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1-15 17:36
이야기가 있는 집
 글쓴이 : 금강
조회 : 3,612  

이야기가 있는 집 - 불사 이야기

“다 똑같네.”

마당을 지나가다 젊은 부부가 하는 말을 엿들었다. 절집의 모든 건물이 기와집으로 다 똑같은데 이 절은 왜 또 왔느냐는 불만을 그리 뱉아낸 것이다.

겉모습만 보면 목조 건물로서 지붕에 기와가 올라가 있고, 팔작집이거나 맞배집일 터이니 구조가 일반 민가에 비해 다양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마치 우리가 서양 사람들을 보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고 느끼듯이 말이다. 일반인들이 스님들을 볼 때도 다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같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집이란 겉에서 보는 모습이 전부일 수 없다. 안에 들어가 촛불을 켜보고, 108배 절도 해보고, 잠도 자보고, 스님을 만나 차도 마시고 난 뒤에 다시 바라보면 그때의 집은 이미 다른 집으로 다가온다.

관광객에게는 절집이 산속의 한 공간에 불과할지 모르나 그 속에는 이야기가 있고 사람들의 삶이 있다. 그 깊은 속살을 보지 않고선 다 안다, 다 보았다고 섣불리 말을 해선 안 된다.

특히 절집은 일반인의 삶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있기 때문에 불자가 아니면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관계 맺기가 어렵다보니 이해하고 수용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공간이 아니다.

절집의 중심 건물은 부처님상이 모셔진 대웅전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그 가르침을 날마다 가슴 깊이 새기며, 욕망과 어리석음을 벗고 청정함과 지혜로움이 충만한 내가 되겠노라 발원하는 곳이다.

그래서 대웅전을 지을 때는 그 시대의 가장 장엄한 건축기술을 살려 최고의 정성을 기울인다. 안에 모셔진 부처님상이나 닫집, 단청들이 바로 부처님에 대한 신심의 표현들이다.

미황사의 대웅전은 1300 여 년 전부터 터를 닦고 수행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정유재란(1597년) 때 불에 타고 그 이듬해부터 스님들이 아침 저녁으로 공부하면서 불사를 했다. 낮으로는 울력을 하고, 밤으로는 공부를 하면서 4년에 걸쳐서 지었다 한다. 나무는 땅끝에서 배타고 40여분 가면 있는 보길도까지 가 운반해왔다. 수행과 원력과 정성의 삼박자가 조화 를 이뤄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400 여 년 동안 이 건물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예불을 올리고 기도를 하며 수행을 했다. 매일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촛불을 켜고, 청정수를 올리고, 향을 피우며 올곧게 살았던 수많은 수행자들이 지켜온 곳이다. 따라서 그곳에는 그들의 지극한 마음과 성성한 기운들이 가득 차 있다.

스님들이 생활공간인 요사에 깃든 정성도 대웅전과 별반 다를지 않다. 부처님의 행동과 말과 마음을 따르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방이니 이곳도 법당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최소한의 도구로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며 악전고투의 수행을 하는 것이다.

“대웅전에 기와장이 몇 개 올라가는 줄 아시나요? 저렇게 수많은 기와장이 올라가서 지붕을 덮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것과 같아요. 한 장이라도 빠져있거나 깨진다면 그 집은 비가 스며들어서 쓸모없게 되고 맙니다. 절에 방문 할 때는 가시는 곳마다 기와 한 장씩 시주 하고 가세요. 우리의 마음에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매일 매일 다짐을 하듯이 말입니다.”

내가 신도님들께 늘 하는 말이다. 기와불사를 통해 자기 마음 단속을 잘하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는 날마다 기와 지붕을 올려다보면서 또 공부를 한다. 매년 두 번씩 지붕에 올라가 겨울 추위에 깨어진 기와는 없는지, 태풍에 간격이 어긋난 곳은 없는지, 잡초가 난 곳은 없는지 두루두루 살핀다.

수행을 깊이 하여도 이 몸은 욕망의 소산들로 가득하여, 끊임없이 바람 불고, 비가 내리고, 얼음이 언다. 매 순간 깨어서 문득 문득 일어나는 번뇌들을 살피지 않으면 금이 간 기와 때문에, 집에 물 새듯 헛된 수행이 되고 만다. 지붕 위 기와 한 장이 들려주는 법문은 참 깊고도 오묘하다.

절집에는 도감이라는 소임이 있다. 절의 건축불사와 재산을 관리하는 소임으로 주지의 역할보다 더 중요하다. 지치기 쉬운 소임이니 무엇보다 끊임없이 샘솟는 원력이 있는 스님이라야 한다.

근세에 해인사가 가람이 훌륭하고 스님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데에는 오랫동안 도감소임을 보셨던 종성스님이 계셔서 이다. 송광사가 현재의 훌륭한 가람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불사도감 현고스님이 주석하고 계셔서이다.

이렇듯이 오늘날 스님들이 많이 모여살고 훌륭한 가람을 갖춘 곳은 사찰의 건축과 재산을 담당하는 도감의 역할을 맡고 계시는 스님이 있기 때문이다.

미황사가 달마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는 전각들이 세워진 데에는 불사도감의 원력을 내신 전 주지 현공스님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도량에 불사원력을 내어 일심으로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20여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도량을 살피고, 건물을 짓고, 관리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저 분이 보살의 화신이 아닌가?’ 여겨지곤 한다.

나는 스님이 도량에 대한 불사 원력을 얼마나 간절히 세워 실천해왔는지 알기에 10년 전 망설임 없이 주지 소임을 맡았다. 그것이 녹록치 않은 불사를 위해 매진해온 스님에 대한 예의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미황사가 안팎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스님의 그런 노력 덕분임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절집의 구조는 단순한 건물의 나열이 아니다. 무엇 하나 허투루 지어진 공간이란 없다. 부처님의 사상과 가르침이 건물 곳곳에 가치 있는 의미로 숨겨져 있다.

“일주문의 기둥이 왜 1개인지 아는가? 사천왕이 절 들머리를 지키는 뜻은 무엇인가? 대웅전은 무엇이고 대웅보전은 또 무엇인가?”

한 발짝 뗄 때마다 물어오는 저 가람의 묵언 속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면 절집을 제대로 보았다 말하기가 곤란하다. 이제 우리가 염화미소로 대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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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짱킹 09-12-2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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