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2-13 16:48
절간이야기 22
 글쓴이 : 에포케
조회 : 129  
절간 이야기 22 / 조오현



어느 신도님 부음을 받고 문상을 가니 때마침 늙은 염장이가

염습(殮襲)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염습하는 모양이 얼마나

지극한지 마치 어진 의원이 환자를 진맥하듯 시신(屍身)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함이 없었고, 염을 다 마치고는 마지막 포옹

이라도 하고 싶다는 눈길을 주고도 모자라 시취(屍臭)까지

맡아 보고서야 관뚜껑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 한솥밥을 먹은 가족이라도 죽으면 시체라

하고 시체라는 말만 들어도 섬찍지근 소름이 끼쳐 곁에 가기를

싫어하는데 생전에 일면식도 없는 생명부지의 타인, 그것도

다 늙고 병들어 죽어 시충(屍蟲)까지 나오는 시신을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염장이는 처음 보았기에 이제 상제와 복인들

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염장이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처사님은 염을 하신지 몇 해나 되셨는지요?"

"서른둘에 시작했으니 한 40년 되어 갑니더"

"그러시면 많은 사람의 염을 하신 것 같으신데 다른 사람의

염도 오늘처럼 정성을 다 하십니까?"

"별 말씀을 다 하시니...... . 산사람은 구별이 있지만서도

시신은 남녀노소 쇠붙이 다를 것이 없니더. 내 소시에는

돈 땜에 이 짓을 했지만서도 이 짓도 한 해에 몇백 명 하다보니

남모를 정이 들었다 할까유. 정이...... 사람들은 시신을 무섭다고

하지만 나는 외려 산사람이 무섭지 시신을 대하면 내 가족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자신의 시신을 보는 듯해서...... "

이쯤에서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갈 길을 그만 가야겠다는

표정이더니, 대뜸 "내 기왕 말씀이 나온 김이니 시님에게

한 말씀 물어봅시더. 이 짓도 하다 보니 시님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어떤 시님은 사람 육신을 피고름을 담은 가죽푸대니,

가죽 주머니니, 욕망덩어리라 이것을 버렸으니 물에 잠긴

달 그림자처럼 영가(靈駕)는 걸림이 없어 좋겠다고 하시기도

하고, 어떤 시님은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法身)이라

했던가유? 그렇게 하고, 또 어떤 시님은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염불만 하시는 시님도 있고......아무튼 시님들 법문도 각각인데

그것은 그만 두시고요. 참말로 사람이 죽으면 극락지옥이

있습니꺼?"

흔히 듣는 질문이요 신도들 앞에서도 곧잘 해왔던 질문을

받았지만 이 무구한 염장이 물음 앞에는 그만 은산철벽을

만난듯 동서불명(東西不明)이 되고 말았는데, 염장이는

오히려 공연한 말을 했다는 듯 "염을 하다보면 말씀인데유,

이 시신의 혼백은 극락을 갔겠다 저 혼백은 지옥에 갔겠다

이런 느낌이 들 때도 더러 있어 그냥 해본 소리니더.

이것도 넋 빠진 소리입니더만 분명한 것은 처음 보는 시신

이지만 그 시신을 대하면 이 사람은 청검하게 살다가 마

살았겠다 이 노인은 후덕하게 또는 남 못할 짓만 골라서

하다가 이 시신은 고생만 하다가 또는 누명 같은 것을 못벗고......

그 뭐라하지유? 느낌이랄까유? 그,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

같은 것이 시신에 남아 있거든요?"

하고는 더 말을 하지 않을 듯 딸막딸막하더니, 당신의 그

노기(老氣)로 상대가 더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읽었음인지.

"극락을 갔겠다는 느낌이 드는 시신은 대강대강 해도 맘에

걸리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죄가 많아 보이는 시신을 대하면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눈시울이 뜨뜻해지니더. 정이니더.

옛사람 말씀에 사람은 죽을 때는 그 말이 선해지고 새도

죽을 때는 그 울음이 애처롭다 했니더. 죽을 때는 누구나 다

선해지니더...... 이렇게 갈 것을 그렇게 살았나? 하고 한번

물어보면 영감님 억천년이나 살 것 같아서, 가족들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한번 잘 살아 보고 싶어서 그랬니더. 너무

사람 울리시면 내 화를 내고 울화통 터져 눈 못 감고 갑니더.

이런 대답을 들으니 아무리 인정머리 없는 염쟁이지만 정이

안들겠니꺼? 그 돌쟁이도 먹놓고 징 먹일 때는 자기의 혼을

넣고...... 땜쟁이도 그렇다 하는데 오늘 아침 숨을 같이 쉬고

했던 사람이 마지막 가는데유...... 아무런들 이 짓도 정이

없으면 못해먹을 것인데 그렇듯 시신과 정을 나누다가 보면

어느 사이 그 시신 언저리에 남아 있던 삶의 때라 할까유?

뭐 그런 것이 걷히고 비로소 내 마음도 편안해지거든요.

결국은 내 마음 편안할려고 하는 짓이면서도 남 눈에는 시신을

위하는 것이 풍기니 나도 아직...... 하고는, 잠시 나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시님도 다 아시는 일을 말했니더. 나도 어릴 때

뒷 절 노시님이 중될 팔자라 했는데 시님들 말씀과 같이 업(業)

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 이제 나도 갈 일만 남은 시신입니다."

이렇게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Total 1,686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1686 소박한, 큰 선물 (1) 운영자 03-22 17
1685 한 마음 한 뜻으로 전념하라 에포케 03-21 14
1684 금강스님의 선담 "익숙한 것을 경계하라" 에포케 03-21 15
1683 10분 해탈 에포케 03-19 22
1682 단순함의 미학/ 미황사 떡국 (1) 에포케 03-14 52
1681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틱낫한 (1) 에포케 03-14 38
1680 좋은 때를 놓치지 않고 사는 법 에포케 02-28 119
1679 화엄경 현수품 에포케 02-18 104
1678 화엄성중.. 에포케 02-18 97
1677 절간이야기 22 에포케 02-13 130
1676 똥 누는 일, 그 안간힘 뒤의 행복 (1) 에포케 02-07 147
1675 무아와 연기적 존재로서의 나 에포케 02-07 99
1674 해남에는 섬 아닌 섬, 달마고도가 있다네.. 에포케 02-07 117
1673 아이들의 마음 강남유지77 02-01 125
1672 오늘밤 기차는 에포케 12-21 362
 1  2  3  4  5  6  7  8  9  10    
134 485 559,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