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11-06 14:21
괘불재
 글쓴이 : 금강
조회 : 3,584  

괘불재

어느 산중이나 그렇지만 가을은 화려하다. 별빛은 날씨가 차가워질수록 밝아지고, 잡목이 많은 산일수록 그 빛깔이 곱다. 붉게 물들며 찬란하게 빛나는 가을산은 또 어떤가. 황홀경 그 자체이다. 유독 가을 산중에 마음을 빼앗기는 건 그 속에 깃든 사람들 또한 자연의 일부로 더없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혼자 두고 보기 아까운 계절이 바로 산중의 가을이다.

2002년은 내가 은사스님을 모시고 미황사에 짐을 부린지 13년째가 되는 해였다. 절은 몇 달째 주인 없이 비어 있었고, 반듯한 전각이라곤 대웅보전과 응진당이 고작이었다.

절 주변의 무질서한 나무들을 골라 베어내니 양명한 햇살이 절 마당까지 안온하게 퍼졌다. 내친 김에 좁디좁은 절 마당을 넓히는 일에 손을 댔다. 미황사 불사는 필요에 따라 그렇게 천천히 진행되었다. 명부전 삼성각 같은 전각과 승방 공양간 요사같은 생활공간들이 들어서자 제법 사격을 갖춘 절로 탈바꿈하였다. 그렇게 미황사 불사가 일단락 되어가던 때가 월드컵 열기로 뜨겁던 2002년이었다.

가장 여법하게 불사를 마무리하기로 마음먹고 천일기도에 들어갔다. 기도 중인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궁벽한 땅끝 마을 절에서 해년마다 집을 한 채씩 짓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또 집을 지으면서 사고 한 번 없었다는 것은 얼마나 신묘한 일인가.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다 문득 1992년 여름의 일이 생각이 났다. 그 해는 30년 만에 큰 가뭄이 들었다며 마을 사람들이 미황사 괘불 모시고 기우제를 지내 달라며 찾아온 것이다.

함 속에 모셔진 괘불탱화는 30년 전에 기우제를 지내다 큰비에 젖어서 배접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손만 대면 찢어질 지경으로 형편없이 보관되고 있었다. 괘불탱화를 모시고 기우제를 지내야 비가 온다며 막무가내로 우기는 사람들 등살에 못 이겨 마당 한가운데 포장을 깔고 눕혀놓은 채 기우제를 지내야만 했다.

이곳 사람들은 괘불부처님에 대한 신앙심이 대단하다.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믿고, 펼쳐진 것을 한 번만 봐도 소원이 이루어지며, 세 번을 보면 극락세계에 간다는 등 그 믿음이 가히 절대적이다. 그런 믿음 때문이었을까. 기우제 뒤 어김없이 비가 나흘 동안이나 내려 가뭄이 말끔히 해소되었다.

미황사의 불사다운 첫 불사는 그림만 남은 괘불탱화를 배접하는 일이었다. 한 집 한 집 화주를 하여 높이 12미터 폭 5미터나 되는 괘불부처님을 보수하게 되었다.

천일기도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가난하던 시절 정성스럽게 괘불탱화를 보수하고 모셨던 인연으로 아무 장애 없이 아름다운 절이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햇볕도 쏘여드리고 감사의 불공을 드려야겠다.’

그렇게 해서 미황사 괘불재가 시작되었다. 두 해 앞서 시작한 ‘작은 음악회’에 기대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본 터라 별 주저함 없이 괘불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괘불재는 함속에 모셔진 괘불님을 모셔오는 것으로 시작하여 법회와 큰스님 법문, 음성공양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을 한다. 회를 거듭할수록 의미 있는 내용들로 채우려 애쓰는 중이다.

괘불재의 주인공은 미황사를 터전 삼아 관계 맺은 사람들이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평생을 정갈한 마음으로 찾아와 미황사를 가꾸어온 땅끝마을 신도님들이다. 또 9년째 교육하고 있는 한문학당의 졸업생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한해 4,000여명의 템플스테이 참가자들, 지금껏 스물여덟번의 수련회를 통해 배출된 참선수행자들이다. 그들 모두를 주인으로 모시는 자리가 바로 괘불재인 것이다.

괘불재의 꽃은 누가 뭐래도 '만물공양'이다. 이것은 1년 동안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과물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함께 나누는 자리이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동의 시간이 바로 이때이다.

미황사 아랫마을 서정분교는 전교생 5명으로 폐교 직전까지 갔던 학교이다. 그런데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힘을 합쳐 살려내 50명이 넘는 학생들로 북적대는 자랑스러운 학교가 되었다. 2년 전 이 학교 선생님이 전교생 얼굴을 하나 하나 연꽃으로 장식한 액자를 만들어 부처님 전에 공양 올렸는데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비단 그 감동스러운 느낌을 나만 받았겠는가.

저는 오랫동안 해남군청에서 근무하다 사무관으로 퇴임한 강양원입니다. 올해 회갑을 맞이하여 공직생활을 하던 중 틈틈이 읽었던 고전문학 중에서 꼭 읽어야 할 문장들을 가려 뽑아

<문,사,철의 고문노트>라는 책을 발간하여 지인들에게 헌정하고, 오늘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립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하루하루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저는 해남군 송지면 산정리에서 이불집을 하고 있는 김길화입니다. 평생을 미황사에 다닌 신도입니다. 앞으로도 살아있는 동안 오래도록 건강하게 미황사에 다니고절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발원합니다. 제가 만든 목탁받침대를 올리겠습니다.

저는 미황사 참사람의 향기를 통해 미황사와 인연을 맺은 안연태입니다. 미황사와 인연을 맺은 이후로 좋은 일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발명한 롤테이프커터기가 실용등록되었습니다.

제 발명품이 여러 사람에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발원합니다. 커터기는 아직 제품화 되지 않아 실용등록출원서를 올립니다.

올 10월18일에 열리는 괘불재는 20여 년간 도량을 가꾼 노력을 부처님께 통째로 올리는 중창불사 회향식을 하고자 한다. 지금껏 미황사 주지를 맡아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는데 내게 가장 귀한 보물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번엔 나도 신도들 틈에 끼어 만법공양을 올리리라 마음 먹는다.

저는 미황사의 주지 금강입니다. 20여 년간 은사인 지운스님과 회주인 현공스님의 원력으로 완성된 대웅보전을 비롯한 20여 채의 건물불사와 대웅보전 단청문양 보고서 등 5권의 책과 한문학당 25회, 중학생문화학교 7회, 참사람의 향기 28회 동안 참가한 사람들의 명단을 올리며, 9년 된 경전읽기모임, 지난해 결성된 거사림회, 그리고 3,000여 세대의 신도명단을 올립니다. 미황사와 인연있는 모든 분들 모두 소원성취하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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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엄마 08-11-0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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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동의 만물공양시간이었습니다. 금강스님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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