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8-17 23:34
운력
 글쓴이 : 금강
조회 : 3,914  

운력(運力)

미황사에는 대중스님들은 별로 없고 도량은 넓어서 절을 깨끗하게 관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어지간히 부지런해서는 가꾼 손길의 흔적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매일 아침마다 운력(運力)을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빗자루를 들고 대웅전이나 명부전등의 전각과 요사채를 빙 둘러 쓴 다음, 모두 마당에 모여 일렬로 서서 빗자루 표식을 하는 것으로 운력을 마친다. 그렇게 다 쓸고 나면 사람들이 남겨둔 발자국은 깨끗이 없어지고, 밀려온 파도가 모래사장에 남겨둔 잔물결 같은 흔적만 가지런히 남는다.

봄이 오면 매화, 동백꽃, 산수유, 수선화, 진달래, 목련, 모란, 벚꽃이 차례로 핀다. 4월이 되면 꽃뿐이 아니라 마당 곳곳에서 잡초들의 활동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가을까지는 잡초와의 전쟁이다.

그렇다고 절 마당에 제초제를 뿌릴 수가 없다. 제초제는 물과 땅이 오염되기도 하거니와 풀에 깃들어 사는 작은 생명까지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니 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집스럽게 손으로 뽑아야 하는데 도량은 넓고 사람은 적으니 돌아서면 풀이다. 풀을 매는 사람의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다시금 무성하게 자라는 것이 들풀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 공양시간에 이렇게 알린다.

“오늘 7시 30분에 대중 운력이 있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대웅전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운력은 향적당 마당 가꾸기입니다. 절에서 운력을 한다면 송장도 벌떡 일 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목탁소리가 두 번 길게 울리면 나오라는 신호이니 기억했다 운력에 동참해 주세요.”

땅끝까지 한껏 고뇌를 안고 찾아 온 사람이나, 아이들과 함께 가족 여행 겸 찾아 온 사람들, 저 멀리 외국에서 템플스테이를 온 사람들까지 미황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사람은 예외없이 함께 하는 일이 운력이다. 한 여름에는 한문학당 어린이들의 고사리 손도 동원 된다. 이러한 운력은 자신의 생각과 주변의 환경을 정리해 보는 수행의 시간이다. 동참한 사람들이 스님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또한 자연과도 대화를 갖는 시간이기도 하다.

절에서는 목탁소리의 횟수로 알리고자 하는 내용을 전한다. 밥을 먹을 때는 한 번, 운력을 할 때는 두 번, 회의를 할 때는 세 번이다. 따라서 목탁은 말이 필요 없는 절의 의사소통 도구인 것이다.

대중들이 함께 모여 하는 육체적 노동인 운력(運力)은 ‘울력’이라고도 하고, 여러 사람이 힘을 구름처럼 모은다는 뜻에서 ‘운력(雲力)’이라고도 한다. 일반인에게는 삶의 한 방편인 노동을 뜻하나 절에서는 수행의 방편으로 특히 선종에서는 중요한 수행 방법에 속한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선문규식(禪門規式)’에서는 “운력을 하는 것은 위와 아래가 힘을 합치는 것”이라 하고 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겠다.”는 백장선사의 가르침은 수행과 노동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종색선사의 <선원청규>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땅에 거름 주고 이랑을 쌓으며, 씨 뿌리고 싹을 틔우며, 물주고 김매는 일을 모두 모름지 기 때맞춰 해라. 마땅히 농사일을 잘 아는 이에게 물어라. 하늘의 때와 땅의 형편을 함께 헤아려, 늘 땅을 놀리는 바 없이 짓되, 잘된 것은 대중과 공양하고, 남는 것이 있으면 마을에 내다 팔아라.”

미황사에서의 생활이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올해는 유독 봄 몸살을 앓고 있다. 달마산을 오르기 위해서 전국 각지의 등산객들이 버스를 동원하여 찾아온다. 버스 기사들은 등산객들의 편의를 제공하느라 커다란 가스버너와 솥단지, 그리고 갖가지 음식재료들을 준비해 온다.

