 버스. ‘땅끝’의 표지판이 어쩐지 마음의 파동을 일으킨다. 마침내 월송리에서 미황사로 접어들어 금강 스님과 잠시 다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스님의 인연으로 찾아가는 달마산 마을은 서정리 춘양 마을.

절집의 차를 얻어 타고 재 하나를 넘어가자 솔숲이 터널을 이룬 마을 입구 다음으로 첫집이 이장댁이다. 익히 들었지만 궁금하던 여성이장 최옥순씨(崔玉順?44)가 반기며 녹차를 내놓는다. 함께 인사한 식구는 남편 박유안씨(朴有安?49)와 시어머니 강형화 할머니(72)다. 첫인상에 부부 모두가 젊고 건강하며 생기있고 친절하여 길손의 노정을 편케 한다.

마을이 생긴 이래 첫 여성 이장이 된 최씨는 남매를 두고 남편과 함께 200마지기(약 4만 평)의 벼농사를 짓고 있다. 여기에 축산과 고추, 마늘, 양파, 고구마 농사도 곁들인 대농(大農)이다. 집뜰에 중장비와 농기구가 즐비하고 창고도 넉넉해 보인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묻지도 않는 터에 마냥 며느리 자랑이다. 사연인즉 맏며느리가 들어와 6남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켰고 이만큼 산다고 고마워한다.

산골 장춘리는 현재 20호에 주민이 45명이다. 2년째 이장을 맡으며 일구어낸 사업은 살뜰한 살림꾼의 면모를 보여준다. 농로를 포장했고, 메주창고와 마을회관을 건립했다. 한편 집집마다 문패에 부부 이름을 함께 박아 걸게 했다. 그런데 변변한 대문이 없는 집들이 많아 담장 또는 담벼락에 문패가 걸려 있다.

마을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아 모두들 각성받이로 하나둘 모여든 산골살이 인연들이다. 봄이 길고(長春) 겨울이 따뜻하다 하여 장춘 마을로 부른다는 산골은 달마산을 향해 층층논이 펼쳐지고 길 따라 오르며 집들이 점점이 자리 잡았다.

상점 하나 보이지 않는 오지마을은 덕택에 무공해 산지가 됐고, 식수는 마을 지하수와 달마산 계곡물을 그대로 마시고 쓴다니 감로수가 따로 없을 듯싶다. 때문에 사람들이 물 귀한 줄 모른다고 이장이 귀띔하니 복지(福地)가 따로 없다.

가을볕 아래 산물벼(말리지 않은 벼) 보다는 수익이 나은 포대벼(말린 벼)를 얻고자 널어놓은 벼들의 행렬. 마을회관 앞의 정진민(76)-김소래(68) 부부의 손놀림이 바쁘다. 말린 벼를 해 지기 전에 다시 포대에 담아 들이려는 삽질이 숨 가빠 길손의 물음에는 대꾸도 없다. 하긴 나의 질문이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랴.

저무는 마을길을 한 바퀴 돌아보고 이장집으로 돌아오자 그새 이장이 싱싱한 삼치회로 장을 보아 길손을 대접한다. 인상 좋은 남편은 일찍이 이장을 지냈던 경험자로 아내를 조언하고 협조해 주는 넉넉함이 배어났다. 참 괜찮은 외조의 박유안씨. 박씨는 좋은 횟감을 함께 나누자고 이웃을 부르니 마을에서 제일 젊은 가장인 황찬률씨(41)로, 그는 아들(지훈), 딸(혜원)과 함께 왔다.

황씨는 귀농인으로 서울에서 목포로 온 후 다시 해남으로 옮기면서 정착을 위한 준비과정이 필요했다고 한다. 황씨는 타지에 와서 눈치 보이고 또 텃세에 대한 염려가 없지 않았으나 마을 어른들이 모두 반기며 살펴주어 무척 행복하다고 털어놓자 “저으가 잘 하니께 이쁘하제 무신 소리고” 하며 박씨가 말을 끊는다.

쫄깃한 삼치회에 감칠맛 나는 해묵은 김치는 독특한 맛으로 침을 돋구는데, 또 방문을 밀고 들어오는 이들은 새마을 지도자 정동희씨(鄭東熙?62), 개발위원장 룡정복씨(龍正福?58), 개발위원 신동식씨(申東植?53) 들이다. 그런데 모두들 산골마을살이의 고단함 보다는 흥겨움과 넉넉함이 배어있다. 딴 산촌에서 익히 만나는 소외감과 낙후에 대한 호소가 전혀 없다. 이 대목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아니라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되묻게 한다. 시비와 다툼, 범죄와 원망이 없는 터전이라면 그곳이 진정 낙원일 테다.

