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21 13:08
나무들의 동안거
 글쓴이 : 금강
조회 : 1,182  

 
 
 
 
나무들의 동안거
 
비온 뒤라 가을 바람이 차갑다.
노랗고 붉은 단풍잎들이 휘휘 날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남도 땅이라 늦은 가을까지도 바닥에 뒹구는 단풍잎들이 곱다.
 
지난 겨울은 한 달 동안이나 추위가 깊었는데도 어김없이 봄에 조그만 새싹을 틔우고는 짙푸르게 영근 여름을 보내더니만 가을이 되니 제 살을 통째로 떨어뜨린다.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다.
나무들도 동안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예쁘고 아까워도 내려놓는다.
 제 발밑에 뒹구는 낙엽들도 있고, 다른 나무의 발밑에 떨어지는 낙엽들도 있다.
숲에서의 낙엽들은 누구의 나무랄 것 없이 서로서로 뒤엉켜 거름이 되어 나무들을 키운다.
나무들이 빽빽한 총림일수록 겨울나기가 더 좋다.
 
이런 낙엽 지는 가을날 한 스님이 운문선사(雲門 864~949)에게 물었다.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樹凋葉落)”
나무는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나고, 천지에는 가을 바람이 가득하지 (體露金風)”
 
이 계절은 그것이 무엇이든 제 진면목을 오롯이 드러내기에 맞춤한 때이다.
드러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그것과 마주할 때 참나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도 겨울이 있다.
그 겨울은 사람들이나 환경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로병사의 근본적 한계성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미황사 절을 찾아 일주일간의 수행에 든 이들이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대학 졸업 후 지난 몇 년간 뭔가에 쫒기듯 바쁘게 회사 생활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식도염, 위염, 우울증까지 생겨서 항상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2주일 전 업무 스트레스로 복통에 시달리다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암초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직장 상사와 갈등과 업무의 스트레스가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내 손으로 선택한 회사였고 내 꿈을 실현했던 회사였는데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제 진정한 행복을 찾고자 여기 왔습니다.”
 
영어교사를 하다가 다시 임용고사를 보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 불안 때문에집중할 수 없었고 결국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 뒤 방안에만 계속 있었고 부모님과 남동생의 얼굴을 보고 대화하기를 꺼리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겨울을 마주한 이들의 고민이 깊다.
그들의 동안거가 시작된다. 나무의 동안거처럼 모든 감각의 문을 닫는다.
자신을 표현하는 말문을 스스로 닫는다.
그리고 하루 두 끼니의 식사와 춥거나 덥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서있는 나무처럼 가부좌를 틀고 자신의 온갖 생각들과 직접 대면하는 수행을 시작한다.
밖으로 내달리는 마음 길을 쫓다보면 세상 밖에서보다 더 헐떡이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수행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와 자신을 만난다.
 
출가 수행자들은 동안거(겨울수행기간 음력10.15~1.15)기간이 되면 북극곰이 겨울잠에 들 듯 한 곳에서 오롯이 수행한다.
그 수행은 결국 나무가 가을에 이파리를 떨어뜨리듯 욕심과 망상과 나를 내려놓는 것이다.
 
가부좌를 튼다.
좌선(坐禪)이다.
밖으로 향하는 어지러운 마음을 쉬는 것이 진정한 앉음()이다.
앉아있기 위해서는 헐떡거리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눈으로 분별하여 좋은 것을 보려는 마음과 입으로 분별하여 맛있는 것을 먹으려는 마음이 갈등이 생기게 하고 바쁘게 한다.
()를 내세워 부딪쳐 일어나는 감정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화가 났을 때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해도 내 의견보다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먼저 생각나고, 지난 경험을 떠올려 추측하고 상상한다.
결국 눈, , , , 피부와 의식에서 좋은 것을 원하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내 것과 나의 경험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까지 내려놓아야 한다.
 
마치 구름 걷히면 밝은 햇살이 나타나듯 내려놓으면 번뇌와 망상이 없는 평화로움(無念)과 행복함(無相)과 자유로움(無住)이 나타난다.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선()이다.
 
홀로 겨울을 맞이하는 것은 어리석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으로 인해 지금의 어려움이 만들어 졌는데 현재의 의식으로는 아무리 궁리를 해도 풀어지지 않는다.
결국에는 무릎을 꿇거나 일시적으로 피하거나 돌려막기뿐이다.
 
나무들이 겨울나기를 위해 내려놓고 봄을 준비하듯이 자신을 향상시키는 동안거가 필요하다.
거기에다 함께하는 도반이 있으면 게으름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점검하는 거울이 된다.
 
한 선사의 말을 빌리면
 
마음으로 말하자면
마음에는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
마음은 본래 깨끗하고
마음 안은 이미 고요하다
요즘 들어 마음이 고요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마음이 감정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은 더 길고 추위가 매섭다고 한다.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나무들의 동안거처럼 생각의 체중을 줄여보자.
 평화로운 봄과 행복한 여름을 만날 수 있으리니.
 
                                                                                                    [경향신문 정동에세이 2013. 11.21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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