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1-15 17:37
사십구재
 글쓴이 : 금강
조회 : 3,376  

사십구재

태어남은 어디서 왔으며 죽음이란 어디로 가는 것인가.

태어남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짐이로다.

뜬구름 자체는 실체가 없으니

생사와 오고감도 역시 그러하도다.

한 물건만 홀로이 언제나 드러나니

맑고 맑아 생사를 따르지 않도다.

요즘 들어 49재를 지내달라는 의뢰가 많다. 도시에 자리한 절에서야 49재를 지내는 일이 많지만 시골 절에서는 일 년에 두세 번 지내는 일도 드물다.

농촌사회는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어서 사람이 죽으면 일반적 제사의식에 따라 망자를 떠나보낸다. 절에서 49재를 지낼 때는 아주 억울하게 죽었거나 젊어서 죽은 영혼을 위해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불교신자들이 흔히 잘 못 쓰는 용어가 재(齋)이다. 천도재, 49재, 관음재일과 같은 재를 제사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제(祭)는 인간과 신(神)을 연결하는 소통의 의식이다. 무당이나 제주가 망자와 산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고 달래주는 의식이다.

그러나 재(齋)는 ‘삼가다’와 ‘부정을 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서 오계를 지키고 수행을 하는 기간이라는 의미가 크다. 다시 말해 깨침의 법을 설하여 윤회의 사슬을 끊어 육도윤회를 벗어나 성불의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49재를 지낼 때는 지켜야할 덕목이 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 죽이려는 마음을 없애어 작은 미물일지라도 연민의 마음으로 대하여 해치지 않고 가엾게 여긴다.

둘째, 남에게 베풀 것을 생각하고 탐욕의 마음을 버린다.

셋째, 부부는 잠자리를 피하고 음탕한 마음을 없앤다.

넷째, 거짓과 속이는 마음을 멀리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섯째, 정신을 산만하거나 어지럽게 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여섯째, 향수나 화장품을 쓰지 않으며 노래하고 춤추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일곱째,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며 화려한 침구나 높은 자리를 피한다.

여덟째, 때 아닌 때에 먹지 않아야 하며 탐닉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일상적인 삶을 되돌아보고, 망자를 위해 수행하는 마음을 내며 남을 돕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49재를 지내는 이의 마음가짐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49재를 지내기 위해서는 매장이나 화장을 마치고 영정을 절로 모시고 온다. 법당의 영단에 영정을 모시고 반혼재를 지낸다. 반혼재는 영혼을 절에 처음으로 모시는 의식이다. 이때 절 주지인 나는 상주들에게 사찰 예절과 49재의 의미를 자세하게 일러준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이야 크겠지만 죽음을 제대로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 여기기에 빠트리지 않고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제대로 알고 행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큰 법이다.

“자동차가 수명이 다하거나 고장이 나면 운전수가 차를 버리고 나오듯이 몸 기능이 다하면 마음의 주인이 밖으로 나온다. 그 상태를 중음신이라 하거나 영혼이라 한다. 죽으면 눈, 귀, 코, 혀, 피부, 뇌의 기능이 멈추어서 보는 의식과 듣는 의식, 냄새 맡는 의식, 맛을 보는 의식, 촉감을 느끼는 의식, 분별하는 의식들이 멈춘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라는 의식은 확대되고 오래도록 지속된 그 힘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49일 동안 서서히 사라진다. 이 자의식이 남아 있는 동안 절에 모시고 청하여 음식도 주고 무상법문도 해주고, 살아서 잘못된 행위들은 참회하여 소멸시키고, 재를 베풀어 복을 북돋아 준다. 자의식이 작용하는 이 시기에 무의식에 주는 변화가 가장 크기에 절에서 49재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다.”

깊은 슬픔 중에도 상주들은 나의 법문을 귀 담아 듣는다. 그런 마음들이 분명 죽은 이에게도 전달될 것이기에 49재는 의미 있는 의식이 되는 것이다.

49재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20여 년 전 마을의 한 가족이 할아버지 제삿날이라며 불쑥 찾아와 제사를 지내 달라고 했다.

“제사를 지내려면 음식 장만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어떡합니까?”

라고 했더니

“제수 올릴 준비는 집에서 다 마련해왔으니 염불만 해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가사 장삼을 걸치고 대웅전에 올라가 보니 영단에 이미 과일이며, 떡이며, 나물과 전이 잘 차려져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국은 바지락 탕국이요, 전은 생선과 고기전이 올라가 있었다. 마을 집에서 마련하는 제사상과 진배없이 준비해왔던 것이다.

그동안 큰절 중노릇 하다가 시골 바닷가 마을 절에 와서 보니 그 풍습이란 게 묘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법식대로 정성스럽게 염불은 잘 해주었지만 어찌 가르쳐야 할지 답답했다.

차도 없던 시절인데다 시장을 봐와도 500미터 언덕 아래부터 지게로 날라 와야 하니 집에서 제사상을 차려왔던 모양이다. 게다가 음식 장만 할 공양주도 따로 없는 형편이고 보니 준비해 오는 대로 영단에 올렸겠지만 비릿한 제사상을 마주하고 보니 무척 난감했다. 지금이야 그런 풍경을 마주할 일은 없지만 20 여 년 전만 해도 어렵지 않게 만나는 광경이었다.

10여 년간 불사와 포교에 바삐 살다가 몇 해 전에

‘주지에게도 휴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쁘게 살아온 내게 휴가라는 이름으로 휴식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마냥 놀자는 것은 아니었고 한 달 간 제방을 돌아보며, 수행 프로그램을 점검하는 여행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바랑을 챙겼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들이 49재를 해달라며 연달아 찾아왔다. 절집의 다른 일들은 여러 사람에게 분담을 하면 되는데 49재만큼은 대신 맡길 수 없었다. 더구나 나를 보고 찾아온 일이어서 차마 뿌리치질 못했다. 한 달 휴가는 떠나 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것이다. 그때 나는 농담 삼아

“내가 한가한 줄 귀신들이 먼저 안다.”

며 푸념했던 기억이 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봉화마을 뿐 아니라 서울 조계사를 비롯한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에 앞서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에는 49재미사라는 용어로 천주교식 49재가 등장하기도 했다.

49재가 일반화 되어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진정한 재의 의미가 오롯이 담겨 있는지 한 번쯤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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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순 11-01-07 10:39
답변 삭제  
49재의 의미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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