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3-19 09:52
10분 해탈
 글쓴이 : 에포케
조회 :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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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해탈용타 스님의 생활 속의 수행 이야기
해탈(解脫)! 해탈이란 온 중생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서 벗어나 이고득락(離苦得樂)하는 것이라는 정도로 정의해도 좋을 것입니다.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해탈을 원합니다. 이번 달에는 해탈이라는 개념과 연관해서 두 가지 정도의 유의점을 명상해보았으면 합니다.

해탈과 불해탈(不解脫)은 표기함에 있어서는 이분법(二分法)이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무한분법(無限分法)이라는 점을 유념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무·선악·미추·빈부·귀천·음양·대소·다소·경중·냉온 등 무수한 이분법적인 표현들은 편의상 표현이 그러할 뿐 사실에 있어서는 무수한 단계로 나뉠 수 있는, 정도의 더하고 덜함이 있을 뿐입니다. 해탈과 불해탈도 그러합니다.

수행만큼 성취되는 해탈

많은 것이 정도의 문제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흑백적 이분법의 의미로 표기해야 할 경우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해탈을 생각할 때에 경전에 무수히 표기되어 있는 이분법적인 개념들을, 사실에 있어서는 무한분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 세월 수행을 한 다음에 어느 순간 문득 해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하는 정도만큼 해탈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순간순간의 해탈, 하루하루의 해탈을 유의하며 귀히 여겨야 합니다. 물론 궁극의 해탈을 위해서 염불이든 화두이든 여타 각자가 인연된 공부 주제에 평생 매달리며 몰입해가기도 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순간의 해탈이란 문득문득 탐욕이나 분노가 일어나 마음의 청정을 해치고 있을 때 한 생각 돌려 탐욕과 분노를 정화해 가는 것이겠고, 하루의 해탈이란 하루의 어느 시간에, 별시선(別時禪)으로 10분이든, 30분이든, 60분 이상이든 시간을 내어 명상을 함으로써 자아감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해탈도 여러 차원으로 논의해야겠지만 일단 자아감이 사라질 때 느껴지는 개운한 무아감이야말로 가장 일차적인 해탈일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 지고한 지복(至福)감을 느끼고 있을 때 스스로를 관찰해보면 단연 무아관이 전제된 무아감(無我感)이 바탕되어 있음을 봅니다.

10분 명상법

어떻습니까, 여러 불자님들? 10분 정도의 시간을 주면서 마음을 지고한 천국으로 만들어 보라는 주제의 마당이 있다면, 그 10분 동안에 마음을 어떤 식으로 운영하여 최고의 천국으로 해탈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의 경우는 여러 명상도구들이 있습니다만 무아관(無我觀)이라는 명상 도구를 자주 활용합니다. 일상선(日常禪)이든 별시선이든 주바라밀(主波羅蜜)로는 아미타불을 염하면서 실상(實相)인 돈망법계(頓忘法界)를 관조하는 것이지만, 문득문득 무아관으로 자아가 본래 공함을 확인하곤 합니다.

특히 무아관은 불교의 핵심 법문인 삼법인의 하나이니 불교인이라면 숨을 쉬고 밥을 먹듯이 관행(觀行)되어져야 합니다. 반야심경의 핵심이 무아임을 확인함으로써 모든 고통에서 해탈하는 것[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이 아닌가요? 무아관을 막연하게 어렵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다소의 노력을 하노라면 참으로 당연하고 쉬운 것이 무아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무아관은 모를 때 은산철벽과 같이 느껴질 뿐이지, 알고 보면 대단히 상식적입니다. 짧은 지면에 얼마나 설명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무아관 중에서 분석고공(分析故空)법을 들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해탈의 도구 - 무아관(無我觀)

자아란 중생이 스스로의 관념 속에 만들어놓은 한 덩어리의 막연한 염체(念體)입니다. 막연하게 만들어놓은 염체를 ‘나’, ‘나’ 하며 더 강화하면서 사는 것이 중생놀음이지요. 중생놀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오직 ‘나’, ‘나’ 하는 자아관념에서만 벗어나면 됩니다.

어떻게 하느냐고요?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을 떠올리십시오. 수레를 한 덩어리로 볼 때는 ‘수레’이지만, 분석해서 볼 때는 수레라는 실체가 본래 없는 이치입니다. ‘나(자아)’를 한 덩어리로 보지 말고 분석해서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즉 ‘나’라고 관하지 않고, 나를 분석하면 오온(五蘊), 곧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니, 색수상행식으로 관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색(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니, ‘나’라는 자아 덩어리를 ‘나’라는 한 덩이로 관(觀)하지 않고, 지 - 수 - 화 - 풍 - 수 - 상 - 행 - 식 등 여덟 조각으로 분해해서 관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그 여덟 가지 정도의 구성요소이니 ‘지(地)’를 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야, 지(地)는 지(地)일 뿐 ‘나’라 할 수 없다. ‘수(水)’가 나인가? 아니다. 수(水)는 수(水)일 뿐 ‘나’라고! 할 수 없다. ‘화(火)’가 나인가? …. 식으로 명상이 되면서 결국에는 이 몸과 마음의 가합체인 존재가 자아로 느껴지지 않고 점점 무아로, 무실체로 느껴지게 됩니다. 자아를 이처럼 그 구성 요소들로 나누어 관조하다 보면 그 구성요소 어느 것도 자아라고 할 수 없는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나’를 자아로 느끼던 자아감은 사라지고 자아의 실체가 공한 몽환포영로전(夢幻泡影露電) 등으로 느끼면서 자아가 사라진 무아감 내지 해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수세기 동안 한국불교의 수행관이 안타깝게도 일확천금주의가 문화적으로 의식화되어 순간순간, 하루하루의 팔정도적인 수행공덕을 향유할 수 없게 되어져 온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님 시대의 근본불교나 근본불교를 가장 근사하게 이 시대에까지 견지하고 있는 남방불교를 관찰해보면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부처님의 기본 가르침으로 장엄함으로써 수행한 정도의 행복·해탈을 살았고,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아의 이론적인 이해는 간단하지만 반복해서 관행해야 합니다. 명상 주제로 반복 관행해봄으로써 해탈감을 ‘느낌’으로 느끼게 됩니다. 각자 주(主)바라밀을 가지고 있더라도 투철한 무아관에 의한 해탈감의 바탕 위에 몰입해 감이 공부효율을 한결 높여갈 것이라 믿습니다. 순간 해탈, 10분 해탈의 도구로서 무아관을 철저히 해 가시도록 다시 한번 권장하며 여러분들의 지고한 해탈을 기원합니다.

관리자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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