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3-30 22:38
절집이야기 4 - 발우공양
 글쓴이 : 금강
조회 : 4,890  

 

아침 여덟시 울력시간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미황사 경내에 울려 퍼진다. 대웅전에서 기도하는 스님부터 손님으로 찾아온 스님, 7박8일 참선 수행하러 온 사람들, 템플스테이 온 사람들까지 모두 절 마당에 모였다.

 

이번 울력은 이 계절에 어울리는 봄나물 캐기로 정했다. 마침 햇살도 따사롭고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순한 봄이 묻어있어 나물 캐기에 맞춤한 날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흩어져 명부전 뒤뜰이며, 후원 옆 조그만 웅덩이에 둘러앉아 쑥이랑 머위, 돌미나리를 뜯는다.

 

여러 손이 거든 덕에 푸짐한 푸성귀를 밥상에 올릴 수 있었다. 발우마다 고봉으로 담긴 봄나물로 밥상이 풍성하다. 발우에 올려진 쌉싸래한 머위 새순 무침이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여 밥맛을 돋운다. 모두들 보약을 먹는 기분으로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봄을 씹는다.

 

금강경의 첫머리에는 부처님의 일상생활을 자세하게 그려놓고 있다.

 

"부처님은 사위국의 기원정사에서 제자들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양시간이 되자 발우를 들고 성안으로 들어가 한 집 한 집 차례로 밥을 빌어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공양을 하시었다."

 

이것은 부처님 또한 한 집 한 집 걸식을 해 공양을 해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직도 동남아시아의 불교국가에 남아 있는 이 탁발은 수행자로 하여금 하심(下心)하고 절제하며 인욕하는 삶을 몸으로 가르치는 수행의 한 방법이다. 또한 재가자에게는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공덕을 짓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주로 산중에 절이 위치해 탁발로 공양을 해결하기 쉽지 않는 구조이다. 그러다보니 대중들이 직접 밥을 해서 먹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밥을 먹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여법한 수행인 발우공양법이 정착 되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누어 먹는 평등의 정신과 철저하게 위생적이고, 낭비가 없는 청결의 정신, 그릇 소리나 먹는 소리가 나지 않는 고요함이 발우공양에는 있다.

 

미황사에서 진행하는 7박8일간의 참선수행기간에는 미황사만의 공양법이 있다. 아침에는 가볍게 죽을 먹고, 점심에는 여법하게 발우공양을 하고, 저녁에는 당근 주스 한 잔으로 뱃속을 비우는 식사법이 그것이다.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공양이 점심의 발우공양이다. 바깥에서 먹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아침과 저녁의 소찬은 견디기 힘든 고통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낮에 끼니 답게 먹는 발우공양은 나물 한 가지라도 정성을 듬뿍 담아서 내놓게 된다.

 

발우공양은 말이 필요 없다. 모든 신호는 대나무로 만든 죽비로 한다. 죽비를 한 번씩 칠 때마다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을 한다. 수행 첫날 실제 발우를 가져다놓고 발우공양하는 방법을 익혔기 때문에 진행의 맥이 끊기는 일은 없다.

 

묶인 발우를 펼치고, 밥과 국과 반찬을 차례대로 들고 각자 펼쳐놓은 발우 앞에 서 있으면 필요한 만큼 정해진 발우에 나누어 담는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 물그릇 4개의 발우에 음식들이 담기면 밥을 먹을 차례이다. 밥을 먹는 수행관에 고요만이 낮게 내려앉는다. 밥을 먹은 다음에는 숭늉을 받아서 단무지로 밥이나 반찬찌꺼기를 씻어서 함께 먹고, 청수물로 앉은 자리에서 설거지를 한다. 밥을 나누고 먹고 설거지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한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처음 꺼내온 자리에 발우를 챙겨 올려놓으면 공양은 비로소 끝이 난다. 밥 한 톨 남기지 않은 완벽한 공양이 이루어진 것이다.

 

밥을 먹기 전에 게송을 외우는데 그 안에도 깊은 법문이 담겨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있습니다.

정성이 깃든 이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청정하게 살겠습니다.

 

이르는 곳마다 부처님의 도량이 되고

베푼 이와 수고한 모든 이들이 보살도를 닦아 다 함께 성불하여지이다.

 

미황사는 여름과 겨울에 초등학생 대상의 한문학당을 운영하는데 이때도 하루 한 끼는 발우공양을 한다. 처음 하는 아이들은 숭늉 물을 마실 때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익숙해지면 발우공양을 맛있어 한다.

 

“스님, 진짜 고기 안줘요?”

“콜라나 피자는요?”

 

가끔 너스레 떠는 녀석들이 있기도 하지만 발우공양을 놀이처럼 즐기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이 발우공양을 하고 나면 편식이 없어지고 음식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는 습관이 길러진다.

 

몇 해 전 중앙승가대학교 김상영 교수의 아이들 두 명이 한문학당 졸업을 하고 나서

 

“아빠, 발우랑 목탁 사 주세요!”

 

했다고 해서 기특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중국 상하이에 사는 보연이는 한문학당을 마치고 집에서 밥을 먹을 때 1년 동안 발우공양 방식으로 공양하고 있다며 엄마가 자랑스러워 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심각한 환경문제가 된 요즘 발우공양의 참 의미가 밖으로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다행히 불교단체에서 벌이고 있는 '빈그릇 운동'이 발우공양의 현대적 실천 방법인 것 같아 고무적이다.

 

어제와 오늘의 봄빛이 다르다. 봄산은 연일 오리나무 싹을 틔우고, 별꽃 꽃망울을 터뜨리고, 매화향기 흩뿌려놓고, 골골마다 봄나물 지천으로 밀어 올린다. 눈과 코와 입이 한껏 즐거운 봄이다. 오늘은 조물조물 무쳐낸 산나물로 향긋한 밥상에 다시 앉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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