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10-04 16:13
미황사 괘불재는 땅끝마을의 삼바축제? - 5월 31일 오마이뉴스
 글쓴이 : 템플팀장
조회 : 3,680  
미황사 괘불재는 땅끝마을의 삼바축제?
[전국순례⑤] 대안의 모델로 거듭나는 땅끝마을 해남의 미황사
정대화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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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황사
ⓒ 미래구상 제공

길 가는 나그네가 절집을 찾으니 담백한 저녁공양이 반겨준다.

처지가 딱한 사람을 두고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집을 떠났지만 하룻밤 편히 묵을 수 있는 절을 찾았으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으랴. 해남의 아름다운 절 미황사가 우리를 반겨준다. 주지 스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짧은 담소를 나누었다.

금강스님은 10년간 미황사의 주지로 봉직하고 계시는데 대단히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매우 동안이시다. 금강스님 전에 주지를 지내신 현공스님도 이곳에 계신다. 현공스님, 금강스님과는 작은 인연이 있다. 작년 초파일 직후에 여럿이 해남을 찾았을 때 자정이 지난 한밤중에 미황사를 찾아 하룻밤을 지냈다.

미황사에서의 하룻밤

밤비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밤에 미황사 부도암에 도착하니 현공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새벽 예불을 드려야 하는 스님이 자정 넘어 손님을 맞아준 것이 엄청난 특혜라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안다. 속세의 사람들이 무료할 것을 우려하신 스님이 맛있는 차를 내주셨는데 우리는 완도에서 공수해온 자연산 전복과 함께 차를 마셨다. 스님은 우리 일행에게 새벽 예불을 권했지만 워낙 게으른데다가 늦게 잠자리에 든 우리로서는 부도암 잠자리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로 예불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늦게 잠자리를 정돈한 우리는 초면인 금강스님을 만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공스님이나 금강스님과 대면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지만 우리가 4년전 "정치개혁과 정치세력화를 위한 1000인 선언"을 했을 때 명단에서 두 분의 함자를 보아두었던 터였기에 생소함이 덜했다. 그러니 이번 순례기간의 만남이 세 번째 만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금강스님
ⓒ 미래구상 제공
숙소를 정한 우리 일행은 해남YMCA 한경진 사무총장이 권하는 대로 해남YMCA 산악회원 60여 명과 함께 달마산을 올랐다. 하산 후 미황사 주차장 부근에서 뒤풀이를 하면서 미래구상과 전국순례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등산으로 피곤한데다 뒤풀이까지 하는 마당이니 미래구상 이야기에 집중하기는 어려웠지만 분위기는 사뭇 좋았다.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상당한 수고로움을 요구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니 저녁공양을 알리는 반가운 종소리가 울렸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절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여러 곳에서 절밥을 맛보았지만 특히 미황사의 밥은 담백하기가 이를 데 없다. 햅쌀이 나올 시기가 아닌데도 자르르 윤기 흐르는 쌀밥에 잘 조리된 채소반찬은 나그네의 시장한 입맛을 한껏 자극했다.

저녁시간을 알리는 미황사의 북소리를 들으며 미황사를 소개하는 영상물을 관람했다. 미황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땅끝 마을 사자포구에 아름다운 인도의 배가 찾아오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방불교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다. 절 곳곳에 널려있는 물고기, 거북, 게 등의 문양은 북방불교와 구별되는 미황사의 특징이었다. 우리 역사의 빈 장면을 발견한 듯해서 교육적 효과까지 느껴졌다.

미황사 괘불재에서 삼바축제를 떠올리다

자리를 금강스님의 거처로 옮겨 차를 마시며 미황사의 내력과 스님의 활동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가 잠든 달마산 산사에서 전개된 우리의 이야기는 매우 진지했다. 오랫동안 서울에서 실천불교 활동을 한 금강스님은 미황사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외부출입을 자제하고 미황사를 중심으로 활동한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가 우리 일행의 관심을 끌었다.

미황사는 축제의 일환으로 매년 가을에 괘불재를 열고 있다. 괘불은 야외에서 큰 행사를 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운반이 가능한 형태로 제작된 불화를 말하는 것인데 영조 3년인 1727년에 7명의 스님이 공동으로 조성한 것이다. 올해로 8회를 맞는 괘불재는 보물 제1342호로 지정된 높이 12m 폭 5m의 괘불을 일반에 공개하는 행사인데 인근 불가는 물론이거니와 해남을 비롯한 속세의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행사로 평가되고 있다.

