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12-17 16:15
[법보신문] 물고기와 꽃게가 도란도란 속삭여요
 글쓴이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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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법보신문 2000년 8월 2일자에 김민경 기자가 쓴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부디스트 라이프-미황사 부도전


물고기와 꽃게가 도란도란 속삭여요

오리·호랑이·극락조 등 26점 조각 대웅전 주춧돌엔 거북이…불교적 해석 과제로

해남달마산 미황사에는 스물 여섯 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오리 한 마리에 게가 다섯 마리, 거북이 여섯 마리, 거미 한 마리,
그리고 물고기 다섯. 아참, 호랑이 넷과 방아찧는 토끼, 사슴도 있지. 뭍과 바다, 숲에서 각각 살던 이들이 여기 미황사에서 와글 와글 사이 좋게, 오손도손 살고 있다.

절에 웬 동물들이냐? 맞는 말씀이다.
그런데 무려 3백년 가까이 살고 있다.
정말이다.
어디서 이들을 볼 수 있냐하면 놀라지 마시라.
부도전(浮屠殿)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미황사에는 총 34기의 부도와 탑비가 있다.
부도만 28기다.

서향한 대웅전에서 남쪽으로 달마산을 향하여 난 길을 따라 5백 미터 쯤 올라가면 21기의 부도와 다섯기의 탑이 있는 부도전이 있다.
이곳에서 다시 서쪽으로 1백 미터 쯤 되는 곳에 6기의 부도가 울울창창한 나무들에 싸여서 적막을 즐기고 있다.
모두 조선시대 후기, 1700년경부터 세워졌다.

스물 여섯 마리의 동물들은 바로 그 부도에 조각 되어 살고 있다.
부도는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넣어둔 성보이다.
바로 그곳에서 살고 있다.
지엄한 스님들의 사리를 넣어둔 곳에 엉금 엉금 기어 다니는 게를 조각하다니.
아니 방아찧는 토끼는 왜 있냐구.
그건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혹자는 미황사가 바닷가에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데(대웅전 앞 뜰에서 해가 바다에 잠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아주 일품이다. 밤에는 완도의 고기잡이 배가 밝힌 불들이 별빛처럼 반짝 반짝, 손에 잡힐 듯 하다)
바닷가에 있는 절이 어디 한 둘인가.
게와 물고기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도란 도란 수다 떠는 부도가 있는 절,
미황사에는 심지어 대웅전 주춧돌에도 게와 거북이가 사이좋게 노닐고 있다.
너무나 무서운 척 하느라 도리어 웃음 짓게 하는 귀면(鬼面)과 이웃한 극락조는 또 어떻고?
용맹한 호랑이는 기를 쓰며 붙어있거나 옥개석 지붕에 기어올라서 납작 엎드리고 있다.

왜 미황사에만 이런 동물 문양들이 많을까.
그것도 스님들의 부도에. 학자들조차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동물 가족의 수가 가장 많은 회정 스님(1678∼1738, 아래 상자기사 참조)의 부도는 이곳 미황사 뿐 만 아니라 대둔사에도 조성되어 있다.
대둔사의 부도는 8각 기단 위에 8각 옥개석을 갖춘 흔한 형태의 부도이다.

대체로 부도전은 절의 입구에 자리해 있다.
대웅전을 지나서 절 뒤쪽,
산길을 한참 들어간 곳에 그것도 수십 기의 부도를 한꺼번에 모셔놓은 절은 매우 드물다.
미황사 금강 스님은 “미황사의 부도는 원래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군데에 자리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남쪽과 서쪽에서만 부도들이 보이나 옛날에는 동·서쪽에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고 말했다.
why?
다시 금강 스님의 전언.
“어느 노스님이 옛날에 ‘미황사는 우리 한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절이라서 스님들의 부도를 많이 세워서 반도의 수승한 기운(氣運)이 바다로 풍덩 빠지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답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비과학적으로 들리겠지만 옛 사람들의 지극한 조국애랄까,
뭐 그런 느낌을 얻는 것도 나쁘진 않더군요”

