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02-21 15:56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불광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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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불교전통문양 탁본하는 금강 스님
한지 위에 드러난 천년의 세월 1998년 글 ·남동화


“탁탁탁 ...”
천년의 고찰 백양사 부도밭. 고즈넉하기까지한 산사의 초입엔 수십 기의 부도들이 묵묵히 위용을 드리운 채 그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흘러내리는 계곡물과 숲이 머금은 수분 때문인가. 피부에 느껴지는 습도가 달리 느껴진다. 너무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오늘 같은 날은 탁본하기에 좋은 날이다.

금강(金剛) 스님은 우선 부도들을 살피며 탁본할 문양을 찾는다. 보기에 좋은 문양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탁본할 만한 문양을 제대로 찾는 것이다. 너무 도드라지게 양각이 되어 있거나 음각된 것은 탁본하기에 좋지가 않다. 적당히 양각된 문양들을 탁본했을 경우 그 아름다움을 더할 수가 있다.

부도에서 탁본할 문양을 찾아내면 우선 먼지와 이끼를 털어낸다. 그리고 적당한 한지를 골라 그 문양 위에 붙이고 물뿌리개로 물을 뿌린 후 문양이 종이 위로 드러나도록 솔로 톡톡톡 잘 두드린다. 그러면 조금 전까지도 희끄므레하던 문양이 오히려 선명해지면서 물머금은 한지 위에 제 모습을 드러낸다. 적당히 마를 때(너무 마르면 먹이 묻어나지 않고, 너무 젖어 있으면 먹이 번진다)를 기다려 그 위에 솜봉(무명솜에 천을 싸서 평평하게 만든 것)에 먹을 묻혀 톡톡톡 농도를 조절하며 두드리면 완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어떤 것은 볼펜심에 솜을 끼워 마치 그리듯이 탁본해야 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탁본을 해서 떼어내어 말리고 배접을 하면 어느 판화나 그림에서도 볼 수 없는 돌의 질감과 세월의 흔적과 당시 도공의 생각과 솜씨까지가 그대로 한지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흔히 탁본이라고 하면 주로 비문의 글씨를 모인(模印)해내는 것이 주를 이루어 왔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나라 절의 부도와 탑, 기와, 그리고 범종에 새겨진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양들을 탁본해내는 일은 아주 보기드문 일이었다.

금강 스님이 탁본을 시작한 것은 10년전 우리 나라 최남단에 위치하며 해남 대흥사의 말사이기도 한 달마산 미황사에 살면서부터이다. 미황사는 원래 꽤 규모가 있던 절로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오래된 절이었지만 퇴락할 대로 퇴락되어 있었다. 부도와 탑비 33기가 모셔진 부도밭을 보면서 스님은 우선 그 하나하나의 조형미와 낱낱의 문양이 주는 아름다움에 탄복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는 천 년 이상의 비바람에 마멸되어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문양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거니와 미황사의 내력을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스님은 비문과 부도들을 하나 하나 탁본하기 시작했다. 막상 탁본을 시작한 스님은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그 세계에 빠져들어갔다. 우리의 전통문양이 주는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된 스님은 전국의 사찰을 돌며 탁본을 하기 로 마음먹고, 우선은 신라말 고려초에 지어진 구산선문 사찰들의 부도군을 찾아 탁본을 하리라 계획을 세웠다. 선종의 시대라고 일컬어진 신라 하대 부도에 나타난 장식문양들은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장식문양 중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우 값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탁본된 작품들은 지지난 해 가을 서울과 대구 광주에서 구산선문과 미황사를 비롯하여 전국 23개 사찰에서 탁본한 문양 200점 정도를 선보였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판화작품도 이만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감탄 또 감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탁본을 하다 보면 시대별로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봅니다. 그 당시의 종교와 예술성이 함축되어 있어요. 신라 시대는 재질이 아주 좋고 세련되었고, 고려시대는 장엄스러운 반면에 정형화된 면이 없지 않아요. 조선시대는 민간신앙과 혼재되어 있는 문양들이 많지요. 그리고 추상화되어 있어요. 게, 두꺼비, 거북이, 자라, 오리, 방아 찧는 토끼, 해학적인 도깨비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해요. 서민들의 삶이 녹녹히 젖어있는 그림들이 볼수록 맛이 더해지는 문양들이지요.”

지금까지 스님이 한 탁본은 400여 점이 된다. 웬만한 국보와 보물급 석조물들은 다한 셈이다. 그 중에는 가로 4미터 세로 2.5미터 크기의 탁본도 있다. 이것은 꼬박 하루가 걸리는 대작업이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는 범종과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석조물들을 찾아다니며 그 문양들을 탁본할 예정이다. 산성비로 인해 날로 마모가 심해지는 것을 어쩔 도리가 없기에 탁본으로나마 그 자료를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예전같으면 100년이 걸렸던 것이 요즈음은 5~10년, 아니 1년도 채 안 되어 마모가 되어버리거나 혹은 도굴된 부도나 탑도 허다하기에 스님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우리의 잊혀진 문양을 드러내는 이 탁본으로 인해 좀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문양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육안으로는 쉽게 들어오지 않았던 문양들도 탁본을 해보면 수려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그럴 때마다 신비함조차 느끼게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탁본을 해본 사람들은 탑이나 부도를 보더라도 그냥 지나치며 보지 않습니다. 우리 불교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금강 스님은 탁본된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양들을 좀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한다. 좀더 탁본을 하고 이를 분류하여 도록을 펴내는 작업도 나름대로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 이 방면에 특별한 편집 디자인 감각을 갖고 있는 ‘끄레 어소시에이츠’에서 이 탁본 문양들을 이용해 엽서와 달력, 메모지, 수첩, 다포, 차받침 등 생활용품들을 디자인하고 있어 조만간 사찰을 중심으로 보급될 예정이어서 기대가 된다.

“중의 본분은 수행입니다. 취미삼아 탁본도 하지만 그것도 수행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더라도 그것이 수행 속에서 나와야지요. 1년에 동안거 한 철은 꼭 운문암에 가서 참선공부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9개월은 참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참사람 수행결사수련을 계속해갈 것입니다. 사람들을 지도하는 가운데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또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고 수행해야 되는지도 오히려 더 확실해져요.

지난해 말 방장 스님께서 IMF실직자를 위해 불교의 역할을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시기에 생각해낸 것이 ‘실직자를 위한 단기출가수련’입니다. 그 동안 앞뒤없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모두들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고 해요. 사찰만큼 좋은 공간이 어디 있습니까. 불교가 있는 자리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적기지요.”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했던 사람, 혹은 몸도 마음도 굳을 대로 굳었던 사람들이 4박 5일 수련을 통해 달라진 자신을 보며 보람을 가득 안고 일주문을 나서는 것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며 환하게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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