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7-26 14:42
나는 매순간 배운다
 글쓴이 : 금강
조회 : 3,818  

 

육조단경 무상계(無相戒)의 사홍서원 중에

“무량한 법문 다 배우기를 서원합니다.”

라는 대목을 읽다가 문득 생각했다. 문 밖의 무궁무진한 배움과 자성속의 무궁무진한 배움이 매 순간 이어져 있음을 말이다.

부처님 제자인 내게 일차적 배움은 경전에 근거를 둔 교학적 배움이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내게 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면 그건 죽은 공부일 뿐이다. 직접적인 수행을 통하여 중도적 시각을 가졌을 때라야 비로소 살아있는 공부가 되고, 내 것인 배움이 되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늘 준비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걸 보면 분명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확실하다. ‘한문학당’ 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들과 매년 씨름하듯 여름을 훌쩍 보냈다. 한문학당을 시작하면 고즈넉한 산사에 감돌던 기운이 달뜨고 경쾌해지며 활기차진다. 예불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그 속도도 빨라진다. 아이들이 흩뿌려놓은 온기 덕분이다. 산사는 금세 아이들의 움직임을 좇아 하나가 되어 돌아간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주지나 스님으로서의 입장을 고수해 내 의도대로 아이들을 끌고 가려 하면 되는 일이 없다. 아이들 마음이 내 마음을 따라 오지 못하는 까닭이다. 물의 흐름 같은 자연스러움은 사라지고 늘 삐거덕 거릴 뿐이다. 그럴 때는 철저히 아이들 마음이 되어야한다. 그래야 한문공부도, 예불도, 여러 체험행사도 무리 없이 진행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지내다보니 그들과 교감하는 일 쯤 어렵지 않게 되었나보다.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소통이라는 말이나 얼마 전에 본 아바타라는 영화에 나오는 서로를 향한 접촉도 교감과 크게 다르지 않는 말일 것이다.

내가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것은 그들은 사물이나 사건을 이미지 자체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가령 대웅전을 본다면 아름다운 달마산의 전경과 그에 어울리는 건물, 그리고 400년이라는 역사, 나무와 흙이라는 소재, 그 속에 예불을 하고 있는 자신까지 온전하게 하나의 이미지로 흡수한다. 마치 스펀지가 주변에 묻은 물을 모조리 빨아들여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말이다. 그동안의 경험과 학습된 자신의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고 눈앞에 있는 그것 그대로를 통째로 받아들인다. 배움이란 무릇 그러해야 한다는 듯이.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나에게 늘 새로운 눈으로 현재를 살게 한다. 지금의 나를 살피게 하는 아이들이 좋은 이유다.

10여 년 전 스무 명 남짓 사는 선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중 가운데 나보다 세속 나이는 많고 행동과 말투가 거친 하판의 스님 한 명이 있었다. 혹여 시비가 될까봐 지레짐작으로 말도 섞지 않았다. 예의 없는 행동은 늘 눈에 거슬렸다.

어느 날 점심 공양 후에 포행을 가는데 반대편 쪽에서 다가오는 그 스님을 보고 무심결에 피하는 나를 보았다. 오후 정진을 하면서 생각했다.

‘왜 아무 이유도 없이 피했을까? 저 스님이 나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데 겉모습과 말투 만 보고 내가 거부하는 모습이 과연 옳은 행동인가? 미리 방어하는 이 마음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러다 문득 저 스님도 나와 똑같이 좌복에 앉아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치고 다가왔다.

‘아, 내 시각이 그동안 크게 잘못되었구나.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하려 했구나.’

좌복에 앉아 한 명 한 명의 선방 스님들이 되어 보았다. 밖으로 나와 선방 주변을 감싸 안은 나무도 바위도 되어보았다. 내 마음에 드리운 발을 거둬들이자 마음은 한없이 크게 열리어 모두를 끌어안고 모든 것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경이로운 법문이었다. 존재를 인정하는 것, 그 마음이 지금까지 나로 하여금 수많은 만남을 배움의 장이 되게 해주고 있다.

매달 7박8일간 ‘참사람의 향기’라는 참선 집중수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벌써 6년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매월 계속하기가 쉽지는 않는 일이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6년이 흘렀을 뿐 나는 늘 지금을 살았다.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 했을 뿐이다.

내가 미황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말하라면 바로 8일 동안 ‘참사람의 향기’를 진행하는 기간이다. 사람들에게는 묵언을 시켜놓고 나는 8일 동안 온전히 수행 이야기만 한다. 주지가 아무 일 하지 않고 사람들과 앉아만 있어도 꽤 많은 일을 한 것처럼 보이니 그건 덤이다.

법문 중에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초발심자가 갖추어야할 대신심에 대한 대목이다. 또 제대로 화두를 들고 있는지도 날마다 점검한다.

사실 고백하건데 법문과 점검의 끝에 놓인 화살표는 언제나 나를 향한다는 점이다. 법문을 핑계로 나는 내 공부와 살림살이를 점검하는 것이다. 녹록치 않는 7박8일의 여정을 6년 째 거르지 않고 할 수 있는 원동력도 나의 배움이 무르익고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2010.7 청암지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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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여우 10-08-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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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배움이 무르익는 만큼
스님을 닮고 싶은 마음도 간절합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함께 무르익는 듯 합니다
해남경찰서 10-10-08 23:07
답변 삭제  
수처작주......가는곳마다 주인되소서 .....경인년 봄에  미황사  금강...(대웅보전을 배경으로)
 ...금강.현공스님과  함께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요사채에서  차를 마시면서..
써주신 글 .....  모든 이들이 잘 보이게끔  .....오시는 분들마다 부럽다 글귀가 너무 좋고 .....
글씨체가 너무 좋다고 하네요 .....글 받아 오라고 들들 볶으는데  어쩌면 좋겠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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