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5-08 00:16
절집이야기-5 부처님 오신날
 글쓴이 : 금강
조회 : 3,715  

부처님오신날

절에서 가장 큰 명절은 부처님오신날이다. 그 준비는 해가 시작되면서부터 해야 늦지 않다. 가장 먼저 서둘러 하는 일이 연등 만들기. 얇은 색색의 한지 연잎을 한 장 한 장 말아서 꽃잎을 만들고, 그 꽃잎을 등에 붙여 화사한 연꽃등을 만드는 작업은 오래도록 정성을 들여야 한다. 솜씨가 좋아야 예쁜 연등이 만들어지지만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비로소 보기 좋은 연등을 완성한다.

부처님 오신날에는 아침에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의 관불식을 한다. 한손으로는 하늘을, 한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는 탄생불을 화려한 꽃으로 장식을 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탄생 때 샘물이 솟아 목욕을 시켜주었듯이 한 사람 한 사람씩 나아가 청정한 물을 머리에서부터 끼얹어 아기 부처님을 깨끗이 씻겨드린다. 이것이 바로 관불식이다.

양족존 태어나셨을 때

두 가지 샘물 저절로 솟아오름으로

보살에게 공양하니

그 물 두루 관찰해 보고 깨끗이 목욕하였네.

저절로 솟아오른 두 샘물이

심히 청정하였고

찬물 더운물 갖추었나니

이로써 부처님 목욕하셨네.

- 장아함경 제1권 대본경 -

미황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해마다 부처님 오신날 즈음에 붉게 피는 영산홍 한 그루가 있다.

12년 전 대흥사 아랫마을에서 불화를 그리며 사셨던 낭월스님으로부터 영산홍 한 그루를 받아와 옮겨 심은 것이다. 스님 말씀에 따르면 초의선사께서 대흥사 천불전 앞에 심은 영산홍이 60여 년 전 어떤 연유에서인지 뽑혀져 한쪽 구석에 뒹굴고 있었다 한다. 그래서 그 나무를 옮겨 심었는데 그 중 한 뿌리를 분양해 준 것이니 소중하게 심으라 했다.

영산홍의 깊고도 아름다운 꽃을 부처님께 바치고 싶어 대웅전 문을 열면 늘 보이도록 꽃밭 가운데 심었다.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신심 깊은 제자들에게 깨달음의 법문할 때 그 광경이 정말 아름다워서 하늘의 천신들이 꽃비를 내렸다는데 그 꽃이 영산홍은 아니었을까? 한 떨기 꽃처럼 화사한 영산홍을 보고 있으면 저 붉은빛 영산홍 꽃비였을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

어린 시절 초파일날은 마을 사람들의 신명나는 축제였다. 바쁜 농사철인데도 초파일날은 어김없이 삽과 호미를 손에서 내려놓고, 곱게 단장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산길을 따라 절로 향하곤 했다. 떡이며 멥쌀, 향, 초 등을 챙겨 이고지고 절로 향하는 모습은 그것대로 큰 구경거리였다.

어머니 손을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절 마당에 들어서면 분홍빛 연꽃등이 바람 따라 너울대며 반겨주었다. 등표에 식구들 이름 큼지막하게 써서 내걸면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든든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어스름 저녁이 올 때까지 우리 등이 제대로 매달려 있나 몇 번을 확인했다.

마을 사람들은 전각마다 정성을 들이고, 오랜만에 주지스님 법문도 듣고, 나물로 비벼놓은 비빔밥까지 맛나게 먹고 나면 절 어귀에 모여 장구치고 노래 부르며 신나게 노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왁자한 잔칫집 풍경 그대로였다. 시골 촌부들은 부처님오신 생일날을 가장 뜨거운 몸짓으로 축하하고 기뻐했던 것이다.

내 어린 시절과 달리 농촌의 인구는 많이 줄었다. 젊은 사람들도 많지 않고, 나이 드신 어른들만 지키고 있다. 그 사이 종교도, 놀이문화도 다양해져서 부처님오신날이라고 절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불교를 믿는 나이 드신 어른들이 대부분이다.

시골 절의 주지를 맡아보면서 여러 해 동안 평범한 부처님오신날을 보냈다. 300여명 정도 되는 신도들이 찾아와 불교의 가장 큰 명절을 함께 보냈다. 사람들로 넘쳐나던 어린 시절 왁자한 부처님오신날 풍경은 더 이상 없었다.

그때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났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 옛 추억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보여드리고 싶었다. 절에 얽힌 사연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을 어르신들이 아닌가.

마을 이장들에게 65세 이상의 어르신들 중에 마을 대표 한 사람씩 추천해달라고 하여 노인노래자랑을 만들었다.

가슴에 꽃도 달아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렸다. 땅끝 마을에 60년 넘게 뿌리내리고 살았던 ‘고목 부처님’들이 1천명 넘게 절 마당에 모였다.

“예전에는 장이 큰께 장날 장 구경 가면 이 마을 저 마을 사람 얼굴을 봤는디, 인자 1년에 한 번 씩 미황사와야 다른 동네 친구들 얼굴을 볼 수 있당께.”

어르신들은 미황사 마당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마을 대표를 뽑아 며칠씩 맹훈련을 하고 노래자랑에 나오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화려하진 않으나 소박하고 정겨운 동네 잔치가 절 마당에서 펼쳐졌다.

부처님오신날 미황사에 가면 잔치가 벌어진다는 소문이 동네방네 퍼졌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자 수는 늘어났다. 어린 시절 보았던 살가운 풍경이 미황사에서 재현된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부터 절은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절 마당에 색색의 연등이 내걸릴 것이다. 가족의 이름과 소원이 적힌 등표도 함께 나부낄 것이다. 가족의 건강을 발원한 이도 있을 것이고, 시험의 합격을 염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마음의 평안을 바랄 것이고, 세계의 평화로움을 기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바라고 원하는 것은 가지가지이지만 간절한 마음만은 매 한가지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라면, 그런 마음으로 산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 많을 것이다. 부처님오신날, 모두 모두 행복한 날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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