저녁상을 물리자 이장 시어머니는 자꾸 자기 방에서 자라고 권하나 텅빈 마을회관이 생각나 그곳으로 가겠다고 내가 고집하니 할머니는 청소와 이부자리 준비로 떠났다. 황씨의 청으로 그의 집으로 가 차 한 잔을 나누는 사이 아내 이경미씨(40)가 바깥일(학습지 교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젊은 귀향인 부부와 나란히 앉아 그들의 둥지에서 꿈을 나누는 시간. 만남과 사랑, 신뢰와 의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다.

직장동료이자 산악회원으로 만나 막연히 지내던 중 일어난 사건은 신선한 충격이요, 사랑의 탯줄이었다. 어느 날 고된 산행으로 흙투성이가 된 등산화를 모두 벗어두고 잠든 시간 황씨가 신발 하나 하나를 털고 닦아 놓는 모습에서 이씨는 그만 가슴이 설레었단다. ‘저런 마음을 가진 사내라면 정말로 믿을만하겠구나.’

그 믿음 하나로 마침내 사랑의 싹이 터 가정을 이룬 부부. 아내는 남편의 의지를 존중해 목포로, 또 해남 산골로 내려온 지금 후회 없이 다행스럽고 이웃에게 감사하다는 부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은근히 나의 행복으로 전해온다.

“황선생, 장가 못간 노총각들에게 선생처럼 산악회에 들어가 맨날 여자 등산화를 씻어주라고 할까요. 그런데 그 짓을 알아주는 여자가 없으면 속상해서 어쩌나. 하하하.”

황씨는 아이들에게 컴퓨터 놀이는 허용하나 TV를 꺼버린 지 오래라는 그의 생활은 콩 농사와 축산이 주업이다. 그리고 틈틈이 익힌 서각(書刻)으로 아이들 학교(서정분교)에서 방과 후 특활활동에 봉사하고 있다.

“사람이 뜻을 세우는 일도 싶지 않지만 무슨 일을 마음 먹은 대로 굽히지 않고 지속하는 사람이 저이예요.”

남편을 향한 아내의 지순한 사랑과 의지의 사내 황찬률. 그는 눈빛이 선한 부드러운 사내로 느껴졌다.

금년에 완공했다는 깨끗한 마을회관에서 따뜻한 밤을 보낸 이튿날 아침. 가을의 산골 공기는 쾌청한 날씨에 청신한 기운으로 폐부를 서늘하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산길에서 드러나는 달마산의 위용과 동 터오르는 기운 속에 마을이 잠겼다. 월출산에서 달이 솟듯 달마산에서 여명이 피어오르는 장관은 모름지기 만물이 깨어나고 우주를 밝히는 시원의 역사. 그 첫날의 또 다른 하루다. 저무는 황금빛 바다와 동트는 산골의 여명은 무엇이 같으며 다를까. 생과 사의 변주가 천리(天理)와 순환 속에 깃들어 있다.

이른 아침 포대벼를 장만하느라 미래질(당글개)하는 김승님씨(55)를 만나고 마을회관에 이르자 어제의 노부부가 다시 벼를 포대에서 바닥에 쏟아 널고 있다. 잠시 담배를 물고 쉬고 있는 할아버지(정진민)를 향해 화첩을 펼치자 할아버지는 엉거주춤, 할머니는 이내 쓴소리다.

“거시기 영감상판은 어데 쓸라고 그라싸께. 우리를 먹여 살려 준당께 언능 일어나지 않고 멋하여.”

할아버지는 황급히 고무신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널어놓은 벼를 흩으며 뒷짐 진 채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장댁에서 아침을 신세지고 마을 전경을 살피기 위해 마을 반대편 길, 농로로 걸어보자 하나 둘 가옥이 드러나고, 산자락과 층층논이 드러난다. 포장농로 옆 개울엔 가을꽃과 억새들이 찬연하다. 물봉선, 개미취, 쑥부쟁이, 구절초, 노랑민들레, 여뀌, 달개비와 고들빼기 꽃도 아직 한창이다.

고추잠자리가 벼이삭 위로 춤을 추고 풀섶에선 여치 울음소리 생명의 화음으로 넘쳐난다. 결실의 축제, 우주를 향한 생명의 소리다. 이 풀벌레의 합창 속에 경운기를 타고 오는 강동배 전임 이장(63). 머리수건을 쓴 정인심 할머니(68)와 인사를 나누고 농로에서 화첩을 펼친 후 붓을 들었다.

