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12-04 17:55
해넘이 해맞이..
 글쓴이 : 금강
조회 : 4,155  

해넘이 해맞이

땅의 끝, 땅끝 마을.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날, 12월31일. 끝과 마지막은 아쉬움과 그리움을 동반한 말이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땅이라 애잔하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시간들이라 애달프다. 그래서 사람들은 12월31일 땅끝을 찾아와 그 땅의 끝에 서보고자 한다. 허나 땅끝이 끝이기만 하던가. 끝인 동시에 시작의 첫발을 내딛는 곳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땅 끝에 서서 다시 열리는 시작이 찬란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미황사. 땅끝과 12월31일 사이에서 낯선 듯,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모습으로 자리한 절이다.

미황사는 해넘이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야 여럿 있지만 사람과 건축물이 하나인 듯 조화롭게 어울리는 곳으로는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다. 산과 절만 있으면 밋밋할 까봐 절 앞에 넓은 남해바다를 펼쳐놓아 해가 지는 절경을 선사한다.

9년 전 해넘이와 해맞이 행사를 시작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에 있어 여럿이 함께 해도 좋을 듯하여 시작한 일이었다. 12월 31일 밤부터 1월1일 아침까지 많은 사람들 과 함께하는 행사이다.

겨울에는 난방이 안 되어 사용하기 어려운 자하루를 주요 행사장으로 사용한다. 춥기는 하지만 난로 3개정도 켜고 바닥에 카펫을 깔면 행사장으로는 손색이 없다. 법당이 아니어서 새로 불단을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200명 넘는 사람이 함께 모이기에는 맞춤한 장소이다. 미황사 중건 초창기에 은사스님이 땅속에 묻혀있던 불두佛頭를 캐 응진당 담벼락위에 모셔두었는데 이 날은 ‘자하루 법당’의 주불님이 되어 주신다. 그리고 오래전에 경주박물관에서 탁본한 부처님 불두상을 후불탱화로 하고 꽃 장식을 하면 다시없이 멋진 불단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러 해 거듭 행사를 열고 보니 이제 전국에서 찾아온다. 외국인들도 여럿 눈에 띈다.

저녁 예불을 마치면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된다. 사찰 예절을 익히고 ‘참회 정진’을 하는 것이다.

미황사에는 가끔 비구니 스님들이 [자비도량참법]이라는 책을 들고 와서 일주일 정도 참회 기도를 하곤 한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데 초점을 맞추어 쓴 책이다.

옛날 달마대사가 중국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그를 왕궁에 초청을 했던 양무제라는 황제가 있었다. 그 양무제가 황후 치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천도하기 위해 스님들을 초청하여 지었다는 책이 바로 [자비도량참법]이다. 그 책을 보면서 참회를 하면 저절로 3천배를 하게 되어 있다.

현대적 언어로 풀이한 이 책을 가지고 법사와 대중이 번갈아 가며 읽고 절을 하는 방식으로 참회 정진은 진행이 된다.

오늘 미황사 청정도량에서 대중이 함께

삼보전에 귀의하고 참회 발원하나이다.

원컨대 저희들이 오늘부터 깨닫는 날까지 일체의 나쁜 행동을 멀리하고,

일체의 착한 행을 닦으며,

일체의 잘못된 소견과 일체의 잘못된 행위를 버리고,

올바른 안목으로 수행하며,

일체의 자기중심적인 욕심을 버리고 모든 중생을 향하여 헌신하고 회향하는

부처님과 같은 발원과 부처님과 같은 마음 씀을 잃지 않게 하소서.

글을 합송하며 일 배 일 배 절을 올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올바른 삶에 대한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1년의 마지막 날을 몸으로 절을 하며 참회하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몸으로 절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절은 비우는 행위이다. 이마와 두 팔과 두 무릎이 땅에 닿게 절을 하는 오체투지는 마치 그릇을 비우듯 나를 비우는 중요한 공부이다. 다섯 감각기관이 끝없이 욕심 부리는 것을 비우고, 나라는 생각에 싸여 일어나는 갖가지 감정들을 비우고, 잘못된 가치관이나 오만과 편견을 비우는 것이 절이다.

그리하여 잘못된 행위와 마음 씀이 정화 되었을 때 비로소 청정함이 채워지고, 고요함이 채워지고, 지혜가 채워지는 것이다.

참회정진의 시간이 끝나면 잠깐의 휴식 시간이 있다. 그리고 1월1일 0시가 되면 종각에 모두 모인다. 두 사람 씩 짝을 지어 종을 친다. 종소리는 종을 치는 이들의 번뇌를 실고 멀리 멀어져갔다 새 희망의 종소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종을 친 이들은 연등을 들고 부도전까지 산길을 밝히며 다녀온다. 눈 덮힌 하얀 밤길을 걸어서 걸어서 새해를 밝힌다. 눈 덮힌 길을 걸을 때에는 헤매지 말고 바르게 걸으라는 서산대사의 시구처럼 새해의 첫 발길을 흰 눈 위에 새긴다.

새벽예불을 마치고는 이른 떡국을 한 그릇씩 비우고 산길을 나선다. 산에 올라 새해 첫 날의 태양을 가슴으로 받아 앉을 차례다.

달마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새벽을 밟으며 더딘 걸음으로 산행한 터라 등줄기엔 땀이 흥건히 밴다. 헉헉대며 가쁜 숨을 몰아쉴 즈음 드디어 달마산 정상에 도착한다. 그러면 이내 완도와 청산도 사이 바다에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른다. 날마다 뜨는 태양이지만 새해 첫 날의 해는 벅찬 가슴으로 맞이하게 마련이다. 새해 내내 저 태양처럼 기운찬 일만 가득할 거라 믿고 싶어진다. 더구나 다도해 섬과 호수 같은 바다, 달마산의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진 절경에서 맞이한 해맞이가 아닌가?

새해 아침에 부처님 전에 발원합니다.

종이 울립니다.

지난 한 해의 모든 갈등과 반목 그리고 회한까지도

모두 종소리에 실어 보내며

오늘 여기서 또 다시 새날을 맞이합니다.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각오로 새해 새날을 시작합니다.

가슴 벅찬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눈빛 하나, 손짓 하나, 몸짓 하나에 사랑을 담아

만나는 이마다 행복하게 하겠습니다.

먼저 행복하고 먼저 자유로워지겠습니다.

이만큼 있어야,

이렇게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아

적으면 적은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나눠 갖는 보살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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