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1-06 21:28
설날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기
 글쓴이 : 금강
조회 : 4,140  

마을 당제

새해가 되면 마을 당제 지내는 일을 내심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본다. 벌써 20년째이다. 땅끝 마을 사람들과 내가 소통하는 일중 에 하나가 바로 당제이다. 서로가 마음으로 소통하는 일이란 즐거운 것이다.

“미황사 스님들이 우리 마을을 위해 해 년마다 기도해 주어서 마을 사람들이 무탈하고 풍 년이 들었다.”

라는 동네 사람들 말을 들을 때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저의기 흐뭇한 것도 사실이다. 내가 하는 일이란 그저 정월 초하룻날 늘 하던 염불을 마을 당산나무 아래서 한 것이 전부인데 모든 공이 나에게 돌아오니 황송하기 그지없다.

절 바로 아랫마을은 작은 동네 세 곳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시골이다. 우분리(牛墳理)는 10여 가호의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로 미황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동네이다. 인도에서 불상을 모시고 온 배에 함께 타고 온 검은 소가 일행을 지금의 미황사까지 인도하고는 쓰러졌는데 그 ‘소를 묻은 무덤 마을’이 지금의 우분리인 것이다.

‘원 서정리’도 10여 가호의 작은 동네로 미황사와 달마산이 바로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침마다 열 두 폭 병풍 사이를 뚫고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등리’라는 마을은 우분리와 원서정리 가운데 들판에 40 여 호의 큰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이 세 개의 마을이 행정구역으로 미황사가 속해 있는 서정리이다.




해마다 이 세 곳의 마을 어른들이 쌀 한 가마니씩 지고 나를 찾아와 당제를 지내달라고 부탁한다. 지난 일 년 동안의 마을 대소사와 당제 공덕을 칭찬하고는

“약소하지만 마을을 위해 또 부탁합니다.”

하고는 내려간다.

사실 도움은 내가 더 많이 받는다. 부처님오신날 굳은 일 마다 않고 해주고, 마을 들머리에서 미황사에 이르는 길의 잡풀을 제거해주는 분들이 마을 어른들이다. 어디 그 뿐인가. 절에 번다한 일이 있을 때마다 두 팔 걷어붙이고 제 일처럼 뒷일 봐주는 분들이 언제나 그 분들이다.

절 아랫마을 서정리는 오랜 세월 미황사를 보호하고 유지해준 마을이다. 어느 때에는 12암자와 400여명의 스님들이 사는 거찰이던 때도 있었는데 스님들만의 힘으로 절이 운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사하촌의 도움이 컸을 것이다.

또 6,25전쟁 통에는 빨치산을 숨겨 주었다 하여 주지스님이 총살을 당했는데 그 뒤로 한동안 빈 절로 버려진 때가 있었다. 스님도 살지 않는 절이었으나 아랫마을 사람들은 초하루나 부처님오신날 절을 찾아 참배하고 제 집 앞마당 가꾸듯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다. 대웅전 지붕이 뚫려 빗물이 법당 안으로 떨어질 때 등짐을 지고 기와를 올려 절답게 모습을 지켜준 분들이 마을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의 순정을 저버릴 수 없기에 나는 만사 제쳐두고 20년을 한결같이 당제를 챙긴다.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음식장만을 하여 마을을 돌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새해를 시작하는 정초가 되면 아랫마을 당제 말고도 다른 마을 당제가 기다리고 있다. 초삼일 날에는 배를 타고 어불도라는 섬으로 당제를 지내러 간다. 섬마을 당제는 확실히 육지의 그것과는 다르다.

바다는 늘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바다 사람들은 거칠기는 하지만 또한 매사 행동이 조심스럽다. 당제 때 가보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처럼 여겨진다.

육지의 당제는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서 함께 재를 올리는 대동제의 느낌이 강한데 바닷가나 섬 마을의 당제는 혹여 부정이 탈 새라 재를 지내러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집안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마을 방송으로 미황사 스님이 재를 지내러 왔으니 각별히 조심히 지내라는 당부도 몇 번을 한다. 이날은 부부도 같은 방을 쓰지 않는 풍습까지 있다.

어불도(於佛島)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이 마을을 갈 때 마다 또 다른 의무감이 생긴다. 이름을 풀이하자면 '부처님 섬'인데 어찌 심상한 마음으로 당제를 지낼 수 있겠는가. 그 옛날 어떤 스님이 지나가면서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전한다. 생각 같아서는 조그마한 법당이라도 지어서 사람들이 기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새해 마지막 당제는 미황사가 속한 송지면의 가장 큰 동네인 산정리에서 열린다. 행사가 열리는 날 마을 대표로 뽑힌 두 사람이 목욕재계하고 절을 찾아오는 것으로 당제는 시작한다. 제주들은 부처님께 쌀을 올리고 기도를 한 다음 그 쌀로 밥을 지어서 나와 함께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 회관 앞에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그 고목 앞에 임시 집을 짓고 재를 올린다. 스님의 당제가 끝나면 긴 나팔 소리가 세 번 울리고는 풍물패들이 놀이를 시작한다. 스님이 앞장을 서고 풍물패들은 그 뒤를 따라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가는 곳마다 짚불을 피우고 음식상을 내온다.

이 마을은 그 옛날 미황사 진법군고패(풍물패)의 전통을 이어 받은 곳이라 하여 미황사와 인연이 깊다. 이 마을에서 스님들이 당제를 지내는 전통은 100여년이 넘는다고 전해 온다. 하긴 내가 지낸지 만도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혼자 생각에 다른 스님들은 마을 당제를 지내는 일이 스님들의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저 내 일이거니 내가 도맡아 한다. 다른 스님에게 맡길 생각 따윈 처음부터 해보질 않았다. 은사스님을 모시고 살았던 20년 전부터 주지가 된 지금까지 어디 먼 곳에 공부하러 갔다가도 당제 때만큼은 내가 지낼 양으로 어김없이 절로 돌아오곤 했다.

당제는 내가 땅끝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 당제를 생각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지금처럼 한 마을에서 서로의 종교가 다른 상황에서도 굳이 절에 찾아와 당제를 부탁하는 그 마음, 그 순정을 어찌 가벼이 생각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당제는 오랜 세월 절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켜온 값진 문화유산이다.

무엇보다 내가 당제를 귀히 여기는 까닭은 당제를 드리는 마을 사람들의 간절하고 소박한 소망을 아름다이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이 올린 축원문에 빼꼭하게 적힌 마을 사람들의 이름과 병마와 싸우는 사람의 사연, 군대 간 아들을 걱정하는 모정, 집에서 기르는 소의 안녕까지 발원하는 촌로들의 마음결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절과 마을의 아름다운 공존. 시골 절 주지만이 알 수 있는 행복을 나는 당제를 지내며 느낀다. 벌써부터 당제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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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바다 09-01-17 12:54
답변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두런두런 해주시는 이야기 속에  정말 많은 것이 담겨있네요.감사드립니다.
대비성 09-02-05 17:25
답변 삭제  
당제의 내력과  당제를 생각하시는  금강스님의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올해의 당제를 잘지내셨어  서정리 마을과 미황사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면서...
일념광 11-06-27 09:35
답변 삭제  
아름다운 부처님댁 미황사,
아름다우신 스님,
아름다운 마을분들,
조곤조곤 들려 주시는 스님의 말씀속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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