또한 점심을 얻어먹은 후 벼 베는 현장으로 달려가니 이장 부부가 한 해 동안 땀 흘린 논에서 추수하는 장면이다. 마치 이발하듯 박씨가 능숙한 솜씨로 콤바인을 몰아 탈곡된 벼를 경운기의 포대에 담는다. 이 날을 위해 해와 달이 바뀌고 조금씩 주름이 늘었으나 마음은 달뜨는 날. 이 순간 보다 더한 감사의 기도와 은혜는 없으리라. 추수와 탈곡이 이루어지는 금년의 송지면 장춘 마을은 농가수 11곳에 27.5ha(약 8만 평)의 농사로 624포대를 정부비축용으로 할당받았다. 그 한 포대(40kg)는 현시세로 42,000원이다.

다시 마을길을 돌아보자 돌담과 감나무, 동백과 대숲이 우거진 사이로 집들이 가을빛 속에 드러난다. 예전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동백들이 외지인에 의해 팔려나갔다는 쓸쓸한 말을 들으며 그 사람들이 한 짓이 얼마나 마을 경관을 파괴하고 자연유산을 훼손하는 일인지 분명히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심약한 산골사람을 꾀는 일은 실로 큰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제는 해가 있을 때 살펴보려고 기억해둔 송지초교 서정분교로 간다. 이장 부부와 아들딸들이 모두 이 학교를 나온 동문가족이다. 나의 청에 이장은 트럭을 몰고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사실 어저께 미황사 가던 길에 보았던 소담한 학교는 치달리는 달마산 배경이 유난하여 꼭 화폭에 담고 싶다고 스님께 말한 바 있었다. 스님은 박말수(朴末洙?73) 할아버지를 소개해 주면서 마을과 학교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즉 서정리의 등리(32가구), 우분(18가구), 원서정(15가구) 마을에서 정월 초이튿날 당산제를 지내는 터라 세 곳 지역을 돌며 온종일 바쁘게 지냈는데, 근자에는 한곳에 신을 모신 삼신당(三神堂)에서 함께 당산제를 지내게 됐다. 그런데 이것 모두 미황사의 스님이 집전한다 하니 종교가 마을의 생활문화를 끌어안은 경우다.

휴대폰으로 인사를 드리자 박말수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서정리 태생으로 학교 설립 때 이장을 지냈으므로 학교의 산 증인이다. 오로지 마을 사람들의 울력으로 담을 쌓고 벽돌을 올렸다는 이야기 속에 한 때는 300명이나 되던 학생이 지금은 30여 명으로 줄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신다.

내친김에 서정리의 명물을 부탁하자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 앞으로 다가갔다. 첫눈에도 300년은 족히 묵었을 해송 한 그루는 달마산을 치켜보며 대지의 위용을 끌어안고 있었다. 하지만 봉토(흙을 돋구는 일)가 심하고 인근 콘크리트 바닥이며 시야를 가리는 창고 건물이 들어차 소나무는 그야말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자연유산을 위해 시급히 창고를 옮기고 주변의 콘크리트를 깨내 흙을 헤쳐주어야 뿌리가 숨을 쉴 것 같다. 이미 소나무는 솔방울을 수도 없이 내달았기로 아우성 치고 있음에랴.

이장과 원로들에게 꼭 소나무의 시급한 사정을 알려주라고 할아버지께 부탁한 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되돌아온 서정분교 운동장. 수업이 끝났는지 아이들이 하나 둘 운동장으로 내려온다. 하마터면 폐교가 될 뻔한 학교를 살리기 위해 방과 후 특기, 특활교육을 늘여 자원봉사 하는 학부형과 선생님들 덕택에 이제는 객지에서도 이사 오고 통학하는 학생이 하나 둘 는다고 한다.

화첩 속의 학교 그림이 무어 그리도 신기한지 아이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내 주변을 감싸는 눈망울들. 쌍둥이 형제인 영채와 영찬이, 성준이, 시원이, 태균이, 금서, 보근이, 은선이, 신현이, 그리고 어제 만난 황찬률씨의 아들딸도 눈에 띈다. 이제 학교 버스에 오르는 아이들. 학부모가 차로 데려가는 아이들. 가까운 거리인지 가방 메고 타박타박 걸어가는 아이. 그런데 잠시 후 황씨도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로 트럭을 몰고 왔다. 콩밭에서 일하며 늘 시간 맞추어 달려온다는 것이다.

편백나무와 삼나무 울타리로 운동장을 감싼 학교는 달마산을 배경으로 소위 그림 같은 터전을 지녔다. 따라서 이 아름다운 학교의 존속이 곧 마을의 미래를 가늠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나는 다시 달마산과 학교를 바라보며 춘양과 서정 마을의 삶터가 동트는 마을로, 새싹들의 기운 속에 안녕하기를 내심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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