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9-10 00:13
칠월 칠석 날에는..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560  

칠월칠석 불공

미황사 대웅전 뒤편에는 삼성각이라는 조그마한 전각이 세워져 있다. 이 전각 가운데에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탱화가, 왼쪽에는 달마산 산신이 호랑이와 동자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홀로 깨달음을 성취하였다는 나반존자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삼성각에 모셔진 이 분들은 각기 다른 신통력을 갖추고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 처지에 맞는 소원을 들어준다. 절 가장 높은 곳에 삼성각을 지은 데는 사람들의 간절하고도 애절한 염원이 그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옛날 불빛이 없던 시절에는 어둠이 가장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어둠 저 편은 언제나 검은 장막이 처져있는 음습한 곳이었다. 그런 어둠과 결별하는 방법은 밝음을 찾아가는 길밖에 없었고 어둠 저 편에 자리한 별과 달이 대안이었다. 그중에서도 늘 하늘 그 자리에서 빛나는 별은 밤하늘의 길잡이였다. 특히 어둠속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북두칠성은 말 그대로 위대한 별이었다.

그런 별을 존중하다보니 해와 달을 관장하는 별이 되고, 바람과 비를 주관하는 별이 되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별이 되고, 드디어 치성광여래라는 부처님의 모습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사람들 ‘염원의 별’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 경내는 법회 준비로 분주하다. 일 년 중 딱 하루 삼성각이 법회의 주 무대가 되는 날이다. 햇빛 가리개를 치고, 법상을 차리고, 과일 떡 쌀 같은 공양물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손바닥만한 삼성각 앞마당에 신도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음력 칠월칠석날이다.

교통이 편리하지 않던 시절에는 칠석 전날에 다들 절에 모였다. 장날 시장에서 준비한 과일과 대바구니에 쌀을 담아 보자기에 꽁꽁 싸서 절까지 10리 넘는 길을 걸어서 찾아 왔다. 오다가 뱀이라도 만나면 부정한 것을 보았다 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부처님오신날보다 더 큰 행사로 여기는 신도들도 많았던 터라 1년에 한 번 뿐인 절 나들이를 마다하고 되돌아 간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 해 칠석날 찾아와서는

“오메 시님 반갑소. 작년에는 절에 오다가 길에서 뱀을 봤는디라우 께꾸룸해서(께름칙해 서) 집으로 가부렀소.. 그러다 봉께 1년만에 스님을 보요.”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절에 봉고차가 있어서 아침 일찍부터 마을을 돌며 실어 나르니 이런 일은 추억속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칠석날이 가까워지면 옆집에서 개를 잡는 것을 보았는데 절에 불공드리러 가도 되는지, 상갓집에 다녀왔는데 절에 가도 괜찮은지 묻는 경우가 많다. 1년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 절이다 보니 도리어 그 마음이 더 조심스러운가 보다.

칠월칠석날을 앞두고는 유난히 가정 내의 대소사에 대한 문의가 많다.

“시님, 우리 아들을 가을에 장개 보냈으면 좋것는디 날짜 좀 잡아주씨요.”

“집을 새로 짓는디 상량식 때 염불 좀 해줘야 쓰것소,”

“이번 여름에는 오만 삭신이 쑤셔 쌌는디 이랄 때는 무신 기도를 하먼 좋겄소?”

절에서 지내는 불공이 다 그러하지만 칠석날은 더욱더 가족의 안녕을 바라는 내용이 많다.

여름이 되면 전국의 절들은 다들 바쁘다. 백중날(음력7월15일)에 조상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 거꾸로 49일을 거슬러 올라가 7일에 한 번씩 7번의 천도재를 지내는 새로운 법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본래 백중은 여름 한철을 안거 한 채 열심히 정진한 스님들의 여름공부가 끝나는 날이다. 따라서 가장 맑고 수행이 충만한 날로 여겨 이 날을 택하여 돌아가신 부모나 일가 친척들의 영가 천도재를 지내는 것이다.

백양사 운문암에서 정진하던 시절 백중 때 일이 생각난다. 서옹 큰스님이 생존해 계실 때 여름 해제날인 백중이 되면 큰스님과 선방 스님들이 큰방에 모여 여법하게 천도재를 지내는 것으로 백 일 동안의 안거를 멋지게 회향하곤 했다. 그 아름답고도 당당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때는 선방의 스님들도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친지의 위패를 올려 천도재에 동참하고는 했다. 세속의 인연은 끊어졌으나 부모님 살아 생전에 다 하지 못한 효도가 회한이 되어 그리 했을 것이다.

한 철 열심히 공부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여러 스님들과 함께 지내던 천도재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뿌듯하다.

여름철의 더운 열기와 수행의 열기가 만나는 스님들의 하안거기간은 생각만으로도 활발발한 기운이 돈다. 그러한 수행의 기운을 회향하는 날이 칠석과 백중이다. 칠석은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살아있는 대중에게 행복하고 평화로움을 나누는 날이다. 그리고 백중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준 인연들에 감사하고 자신의 소중한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중요한 시간이다.

조심스럽다. 땅끝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미소와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목탁 들고 축원 올리는 칠석불공과 백중 천도재가..

깜깜한 밤에 길을 밝히는 북두칠성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더 깊어지는 공부를 하여 사람들의 행복한 삶의 방향을 묵묵히 가르켜주는 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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