괘불재와 더불어 미황사가 자랑하는 중요한 지역행사는 괘불재 당일 열리는 작은음악회와 초파일에 열리는 '땅끝 해남 어르신 노래자랑'인데, 특히 어르신 노래자랑에는 2000명가량의 주민들이 참가한다고 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노래자랑에 참가하는 어르신들을 선발하는 방식인데 동네 이장들의 추천을 받아 엄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수로 선발된 참가자들의 참가동기와 특징을 사전에 파악하여 음악회를 진행할 때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노래자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초에 남미를 방문하여 들었던 브라질 삼바축제 이야기가 연상되었다. 삼바축제는 지역별로 참가를 원하는 팀들이 일년간의 고된 준비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열기가 대단하다고 했는데 미황사 어르신 노래자랑 역시 그런 셈이다. 지역별로 참가자를 선발하니 자연스럽게 지역공동의 축제가 되는 것인데, 지방자치 이후 우후죽순처럼 남발되고 있는 관주도형 축제와는 대비되는 방식이었다.

미황사는 '열린공간'

▲ 미황사
ⓒ 미래구상 제공
올해는 특히 초파일 직후인 5월 26일에 '미황사 창건설화와 인도 타고르 시와의 만남'을 주제로 인도음악과 함께 하는 명상 템플스테이를 열었다. 광주항쟁 주간에 한국을 방문한 인도 타고르예술단을 미황사로 초청하여 미황사의 창건설화에 스며들어 있는 인도의 춤과 노래를 주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금강스님의 끝없이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면서 미황사가 속세와 절연된 고즈넉한 절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황사는 세속을 떠나 개인의 구복을 목적으로 수도를 하는 곳이 아니라 세속과 함께 하는 열린 공간이자 속세를 부처님의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교두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금강스님은 미황사의 활동을 '모델' 혹은 '대안'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미황사가 전개하는 소중한 활동방식이 불가는 물론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원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러난 것이라고 생각하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미황사에서 실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황사의 분위기가 우리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이 곤히 잠들고 오직 밤하늘의 별들만 반짝이는 5월 하순의 늦은 밤, 우리는 더 많은 대안이 미황사에서 만들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그러한 대안을 지역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순례단의 목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 미황사를 찾아 금강스님을 만날 때는 우리가 전국순례에서 보았던 다른 대안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도 모르겠다.

막걸리와 소리로 맞아준 설아다원

광주를 떠난 이루가 해남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 무렵. 한경진 총장의 안내로 설아다원을 찾았다. 해남군 북일면 두륜산 자락에 위치한 설아다원은 젊은 두 부부가 민박을 겸한 찻집으로 운영하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더구나 직접 지은 황토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니 건강까지 좋아지는 듯했다.

밤늦게 설아다원에 도착하니 부부가 살갑게 맞아주었다. 짐을 푸는데 안채로 올라오라는 성화에 끌려들어서니 자연산 먹거리가 한 상 차려져 있었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커다란 항아리를 반쯤 잘라 만든 것처럼 보이는 동아리에 가득 담아 내어주는 녹차 막걸리였다. 마음이 고운 사람들과 녹차잎과 꽃잎이 둥둥 떠다니는 향기로운 막걸리를 마시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쉬지 않고 막걸리를 마시다보니 어느새 동아리가 비었고 주인은 다시 가득 채워주기를 반복했지만 취기를 느끼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여주인이 이야기보따리를 슬슬 풀더니 서편제 영화에 삽입된 소리 한 대목을 걸쭉하게 뽑았다. 한 곡을 더 청해서 듣고 이번에는 차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갔다. 남편은 차를 우리면서 우리의 대화를 조용히 들었다.

남편 오근선, 여주인 마승미. 쌀농사를 하던 두 부부는 11년 전 우연히 대흥사 일지암에서 여연스님과의 인연으로 차 재배를 시작했는데, 우리나라 차의 고전으로 불리는 동다송을 집필한 초의스님의 차 재배법을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오랜 노력 끝에 제대로 된 야생차를 재배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정이 넘어 불쑥 찾아든 일단의 무리를 따뜻하게 맞아준 부부의 친절함이 더없이 고마웠지만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이들 부부가 오랜 노력 끝에 일궈낸 작지 않은 성과였다. 농촌살이가 힘겹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인데 순간의 인연을 전환의 계기로 삼아 노력과 집념을 더하여 향기로운 차를 만들어낸 젊은 두 부부의 삶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밤이 늦어지자 부부가 먼저 자리를 떴다. 다음날 아침 오래 전에 잡힌 여행을 떠나야 한다며 우리에게 미리 작별인사를 했다. 안채에서 한참을 더 머물다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가득 수놓고 있는 수많은 별을 발견했다. 마치 서울의 별이 공해를 피해 해남으로 모인 것 같았다. 80년대 초반의 어느 여름날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인상 깊게 보고는 다시 보지 못했던 은하수를 해남에서 다시 만나니 그 반가움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2007-05-31 11:3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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