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2-01 19:14
향은 흩어져 온 방을 가득 채우고
 글쓴이 : 금강
조회 : 1,116  
 
  글쓴이 : 금강스님     날짜 : 2012-11-13 10:21    
  이번 괘불재를 마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동안 많은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들여 준비한 그 모습이야말로 괘불재의 백미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홍보물을 제작하여 많은 사람에게 우편 발송 작업을 하고, 연등을 만들고, 과일을 씻고, 나물을 다듬고, 선물을 포장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풀을 베고, 회의를 하던 그분들이 괘불재의 고갱이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는 백창우입니다. 동그란 굴렁쇠가 세상을 굴러가듯 모나지 않는 예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한 시디를 올립니다.
  "산스크리트, 빠알리 문학연구소"소장 박경숙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인도 히말라야 설화가 담긴 책 "마하바라따"를 15년 동안 번역작업을 하여 올해 총 5권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인도와 인연이 깊은 미황사 괘불부처님 앞에 책을 올립니다.
  땅은 없지만 제 입으로 들어가는 쌀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밥두레"입니다. 올해 20가구가 모여 만안마을에 땅을 빌려 손 모내기를 하고, 지난 7일에는 가실을 했습니다. 땅과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되어 밥이 되는 쌀을 저희 손으로 거두었습니다. 생애 첫 농사 검정 쌀을 올립니다. ”
  현산면에서 농사를 짓고, 벌을 치고 있는 김동술입니다. 올 한해도 무탈하게 잘 보냈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불평만 늘어놓는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꽃과 벌들이 만들어 놓은 꿀을 올립니다.
  완도대교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최재관입니다. 부처님의 가피 속에 10년에 걸친 노동자들의 땀과 정성으로 올해 해남과 완도를 잇는 500m의 완도대교를 완공하였습니다. 완도대교를 이용하는 차량과 사람들 모두 안전하고 편안하기를 바라며 완도대교 준공 사진을 올립니다.
결과는 허망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다
  많은 분이 일 년 수확물을 부처님 전에 올리며 읽은 공양의 글이다. 다시 읽어도 코끝이 시큰하고 가슴이 뭉클하다. 마치 티베트 스님들의 모래 만다라를 보는 것 같았다. 티베트 스님들은 아주 의미 있는 때에는 모래 만다라를 제작한다. 다섯 명이 엎드려 아주 가는 색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데 7일 동안 온갖 정성을 쏟는다. 그때는 호흡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안 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집중하여 그리는 과정이 완벽한 삼매의 수행이다.
  그런데 모래 만다라가 완성이 되면 축원을 하고는 곧바로 만다라를 지워 버린다. 잔뜩 기대하고 옆에서 지켜본다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모래 만다라가 무상을 표현한 것이기에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허망할 것도 없다. 완성된 만다라는 이미 바라보았던 이들의 가슴에 가득 남아 있으니까. 또한 그리는 과정이 삼매이고, 그 행위 안에 깊은 수행이 깃들여 있었기에 모래 만다라는 허상일 뿐이니까.
  앞에 놓인 건 공양물인데 내가 본 건 일 년 삼백 육십 날을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온 마음으로 살아온 이들의 삶이다.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삶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감동이 밀려온다.
  괘불재를 마치고 다음날 마당에 홀로 서서 생각했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2,000여명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괘불재의 광경을 뿌듯하게 바라보고, 기쁘게 참여하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지만 2,000명의 가슴속에 살아 있겠구나. 또한 각자의 이야기로, 상상으로 2,000여개의 괘불재로 재탄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향을 한 개 피우면 형체는 연기로 변하고 그 연기는 모습이 흩어져 향기로 변화하여 온 방에 그 향기가 가득하듯이,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로 변화 하였을 뿐 그 본질은 오히려 수천 수만으로 확대되어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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