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03-24 21:21
미황사이야기1
 글쓴이 : 금강스님
조회 : 7,745  

미황사이야기 - 오래된 이야기


미황사는 땅끝 해남에 위치한 절이다.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에 창건했다고 하니 천년고찰이라 할 유서 깊은 사찰이다.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절이기도 하다.


1. 창건설화


미황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


1692년(숙종 18년)때 지은 [미황사 사적비]에 이런 기록이 있다.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 어느 날 돌로 만든 배가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다. 배 안에서 범패 소리가 들려 어부가 살피려 다가갔지만 배는 번번이 멀어져 갔다. 이 말을 들은 의조화상이 정갈하게 목욕을 하고 스님들과 동네 사람 100여명을 이끌고 포구가 나갔다. 그러자 배가 바닷가에 다다랐는데 금인金人이 노를 젓고 있었다. 배 안에는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비로자나불․문수보살․40성중聖衆 . 16나한, 그리고 탱화, 금환金環, 검은 돌들이 실려 있었다.

사람들이 불상과 경전을 모실 곳에 대해 의논하는데 검은 돌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왔다. 소는 순식간에 커다란 소로 변했다.

그날 밤 의조 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인金人이 “나는 본래 우전국優塡國왕인데 여러 나라를 다니며 부처님 모실 곳을 구하였소. 이곳에 이르러 달마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남으로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려 하오.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가 일어나지 않거든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하시오.” 하는 것이었다.

의조 화상이 소를 앞세우고 가는데 소가 한 번 땅바닥에 눕더니 일어났다. 그러더니 산골짜기에 이르러 이내 쓰러져 일어나지 아니했다. 의조 화상은 소가 처음 누웟던 자리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마지막 머문 자리에는 미황사美黃寺를 창건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황’은 금인金人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인 것이다.


2. 우전국이야기


창건 설화에 나오는 우전국은 어떤 곳일까?


우전국은 지금의 인도 ?이다. 이 나라에 관한 기록은 진나라 때인 3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엄경]의 번역자 법현 스님이 쓴 [법현집]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우전국은 부유한 나라로 백성들은 불교를 신봉하고 수 만명의 승려들이 대승불교를 배우고 있었다. 법현 스님 일행을 맞이한 우전국 국왕은 ‘구마제사’라는 절에 머물게 했는데 3천 여명의 승려가 살고 있는 큰 사찰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난 때를 축하하는 축제도 열렸는데 14곳의 큰 사찰을 돌며 14일 동안이나 계속하는 큰 잔치였다.

우전국에는 ‘왕신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 3대의 왕에 걸쳐 세워진 이 절은 탑의 높이가 75미터나 되었으며 기둥과 창문은 모두 금으로 칠한 화려한 모습이었다. 5세기 초 우전국의 사찰이 얼마나 장관이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법현 스님 이후 200여 년이 지나 현장 스님 또한 ‘왕신사’를 방문하였는데 그곳에 3백미터나 되는 탑이 서 있었다. 현장 스님 기록에 따르면 우전국에는 사찰이 100여개, 승려가 5천 여명이 있을 정도로 불교가 크게 번창하였다. 국왕은 스스로 비사천문의 후손이라 하며 불법을 귀히 여겼다. 우전국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남아 있는 것들을 종합해보면 불교를 국교로 하여 나라를 다스리던 불교국가 였음을 알 수 있다.


3. 달마대사와 달마산


중국에도 소문났던 고려 시대 미황사


[동국여지승람]에 고려의 무외스님의 글을 인용한 미황사에 관한 기록이 있다.

달마산에 미황사와 도솔암 등 12개의 암자가 있었다.

지원(1264) 신사년 겨울에 중국 남송의 배 한 척이 달마산 동쪽 바다에 도착했는데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고 하던데 이 산이 그 산인가.”

하며 한 고관이 주민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달마산을 향해 예를 표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명성만 듣고 동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리 보니 여기서 나고 자란 그대들이 부럽고 부럽도다. 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항상 머무를 만 하구려.”

하며 참배하고 화폭에 담아갔다.

고려 후기에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이 중국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달마대사는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서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27대의 법을 이은 반야다라존자의 제자가 되었다. 스승의 부탁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양나라 무제를 만난다. 양나라 무제와의 문답을 통해 아직은 법을 펼 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숭산의 소림굴에서 9년간이나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면벽한다. 이때 찾아 온 선종禪宗의 2대 조사인 혜가대사를 만나 선법을 전해주고는 중국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다. 중국과 베트남, 한국, 일본이 달마대사를 선종禪宗의 초조初祖로 모시고 선 수행을 이어오는 곳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달마대사의 행적이나 지명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없다. 그때의 중국인들은 달마대사가 해동으로 건너가 안주한 곳이 이 곳 달마산이라며 찾아오고 부러워했던 모양이다. 미황사의 옛 기록을 보면 모두가 한결같이 달마대사의 법신이 항상 계시는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4. 서산대사와 제자들


불사와 법회들로 활기찼던 조선 시대 미황사


조선 전기에도 미황사의 사세는 꾸준히 유지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미황사와 통교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정유재란(1597년) 때 이 지역의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전각들이 불타면서 기록까지 없어져버렸다.

조선 중기 서산대사의 제자들이 대둔사와 미황사로 내려오면서 조선시대 중.후기의 중심 사찰이 된다.

묘향산 원적암에서 열반에 드신 서산대사의 유지를 받들어 직계상좌인 소요대사와 법을 이은 손상좌 편양선사가 서산대사의 의발을 모시고 대둔사에 내려온다.

소요대사는 서산대사의 의발을 대둔사에 모시고, 편양선사로 하여금 법을 펼 수 있도록 도량을 만들어주고, 함께 내려온 서산대사의 직계상좌들과 함께 미황사에 모여 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대둔사의 부도전에 모셔진 대부분의 스님들은 편양선사의 법맥을 이으신 분들이고, 미황사의 부도전에 모셔진 대부분의 분들이 소요대사의 법맥을 잇고 있는 분들임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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