사람들이 등산하는 동안 주차장 아래에서는 지글 지글 음식 끓는 소리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해하자면 거기까지는 봐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늘 그렇듯 깨끗하지 못한 뒤처리가 문제이다. 먹고 난 쓰레기들을 한 쪽에 놓아두고 떠나버린다. 특히 주말 뒤끝은 그런 일의 반복이다.

그렇다보니 고기 삶은 찌든 냄새와 쓰레기들이 주차장에 가득하다. 월요일 아침이면 주차장까지 절에 템플스테이 온 사람들과 봉지, 장갑을 챙겨 들고 쓰레기 치우러 간다.

담배공초며 비닐봉지, 과일껍질들을 하나 하나 주우면서 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버리려는 마음이 들지 않게 할까.

동백꽃은 두 번 핀다. 푸른 윤기가 나는 동백 잎 사이로 붉게 피어날 때 한 번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그리고는 찬란한 때를 다 한 뒤, 통꽃을 송이 째 떨어뜨리며 또 한 번 슬픈 아름다움으로 피어난다. 미황사 동백꽃은 유난히 정갈하고 다소곳하여 정이 많이 가는 꽃이다. 그런데 그 곳에 사람들은 다녀간 흔적을 남겨놓고 간다. 떨어진 동백꽃 사이로 사람의 흔적들을 줍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미황사의 아름다움을 찾아온 손님들을 이끌고 쓰레기 치우는 이런 운력을 하는 일이 민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곤혹스러운 운력을 마치고나면 함께 해준 이들에게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운력은 또 다른 수행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말이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과 차를 함께 나누는 것.

세심당 차실에 모두 둘러 앉아 맑은 차 한 잔에 마음을 달랜다. 만하당 앞마당에 핀 청매화 몇 송이 따고, 스무 살 된 묵은 벗 같은 다구를 꺼내어 차를 우려낸다. 청매화 띄운 차 한 잔과 덕담 몇 마디 나누노라면 몸도 마음도 청신한 기운에 취한다.

봄 찾아 날아온 검은등 뻐꾸기 울음소리가 달마산에 봄물 들이며 울려 퍼진다. 연분홍 진달래가 수줍게 답례하며 온 산을 수놓는 봄이다. 찬란한 봄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곰과여유 09-10-26 10:17
답변 삭제  
저는 이번 여름 '참사람의 향기' 때 울력하는 시간,
 다른 것 보다 호미들고 풀들을 뽑을 때
 풀뿌리에 묻었던 흙을 통해 전해지는 향기가 참 좋았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손길이 머물렀던 곳이어서인지 이번 괘불재에 갔을 때도
 풀뽑던 그 곳에 눈길이 가더군요.
 놀다가 쓰레기를 남기고 간 그 분들은
 다시 미황사를 찾았을 때
 그 자리에
 어떤 마음의 눈길이 머물까요?
 
 

Total 136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76 청소년들에게 금강 02-01 812
75 산을 지키는 한 그루 나무처럼, 한 곳을 지키는 아름다움 금강 02-01 901
74 천년이 지나도.. (5) 금강 03-07 3439
73 걸식하는 삶을 선택한 이유 금강 01-16 2998
72 나는 매순간 배운다 (2) 금강 07-26 3819
71 걷기수행1 (2) 금강 11-15 5260
70 나의 탁본이야기 금강 11-15 4308
69 작은학교 (2) 금강 11-15 3082
68 마실가기 금강 11-15 3441
67 사십구재 (1) 금강 11-15 3377
66 이야기가 있는 집 (1) 금강 11-15 3614
65 템플스테이 (1) 금강 11-15 3511
64 그리운 도반 궁현스님 (2) 금강 10-21 5207
63 운력 (1) 금강 08-17 3915
62 설날풍경 (1) 금강 08-17 3921
 1  2  3  4  5  6  7  8  9  10  
340 553 845,915