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1-15 17:34
템플스테이
 글쓴이 : 금강
조회 : 3,510  

템플스테이

절집에 올 때에는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얼마나 공부 했는지, 우리 집 가문은 어떻고 재산은 얼마인지,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들어오면 그 생각의 무게만큼 손해이다.

그러한 생각을 버리도록 하는 '입차문래入此門來하면 막존지해莫存知解‘라는 말이 있다. 문을 들어 올 때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 산 속 절집을 찾아 올라오면 처음 만나게 되는 일주문 양쪽에 쓰여 있는 글귀이다.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하여 깊은 산속 절집에 은둔하듯 머물며 그동안의 자신을 돌아보고 맑은 기운을 담아 그 힘으로 새 삶 살기를 갈망한다.

그러한 마음을 담아줄 절집이 현대인들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수많은 정보와 바쁜 일상, 경쟁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가치마저 혼란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럴 때 산 속 절집은 큰 위안이 되어줄 매력적인 공간임에 틀림없다.

2002년 봄, 신문에서 템플스테이 사찰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월드컵 기간에 외국인들이 경기를 관람한 뒤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도록 공간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특히 한국적인 것의 고갱이를 고스란히 간직한 사찰이야말로 가장 맞춤한 공간이니 더불어 동참하자는 것이었다.

땅끝 마을에 위치한 작은 절 미황사에서 신청했다 하여 조계종 포교원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당시 포교국장을 맡았던 주경스님이

“미황사는 경기장이나 서울에서 거리가 멀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외국인들에게 내세우기에 는 작은 절이라서 교구본사 중심으로 선정하기로 하였습니다.”

라는 통보를 해왔다.

“거리가 먼 것은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서울 중심의 사고를 하지 말고, 찾아오는 외국인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한국 땅 전체가 얼마 안 되는 거리입니다. 그리고 편리하고 시설 좋 은 곳을 찾을 사람들은 호텔을 찾을 것이고, 템플스테이를 하기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오 히려 작되 고요한 미황사 같은 곳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원을 꼭 바라는 건 아 닙니다. 그러하니 이름만이라도 올려 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렸다. 그렇게 미황사와 템플스테이는 인연을 맺었다.

2000년 주지를 맡자마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문학당’을 했던 경험이 큰 소리를 치게 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에 맞추어 세면장, 화장실과 침실 등의 시설을 만들고, 다도나 예불, 참선, 사찰 문화체험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운영했기에 그것을 대상에 맞게 적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 땅에 살면서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걷는 나에게는 늘 근본적인 의무감 같은 것이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좋은 절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 그것은 늘 나를 따라다니는 화두이기도 하고, 내 행동을 규정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또한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애정의 발로일 수도 있고, 수행자로서의 원력일수도 있겠다.

한국의 사찰은 보배창고와 같은 곳이다. 천 오백년이 넘는 동안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한 갖가지의 건물과 형상, 도구들이 널려있고, 마음을 닦는 그 시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무리를 이루며 살았던 곳이다. 그러한 전통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문화적 측면으로 보면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이라는 외적요인으로 인해 오히려 내적인 발달을 이룬 기간이기도 하다. 일반 사회와는 거리를 두고 산 속 절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과 절도 있는 수행 생활을 해 역설적이게도 내적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의 숭고한 가치가 지금껏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보물창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찰음식과 운력, 사경과 참선, 연등 만들기와 단청 그리기, 탁본과 다도 등 그 내용이 무수히 많고, 또한 그 내용이 하나같이 상처 입은 현대인들의 마음 치유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사찰의 구조가 처음부터 승속의 경계가 엄연한 공간은 아니었다. 조선시대를 거치며 스님들만의 고유 공간으로 변하였고, 세상 사람들과 차단되어 극히 일부에게만 열린 장소가 되고 말았다. 즉 외부인에 대한 프로그램이 전무한 상태로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템플스테이는 닫친 사찰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아주 중요한 길인 셈이다.

템플스테이로 인하여 사찰이 변한 것은 없다. 다만 나만의 일상이, 대중과 함께 나누고 호흡하는 공동체의 일상으로 변모했을 뿐이다. 그래서 미황사에서 하는 템플스테이는 힘이 들지 않는다. 억지로 하는 일이 없이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다.

새벽에 함께 예불을 드리고, 선방에 고요히 앉아 참선하고, 몸을 푸는 요가를 하고, 새소리 들으며 부도전까지 산책을 하는 일이다. 자연이 주는 맑은 먹을거리로 소박한 밥상을 차려 나누는 일도 감사하다. 작설차 한 잔을 함께 나누며 입 안 가득 고이는 향기를 음미하는 것도 좋다. 마음에 빗질을 하듯 도량을 칼칼하게 쓸며 마시는 아침 공기는 정신을 씻겨주는 청량음료 같다. 그저 나를 행복하게 했던 평범한 일상을 템플스테이 도반들과 함께 나누며 행복해 하는 것으로 족한 것이 템플스테이다. 대중스님들이 많은 큰절에 사는 마음과 똑같이 잠시도 방심하지 않고 공부를 점검 할 수 있어서 템플스테이 와준 분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그들 속에서 깊은 수행을 하며 여물어 간다.

저 초봄의 산야가 펼쳐놓은 성찬을 보라.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저 찬란한 산 빛을 보라. 제 각각이면서 또 하나의 모습인 살아있는 봄이 들려주는 설법이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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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순 11-01-08 10:15
답변 삭제  
생전처음 겪게될 템플스테이! 설렙니다.
미황사, 금강스님, 생각만으로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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