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8-02 14:54
절집이야기 7 - 한문학당
 글쓴이 : 금강
조회 : 3,299  

매년 여름이 오면 기다림과 긴장이 교차하는 시간들이 꽤 길다. 벌써 9년의 여름을 ‘한문학당’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뛰놀고 씨름하면서 보냈다.

해년마다 새로운 아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온다. 심지어는 미국이나 인도, 중국 등지의 교포2세 아이들까지 찾아온다.

매번 준비에 최선을 다하려 애쓴다. 이제는 시설과 교육재료들이 넉넉한데도 구입할 새 것들이 또 생기게 마련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아이들도 달라지고, 내 경험이 달라지니 그에 따른 준비물도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한문학당은 격을 갖추어 간다. 발우를 묶는 줄은 접착식으로 바뀌고, 긴 밥상 책상은 개인용 책상으로 바뀌고, 방석은 등받이 좌식의자로, 4시 기상시간은 5시로, 아침 발우공양은 좀 더 자유롭게 진행하는 것으로 제 모습을 갖추어 나간다.

산중은 아이들이 경험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역사와 문화와 자연이 생생하게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늘 새로움을 찾는 아이들의 속성을 고려하면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시간은 어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어른들이 늘 그들의 입장에서 시간과 환경을 생각하는데 반해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시간보다 몇 배나 긴 시간을 보낸다. 매우 느리게 느끼고, 세세하게 살피며, 마음 깊숙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들의 한 시간은 어른의 한 시간보다 몇 곱절 긴 한 시간이 되는 셈이다.

태어나서 일곱 살까지는 사람이나 사물들에서 느껴지는 파장이 큰 영향을 준다. 그리고 일곱 살부터 열네 살 때까지는 경험한 새로운 사실들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받아들인다. 이때 경험한 모든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사물을 바라보는 기초가 된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곳에서 여러 날을 보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역사가 스며들어 온다. 더구나 수많은 수행자들의 맑은 기운들이 가득한 곳이 사찰이 아닌가.

산에서 부는 바람이 에어컨이나 선풍기의 바람보다 더 시원하다는 것을 느끼고,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보는 풍경보다 직접 보는 저녁놀이나 밤하늘의 별이 더 깊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경험은 일생동안의 큰 자산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살아있는 경험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살아 숨 쉬는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7박8일은 짧지 않는 시간이다. 7일이 넘어지면 체험이 아니라 생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한문학당에서 익힌 것들이 실제의 생활에 적용이 되려면 7박8일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녹록치 않은 시간을 교육기간으로 정했다. 행사 기간 동안에는 부모들의 면회나 통신도 일체 할 수 없다. 그동안의 생활처럼 부모에 의지하는 마음을 자신이 혼자 생각하고 생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방식은 아이들에게 주변의 자연과 절과 스님들에게 집중하는 효과가 있으며 친구들과도 급속하게 가까워지게 한다. 따라서 서로서로 의지하는 효과가 십분 발휘되는 것이다.

오래전 광주 원각사에서 학생회 지도를 할 때의 제자가 미황사를 찾아왔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청학동 한문서당에 보낸다는 이야기에

“한문은 내가 더 잘 가르칠 수 있는데? 올 여름에 한문학당을 해 볼까?”

하는 말이 불쑥 나왔다. 불쑥 나온 말이지만 가볍게 뱉은 말은 아니었다. 도회지에서 오랫동안 어린이 법회를 했던 경험도 있었고 매일 예불을 마치고 큰 마당을 돌면서 이 마당에서 혼자 놀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자주 하던 터였다. 멋진 달마산과 아름다운 ‘바다 정원’과 저녁놀을 간직한 마당에 아이들을 뛰어 놀게 하고 싶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던 중에 큰절에서 자주 놀러오시던 법인스님과 이야기 하다가 법인스님이

“한문은 내가 가르치면 안 될까요? 전에 아이들 대상으로 사자소학을 가르친 적이 있는 데......”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생활지도는 제가 하지요. 강원생활을 아이들에게 접목시켜서 어린이 강원을 만들 면 교육프로그램으로는 최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의기투합을 해 시작한 것이 미황사 한문학당이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달마산과 대웅전의 풍경 속에 뛰어 놀던 아이들이 졸업하고 집으로 가기 전에 한마디씩 한다.

“스님, 8일 동안이나 그림 속에 뛰어 놀다 가는 것 같아요, 겨울에 또 올게요.”

그 말에 나는 감동을 한다. 그 맛에 힘겨운 한문학당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00년 여름 첫 해 교육을 마치고 법인스님과 나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가까운 병원에 가서 포도당 주사라도 맞아야 회복 될 것 같아서 시내 병원을 기웃 거리다 파업 탓에 영양제는 구경도 못하고 절로 되돌아 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온 마음 다해서 절집에서 얻어먹은 밥값을 했노라 농담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선연하다.

“야! 이놈들아, 공부해서 남 주냐?”

“스님은 남 주고 있잖아요.”

“콜라에는 고기도 안 들어 있는데 왜 안줘요?”

떼쓰던 아이들의 목소리도 귀에 쟁쟁하게 들린다.

蛇飮水하면 成毒하고

牛飮水하면 成乳하니라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드니라.

弓工調角하고 水人調船하며

材匠調木하듯이 智者調身이니라

활 만드는 장인은 뿔을 다듬고, 배 만드는 장인은 배를 다루며.

목수는 나무를 다듬고,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을 다스린다.

한문학당 학동들이 읊는 경구이다. 벌써부터 아이들 낭랑한 목소리 들리는 듯하다. 매미소리와 경쟁이라도 하듯 온 경내 돌고 돌아 종소리처럼 되울려 퍼지며 미황사를 싱그럽게 피워내던 그 목소리. 올해에는 또 어떤 녀석들이 찾아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한바탕 신나게 놀아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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