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5-14 14:23
부처님을 닮아간 철학자
 글쓴이 : 에포케
조회 : 57  
2월2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조촐하지만 뜻깊은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지난해 2월24일 세상을 떠난 심원(心遠) 김형효 선생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심원 선생과 인연이 깊었던 이들을 중심으로 심원사상연구회가 만들어졌고 그 첫 주제가 ‘동서 사상의 만남’이었다.

세미나 주제에서 드러나듯 심원 선생은 동서양 철학에 정통했다. 1940년생인 선생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근대철학을 연구한 서양철학자다. 실존주의, 현상학, 구조주의 등 서양철학 전반에 정통했으며, 국내에 하이데거와 데리다에 대한 관심도 크게 불러일으켰다.

심원 선생의 사유는 서양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철학은 사유의 학문”이라던 그는 가브리엘 마르셀, 베르그송, 데리다, 메를로퐁티, 조르쥬 바타이유, 하이데거 등을 거쳐 노자, 공자, 장자, 주자, 퇴계, 율곡, 다산의 사상을 가로질러 막바지에는 원효의 정신세계에 심취했다. 심원 선생을 ‘철학계의 오디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날 발표는 심원 선생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배웠던 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 박찬국 서울대 교수,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박원재 강원대 강사, 이승종 연세대 교수가 맡았다.

발표자들은 심원 선생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각 분야에서 그의 학문성과를 평가했다. 40여년 간 심원 선생을 지켜봤던 애제자 최진덕 교수는 스승의 곡절 많았던 삶과 학문 세계를 정성스레 정리했다. “철학적 사유는 아픈 시대를 아프게 살아가는 철학자의 삶의 일부”라는 그는 심원 선생이 현실참여에 나섰던 이유를 철학적 소신과 조국애에 따른 것으로 풀이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심원 선생은 정년을 몇 년 앞두고 매일 연구실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했다. 언뜻언뜻 해탈한 성자의 풍모도 엿보였다. 점차 철학적 사유는 사라지고 기도와 좌선이 주된 공부가 돼갔다. 2013년 이후 심원 선생의 치매가 본격화됐고 정상적인 학문 활동도 불가능해졌다. 최 교수는 “만년의 선생님에게는 좋은 것도 좋고 나쁜 것도 좋았다. 도덕의 종언, 철학의 종언, 사유의 종언에 이은 선생님의 철학적 사유의 최종 귀결은 ‘다 좋다’ 한마디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발표자들도 심원 선생에 대한 평가를 이어갔다. “근대철학의 불모지에서 자생철학을 얻고자 분투한 일생을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그의 비교철학적 작업들이 한국자생철학의 밑거름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박정진) “심원 선생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사이의 생산적인 대화를 매개함으로써 사태를 보다 명료하면서도 풍요롭게 파악하고 서술했다. 나는 심원 선생을 비교철학의 달인이라 부르고 싶다.”(박찬국) “심원 선생의 사유, 그 이념을 한 마디로 하자면 나는 그것을 ‘소화’라는 말로 요약하고 싶다. '소화'는 표면적으로 말해지지 않은 것 사이에 그 정신과 메시지를 읽는 통찰력에 다름 아닐 것이다.”(한형조)

심원 선생은 법보신문과 인연도 깊었다. 기명칼럼을 비롯해 ‘신심명’ ‘증도가’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선보였으며, 치매가 심해지던 2013년에도 ‘김형효의 한국불교에 고함’이라는 글을 연재했다. 점점 시력이 나빠지던 심원 선생은 수십 포인트나 되는 큰 글자로 원고를 써내려갔다. 그해 8월 심원 선생이 막바지 원고에서 어린 시절 시주 쌀을 이고 산길을 오르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강조했던 것은 의외로 신심이었다. ‘부처님을 내 마음 속에 모시는 신앙심이 없이는 부처님을 닮으려는 수행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불교를 신앙종교가 아니라 수행종교라고만 말하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신앙에 바탕을 둔 공부라야 안목을 깊고 넓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재형 국장


깊은 사유와 통찰로 광활한 마음의 바다를 항해했던 심원 선생. 무엇이든 “다 좋다”던 선생은 무심히 세속을 등졌지만 그가 남긴 언어의 사리들은 여전히 영롱하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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