본사급이 아닌 작은 말사에 34기의 탑과 부도가 있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다.
한때는 열 두 개 암자를 거느릴 많큼 사세가 컷었다고 하지지만 그래도 지금의 부도 숫자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게다가 왜 그런 다양한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는지.
그러나 이들 정겨운 조각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 하나는 분명하다.
부처님은 민중의 삶과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 옛날 부도를 조각하게된 석수장이와 마을 사람들은 존경하던 스님의 부도에 그들이 지닌 비원과 추구하는 세상을 담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통통한 게가 노니는 굶주림 없는 세상,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귀여운 호랑이,
토끼는 달에서 내려와 사람들 옆에서 쿵쿵 곡식을 찧고,
물고기들은 풍어를 기약해준다.
옛 사람들은 스님의 부도에 동물 조각들을 새기며 극락이 어서 어서 그들의 삶에서 실현되길 기원했을 것이다.
부처님과 스님들의 위신력으로.

스님들의 용인 없이는 절대로 못 만들어질 동물농장 부도.
미황사 스님들은 그런 마음들을 쾌히 받아들여 주었다.
자비심에 관용이 더해진 것이다.
사실 미황사 부도에는 관용의 미학이 철철 넘친다.
많은 조각들이 무심하고 거칠다.
돌의 재료들도 썩 좋은 것이 아니다.
그냥 절 근처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입자도 제법 굵은 무른 돌들로 탑과 부도를 만들었다.
어떤 부도의 옥개석은 비바람에 시달린 나무처럼 부러 뒤틀려 있다.
미황사 부도전에는 매끈함과 긴장미 대신 무심과 편안함이 가득하다.

이런 미황사 부도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 사학자군(群)에서부터 공부하는 스님들,
조각가들,
예술인들의 발걸음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어떤 소설가는 미황사 부도들을 일컬어 ‘땅에서 솟아오른 돌 불꽃 같다’고 표현했다.
참배객의 눈에 부도들이 불꽃으로 비춰지는 까닭은 민중의 비원과 옛 스님들의 민중 사랑이 따뜻한 온기가 되어서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황사?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조계종 제 22교구 대둔사의 말사 이다.
조선 숙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이 쓴 사적비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8년에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싣고 온 배를 의조 스님이 장운과 장선 등의 향도 100명과 맞아들여 창건했다고 한다.
배 안에는 금으로 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있었고 금함 속에 불교경전과 불보살상, 53 선지식과 16나한을 그린 그림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또 금함 옆에는 검은 바위가 있어 이 바위를 깨뜨렸더니 검은 소가 뛰어나와 경전과 불상을 지고 가다가 크게 울면서 누우며 절을 지을 장소를 정해주었다고 한다.
절 이름의 美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黃은 금빛 옷에서 취한 것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미황사는 호남불교의 요람으로 불릴 정도로 사세가 컸었다.
호남불교의 도약은 서산대사가 자신의 의발을 대둔사에 전할 것을 부촉하면서 그 전기가 마련됐고 이후 서산대사의 법맥은 강진 만덕사와 해남 미황사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갔다.
특히 미황사는 대둔사 13대종사의 7대 종사로 손꼽히는 벽하 대우(碧霞大遇) 스님과 8대 종사인 설봉 회정(雪峰懷淨)스님이 미황사로 주석처를 옮긴 후 이들의 문도들이 꾸준히 그 맥을 이어가며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기록에 의하면 연담스님이 화엄무차대회를, 초의스님은 극락원 만일회를 열었으며 그밖에 수선회와 수륙제 등의 크고 작은 법회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법회에서 사용되던 높이 12미터, 폭 5미터의 대형괘불이 지금도 남아있으며 대웅전과 응진당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19세기 중엽까지 총 4회에 걸쳐 중창불사가 이루어졌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1990년부터 대중이 모여 다시 중창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061)535-3521

<2000.08.02 / 571호> 글·사진 =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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