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02-21 15:58
불교해로유입설-정윤섭(향토사학자)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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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역사를 탐구한다 - 2. 불교의 해로유입설


정윤섭(해남향토사연구가)

서남해의 지리적 특성

해남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바다와 육지가 연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바다에서 내륙으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영산강 문화권을 중심으로 한 중요한 해상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모든 교통이 잘 발달된 육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주로 해로를 통해 경제활동과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볼 때 한반도의 서남해안은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대외 교역로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지점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고속도로처럼 예전에는 바다가 경제와 문화를 전파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해남의 해안지역에 분포하는 패총, 고인돌, 고분 등 고대문화유적의 흔적들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이러한 바다를 통한 고대문화의 교류를 엿 볼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불교의 해로유입설'이다.

해남의 지리적 특성은 일찍부터 다양한 해양문화의 영향과 함께 불교 또한 일반적인 대륙(중국)을 통한 불교의 전래설과는 달리 해로를 통한 남방불교(인도를 포함한 남아시아 여러 지역의 불교)전래의 가능성을 갖게 해주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러한 근거들이 지명이나 창건설화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어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나 고대에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던 활발한 해양문화의 활동을 통해 볼 때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해로유입의 예

이러한 불교의 해로유입설 중 가장 먼저 얘기할 수 있는 곳이 숙종18년(1692) 민암이 쓴「미황사사적기」에 기록되어 있는 미황사창건에 관한 기록이다.

미황사사적기를 보면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에 창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주목할 부분은 인도를 지칭하는 '우전국(于 國)'에 대한 기록이다.

『그날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옷을 입은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우전국(인도)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경전과 화상 안치할 곳을 구하던 중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불의 부처님 상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을 찾아 왔노라

(是夕金人和尙夢中曰, 我本于 國王也, 遍歷諸國, 求安經像, 望見山頂, 有一萬佛現相, 玆故來比)』

이곳 미황사사적기에 나오는 우전국은 고대 인도의 나라중 한 곳을 지칭한 것으로 인도로부터 직접 불교가 전래됐다는 것을 짐작케 해주고 있는데 당시 인도는 불교가 힌두교의 교세에 눌려 다른 나라로 불교가 활발히 전파되고 있는 시기임을 볼 때 이러한 불교의 해로전래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또한 이곳 미황사 대웅보전의 우물천장에는 범어가 적혀져 있어 옛부터 인도와 연관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대웅보전 주초석에는 바다게와 거북이 상이 조각되어 있어 해로유입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흥사 창건기

해남에는 미황사 뿐만 아니라 대흥사에도 이같은 해로유입설을 뒷받침 하는 창건 기록이 나온다. 대흥사에서 가장 먼저 창건되었다고 하는 만일암 창건에 대한 기록이다.

다산 정약용이 정리하고 쓴 『만일암지』의 '만일암실적' 에 기록된 것을 보면

「만일암은 해남현 두륜산의 가년봉(加年峰)아래에 있다. 대둔사의 여러 암자 중에서 지세가 가장 높고, 또 고기(古記)에 의하면 그 창건이 가장 먼저이다. 이름이 비록 요사(寮舍)에 속하지만 여기서 대둔사가 시작된 터이다.

서역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晉)에서 바다를 건너 백제에 이르렀는데 이에 머리를 깎은 열명의 스님이 불교를 일으키기 시작한 즉, 만일암을 지은 것이 열명의 스님이 머리를 깎은 후로 불과 43년만의 일이니 남쪽 땅의 사원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이다.」

이곳에는 서역의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진나라 후반에 해당하는 중국의 왕조)에서 바다를 건너 전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서역은 보통 중국인이 중국의 서쪽 지역을 총칭하는 데 사용하는 호칭으로 이에는 인도까지 포함되고 있어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을 통해 우리나라로 전래하였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대흥사 고진불암에도 이같은 창건기록이 보인다.「대둔사지」에는 고진불암과 16나한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진불암은 현재의 진불암 근처에 있다. 옛날 기록에 말하기를 강진의 백도방(白道坊)에 서씨라는 어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바다 한 가운데서 고기를 잡다가 서쪽 나라의 배를 만났다. 배 안에는 16대 아라한상(阿羅漢像)이 실려 있어 그것을 두륜산방(頭輪山房)에 봉안하고 편액을 진불(眞佛)이라 한다」

이곳에 나오는 창건기의 내용 중 서쪽 나라의 배를 만나 배 안에서 아라한상을 얻어 진불암을 창건했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서쪽 나라는 서역이라고도 볼 수 있어 해로유입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창건기의 내용이 미황사의 창건기와도 흡사한 부분이 있어 바다와의 관련성을 잘 말해준다.

보통 서역이나 남방불교의 개념은 상당히 광범위한 범위이기는 하나 해로를 통한 교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이러한 사실을 통해 불교도 함께 전해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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